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반본을 못하면 죽는다
선천 종교의 도닦는 사람들은 천지의 조화 세계에 직접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도'하면 어떤 정적(靜的)인 것만을 주로 생각했다. 그것은 도를 직접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저 높은 하늘에 하느님이 계시다거나,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청송녹죽과 같은 그런 마음이 도의 마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진리 세계의 양면성 때문에, 그것게 인식하는 것이 100%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보통의 중생으로 도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감각을 초월하는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고,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방편으로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제님은 이를 거부하셨다.
* 하루는 공우가 여쭈기를 “수운가사에 ‘청송녹죽(靑松綠竹)은 도통지연원(道通之淵源)’이라 하였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만물이 다 철(節)을 찾는데 오직 청송녹죽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항상 푸르게 서 있으니 이는 철 못 찾는 물건이니라.” 하시니라.(道典 2:148)
"철을 찾는다"는 것!!
이것이 도의 모습인 것이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성장해서, 가을에는 열매맺고, 겨울에는 고요히 천지와 하나되서 쉬는.... 이 삶의 모습 자체가 도의 형상인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서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물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므로 어느 정도는 초월할 수도 있겠지만, 천지틀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 도의 정신을 다른 말로 하면 "원시반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때를 알고, 때에 맞춰서 사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올바로 도의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의 정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노자 도덕경에서는 "返者, 道之動"이라고 했다. 돌아가는 것은 도의 운돔이란 말이다. 이러한 도의 정신을 다른 말로 하면 "원시반본"이다. 그 뿌리를 찾아서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 원시반본은 원론적으로 보면 모든 생명의 바탕인 무극의 생명 본원으로 제 생명을 되돌리는 것이다. 즉 土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제 사심을 비워서,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그 길을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모습은 항상 직선이 아니고 원의 모습을 띈다. 둥글게 둥글게.. 항상 뿌리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뿌리로 돌아가려는 작용으로 말미암아서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 것이다. 木기가 작용하는 봄에는 내면에서 土기를 바탕으로 金기가 작용해서 木은 火로 발전해 간다. 또 火기가 작용하는 여름에는 내면에서 土기를 바탕으로 水기가 작용해서 火가 강렬한 저항을 딛고 金으로 변해간다. 원시반본이라는 것은 특히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에 드러나는 것이지만, 사실은 항상 작용하고 있는 도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언제라도 이 원시반본의 정신을 바탕으로 살지 않으면 그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밤에는 낮을 준비하고, 낮에는 밤을 준비하는 것이 원시반본에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이 우주의 여름철이라면 모든 생명들이 강렬한 상극의 올가미 속에서 힘들게만 살고 있다. "그 생명이 힘들어 한다는 것", 그것이 원시반본을 부르는 정신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 때에는 다시 모든 생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살던 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원시반본이다. 그것이 물론 쉽지는 않고,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의 천지공사와 대두목과 의통 등등 수많은 상제님 진리의 근본 정신이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통일로 돌아간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의 때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이 때의 정신에 맞게 살지 않는자는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무엇을 바탕으로 통일이 되는가? 그것은 火生土, 土生金이라고 하는 기본 공식과 같이 土라고 하는 상제님 진리에 포섭되어서 자연과 인간, 문명이 통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 상제님 진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것에 모든 삶의 길이 있는 것이다. 상제님은 오죽하면 "이 때는 생사판단을 하는 때라"고 하셨겠는가?
@ 근본을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근본을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예를 들어 자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진리 원칙에 따라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했다면 그의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아들의 행동은 인류지대륜을 저버린 패륜으로 찍혀서 인생낙오자가 되고 말것이다. 환단고기에 보면 고조선 시기에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은 외지로 보내버려서 사회에서 완전 격리시켰던 과거 역사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임금은 배신할 수 있는가? 선천에는 어느 정도 배신이 허용되었다. 임금이 부덕하여 천명을 잃었을 때,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제님은 이것도 엄중히 비판하셨다.
* 다시 큰 소리로 맹자를 부르시어 "맹자야, 이 역적놈아!"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여쭈기를 "맹자를 역적이라고 꾸짖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하니 말씀하시기를 "마음 속에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있다면 임금을 임금같지 않게 볼 수가 있곘느냐. 신하가 임금을 원수같이 보았으니 내쳐도 무방하니라."(4:46)
그러면 스승은 배신할 수 있는가? 한번 제가 스승으로 모셨던 인물을 배신할 수 있는가 하는 말이다. 물론 그것도 안된다. 제가 약간 더 잘났다고 스승을 욕되게 하거나 스승이었음을 인정치 않거나 등등 그 어떤 경우라도 "스승과 제자의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은 상제님은 절대로 용납을 하지 않으신다.
* 상제님께서 충청도 노성(魯城)에 있는 어느 부잣집 사랑에서 며칠 동안 머무실 때 그 마을 유생들이 윤증(尹拯)의 사당을 짓기 위해 희사금을 받으러 다니더니 하루는 상제님께 와서 말하기를 "손님도 마침 이 마을에 왔으니 이런 좋은 일에 희사금을 좀 내시지요." 하며 붓과 장부를 내미니라. 상제님께서 "어이, 그러지." 하시며 장부를 받으시어
忘其師之尹拯乎아
망기사지윤증호
스승을 저버린 윤증이 아니던가.
라고 글을 써 주시니
유생들이 그 글을 보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거늘 그 뒤로 희사금이 들어오지 않아 사당 짓기를 포기하니라.(5:107)
@ 근본을 저버리지 말자.
뭐니뭐니 해도 지금은 개벽기이다. 진정으로 개벽기를 무사히 넘기고 살아가길 원한다면 근본을 저버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그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 안담울
첫댓글 멋진 글입니다^^ 안담울님 팬 1호로 등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