거미 (수라)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
이 문 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갓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
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
으로 와서 어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
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
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
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
다
-시집 《사슴》, 1936년
겨레아동문학선집 10《귀뚜라미와 나와》(보리, 1999)
첫댓글 거미하면 어렸을 적에 들었던 말이 생각나네요.
아침에 거미를 보면 재수가 좋고
저녁에 거미를 보면 재수가 없다던
미신이겠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