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 로고(사진 왼쪽부터)와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로고. 디자인 전문가들은 “두 로고의 구성과 컬러, 순서가 거의 일치한다“고 말한다
‘로고’는 한 집단이나 상품을 대표하는 시각 디자인이다. 그런데 KBO(한국야구위원회)의 포스트시즌 로고가 미국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로고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내 디자인 업계에선 “KBO의 MLB 로고, 엠블럼 표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엠스플뉴스가 이 논란을 집중 취재했다.
2017년 KBO리그 포스트시즌이 시작됐다.
‘가을야구’로 불리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가장 큰 한국 프로스포츠 이벤트 가운데 하나다. 스포츠팬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은 데다 축구대표팀의 A매치와 함께 지상파로 생중계되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이벤트다.
이런 가운데 야구팬들과 디자인 업계에서 “KBO가 포스트 시즌을 상징하는 로고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직 로고 디자이너는 엠스플뉴스에 “최근 몇 년간 KBO리그의 각종 로고는 ‘참고’를 넘어 ‘모방’으로 의심해도 무방할 만큼 MLB 로고와 디자인을 베껴왔다”며 "이번 포스트시즌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디자인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 “KBO 각종 로고, MLB 판박이 수준”
2017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 로고(사진 왼쪽부터)와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로고. 배경이 흰색으로 바뀐 걸 제외하면 역시 구성과 도안 순서가 매우 닮았다는 평이다
201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로고(사진 왼쪽부터)와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로고. 다이아몬드 테두리가 일치한다. 복수의 디자인 전문가는 “KBO가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로고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로고를 적절하게 도용해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로고를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내 대형 IT 업체 수석 디자이너에게 2017년 KBO와 MLB 포스트시즌 로고와 관련해 자문을 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기본 색상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디자인이 판박이”이라는 것이었다.
“색, 구도, 형태 등이 매우 비슷하다. 컬러가 감색(네이비 블루) 계열과 금색, 흰색이 기본이라는 점, 마운드를 형상화하는 다이아몬드와 트로피를 사용한 점, 디자인 발상 자체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놀랄 만큼 닮았다. 솔직히 말하면 구도나 색감을 대놓고 따라 한 수준으로 보인다.”
실제 2017년 KBO와 MLB의 포스트 시즌 대표 로고, 디비전 시리즈 및 챔피언십 시리즈 로고, 월드시리즈 로고 등을 종합해 살펴봤을 때 곳곳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KBO와 MLB 로고 모두 대표 색상을 2, 3개로 정해 서로 다른 느낌인 2개의 대표 로고를 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배색마저 같다. 여기다 ‘트로피’와 ‘베이스’를 테마로 한 것까지 일치한다. 같은 해에 이런 디자인적인 특징들이 겹친 로고가 나왔다는 건 우연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7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 로고(사진 위부터)와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로고
한 디자이너는 “포스트시즌 로고를 제외한 KBO 다른 로고들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직하게 말해 ‘MLB 로고 없인 작업을 못하나’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라며 "2014년 KBO 개막전 기념구 디자인은 미국 마이너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iLB.com의 로고를 아예 대놓고 베낀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KBO 로고 표절 의혹을 엠스플뉴스에 제보한 디자이너 A 씨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제작한 도쿄도 로고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로고에 담기는 상징성과 철학적 의미가 큰데 그걸 베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KBO도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만 신경 썼지, 그 안에 담기는 의미와 철학에 대해선 아예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솔직히 디자인은 둘째치고 KBO의 ‘무개념, 무사고, 무의식’이 느껴져 그게 가장 화가 난다”고 전했다.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도쿄도 로고(사진 가운데). 사진 위, 아래 로고에 매우 비슷하다
2015년 도쿄도가 발표한 '&TOKYO' 로고는 1억 3천만 엔(약 12억 6천만 원)이나 들여 만들어졌지만, '프랑스 안경 업체 로고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결국, 도쿄도는 새 로고를 공모하며 표절을 인정해야만 했다.
국내 디자인 전문가 “상표권에 민감한 MLB, KBO 로고 보고 무슨 생각할지 궁금”
2017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로고와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로고. 많은 디자인 전문가는 “KBO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로고들을 짜깁기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도시를 상징하는 조형물 아래 올스타 게임 로고를 박고, 가장 하단에 스폰서 로고를 붙이는 게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다 컬러까지 비슷하다는 게 중론이다
“몇몇 스포츠협회와 디자인 작업을 한 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모 디자이너는 “만약 MLB가 KBO 로고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두 나라 야구협회 간 소송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MLB는 상표권과 지식재산권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조직”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7월 MLB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인 ‘오버워치’의 리그 로고에 이의를 제기했던 게 좋은 예다. 다음은 국내 디자인 전문가의 설명이다.
“3월 28일 오버워치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로고 상표권 등록 신청을 할 때 MLB가 ‘우리 로고 디자인과 유사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MLB는 ‘오버워치 리그 로고가 MLB 로고처럼 사선으로 배치된 흰색 인물이 디자인의 기준이 됐다는 점, 인물을 중심으로 좌·우 색상이 다르다는 점, 로고 사각이 둥글게 처리됐다는 점, 하단에 리그명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며 블리자드에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MLB 사무국은 법률 검토 명목으로 90일의 상표권 등록 유예 기간을 받고서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만약 MLB 사무국의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진다면 미국 특허청이 오버워치 리그 로고의 상표등록을 거부하는 것과 동시에 MLB와 블리자드의 소송전이 벌어질 일이었다.
결국 MLB가 최종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오버워치 리그 로고를 원안대로 쓸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MLB가 자신들의 상표권에 대한 집착과 보호가 얼마나 대단한가’다.“
이 디자인 전문가는 “그나마 오버워치 리그 로고는 다른 미국 내 스포츠 로고들이 일찌감치 MLB 로고 이미지를 차용한 덕분에 문제의 소지가 적었다”며 “그러나 KBO 각종 로고는 MLB 로고와 하나가 아닌 여러가지에서, 그것도 수년째 닮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KBOP의 일관된 입장, "도대체 왜 이게 문제가 되는지 전혀 모르겠다.“
미 메이저리그 대표 로고(사진 왼쪽부터)와 오버워치 리그 로고
국내 디자인 업계의 우려에도 KBO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들려줬다. KBO 자회사로, 사업 관련 마케팅을 전담하는 KBOP 최원준 팀장은 “야구에서 베이스와 트로피를 기본으로 한 디자인은 매우 많다”며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릴 순 있겠지만, 이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답했다.
특히나 최 팀장은 ‘야구 디자인’의 특수성을 들어 “표절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야구와 관련된 디자인은 소재 자체가 한정된 편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살펴봐도 전체적으로 야구 로고 디자인이 비슷하다. ‘다 거기서 거기’란 얘기다. 제한된 소재로 표현하려니 우연히 비슷한 결과물이 나온 것뿐이다. 우리 쪽에서 ‘(MLB 로고를) 따라 하거나 참고하겠다’는 의도조차 전혀 없었다.”
2014년 제작된 KBO 오프닝데이 기념구에 새겨진 로고(사진 위부터)와 마이너리그 로고
그럼 2017 포스트시즌 로고는 누가 만들었을까. 최 팀장은 “인터넷 공모사이트를 통해 ‘2018 신인 드래프트 로고 디자인’을 뽑았다. 당시 선발된 디자이너의 결과물이 ‘만족스럽다’는 판단 아래 이번 포스트시즌 작업물도 그 디자이너에게 맡겼다”고 설명했다.
신인 드래프트 로고에 이어 포스트 시즌 로고 제작까지 맡은 디자이너 이 모 씨는 자신을 “10년 경력의 베테랑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이 씨의 해명도 KBOP와 다르지 않았다.
이 씨는 “디자인 업계에 10년 정도 종사하면서 기본적으로 상표권과 지식재산권에 대해 엄정하고, 확실한 인식을 하고 있다”며 “절대 (MLB 로고는) 참고조차 하지 않았다. MLB 로고는 최근 KBOP를 통해 ‘엠스플뉴스가 취재한다’는 얘길 듣고서 이번에 처음 봤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색깔 선택은 세계적인 디자인 경향을 좇은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최근 디자인계의 경향상 감색과 실버를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디자인이 겹치게 된 것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색깔의 색상번호도 다르다. 메이저리그 로고의 금색은 청색 등이 섞인 혼합색이고, 내 KBO 디자인은 순수한 금색에 가깝다. 또 KBOP로 부터 ‘고급스럽게 표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로고 문구에 금색, 은색, 흰색을 썼다. 고급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색상이 한정적이다 보니 색상이 겹친 것뿐이다.”
이 씨의 주장에 대해 한 디자이너는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색상번호까지 언급했지만, MLB 포스트시즌 로고도 금색, 흰색을 쓰고 있다. 게다가 2016년 MLB 포스트시즌 로고를 보니 은색이 들어갔다”며 “이 씨와 상관없는 2017년 올스타전 엠블럼은 색깔만 빼면 거의 모든 걸 베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KBOP “MLB와 소송전 펼쳐지면 우리도 표절로 소송 걸겠다.” 디자인 전문가들 “디자인 유사성보다 더 큰 문제는 로고에 상징과 의미 그리고 철학을 담으려는 의식 자체가 없는 KBO의 무개념, 무의식, 무사고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사용했던 KBO 심볼(사진 왼쪽부터)과 WBC 심볼. KBO는 “WBC가 KBO 심볼 특유의 회오리 모양을 베꼈다“고 주장한다.
취재 중 KBOP 관계자는 “만약 MLB와 소송전을 벌인다면 우리도 MLB가 중심이 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조직위원회를 표절로 소송 걸 수 있다”고 목소릴 높였다.
“WBC 로고가 우리 KBO의 회오리 모양 로고를 따라 한 것이다. MLB 사무국으로부터 ‘이 이미지를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자문을 받은 적이 있다. 만약 MLB와 소송전이 벌어진다면 우리도 WBC 조직위원회를 표절로 소송 걸겠다.”
KBO 로고의 표절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KBO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이젠 MLB와 WBC 조직위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NPB) 일본시리즈 로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디자인이 같다. 일본야구 관계자는 “로고, 심볼, 엠블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도 협회와 대회를 상징하는 이미지엔 전통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며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는 엄연히 전통과 철학이 다른데 어떻게 메이저리그 도안을 참고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엠스플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많은 디자이너로부터 들은 반문이 있다. 바로 “KBO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자부심과 철학이 있느냐”는 반문이었다. 한 디자이너는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란 전제를 달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KBO에 자체 디자인팀이 없을 수 있다. 많은 협회나 단체가 그래서 돈을 주고, 외부 전문가에게 로고 제작을 의뢰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로고 안에 담긴 상징과 의미 그리고 철학까지 외부 전문가에게 맡길 순 없다는 것이다. 그건 KBO가 책임지고, 담당할 문제다. KBO가 정확한 메시지를 외부 전문가에게 전달해야만 제대론 된 로고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KBO가 그런 고민과 철학 없이 ‘야구 디자인은 거기서 거기’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한국야구의 상징물은 언제까지고 ‘메이저리그 짝퉁’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독자적인 브랜드 구축에 나서야 하는 건 KBO 정체성과도 관련된 문제라는 걸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