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한 수] 중국 북송(北宋) 사(詞)의 대가, 주방언(周邦彦)의 '여인의 유혹'

[이영일]

❁ 漢詩 한 수, 여인의 유혹

並刀如水(병도여수)

물빛처럼 번뜩이는 병주(幷州) 과도,

吳艶勝雪(오염승설)

눈보다 고운 오 지방 소금,

纖指破新橙(섬지파신등)

갓 익은 귤을 까는 섬섬옥수.

錦幄初溫(면악초온)

비단 장막 안은 이제 막 따스해지고,

獸香不斷(수향부단)

향로에선 쉼 없이 향훈이 번지는데,

相對坐調笙(상대좌조생)

마주 앉아 여인은 생황(笙簧)을 연주한다.

低聲問(저성문)

낮은 목소리로 묻는 말.

向誰行宿(향수행숙)?

“오늘 밤 어느 곳에서 묵으실는지?

城上已三更(성상이삼경)

성안은 이미 야심한 삼경,

馬滑霜濃(마활상농)

서릿발에 말이 미끄러질 터니

不如休去(불여휴거)

차라리 쉬었다 가시는 게 좋겠어요.

直是少人行(직시소인행)

길엔 나다니는 사람도 드물답니다.”

―‘소년유(少年遊)’ 주방언(周邦彦·1056∼1121)

시(詩)가 정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라면 사(詞)는 경쾌하고 자유분방하다. 시가 사대부 문학(士大夫 文學)의 정수라면 사는 연회(宴會)나 주루(酒樓)의 여흥 분위기를 돋우는 유흥 문학(遊興 文學)의 성격이 강하다. 가사의 속성상 근엄한 메시지보다는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써야 호소력이 더 도드라지는 법이다. 노랫말에 고답적인 삶의 이치나 인간의 도리 따위를 담는다면 누가 반기겠는가.

이 작품은 사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연인 사이인지 아니면 주루에서의 하룻밤인지는 알 수 없다. 비단 장막을 두른 것으로 보아 이 방의 주인은 아마 여인, 갓 익은 귤껍질을 벗기는 섬섬옥수의 주인공이겠다. 잘 드는 과도와 백설 같은 소금을 준비한 것으로 보아 시고 쓴맛이 도는 귤 위에 살짝 소금을 칠 모양이다. 길상(吉祥) 동물 형상의 향로에 향을 피우고 생황 연주까지 곁들였으니 그 대접이 여간 곡진하지 않다. 급기야 나지막이 건네는 한마디. ‘야심한 데다 서릿발로 길이 미끄러우니 쉬어가시라.’ 배려인 듯 애소(哀訴)인 듯 여인의 농염한 유혹에 밤이 무르익고 있다. 송 휘종(徽宗)과 기녀 이사사(李師師)의 밀회 장면을 묘사한 거라는 믿기 어려운 야사의 기록도 있다.

✵ 주방언(周邦彦, 1056-1121, 65세). 자 미성(美成). 호 청진거사(淸眞居士). 첸탕[錢塘:浙江省] 출생. 중국 북송(北宋)의 사(詞)의 대가, 완약파 대표적 사인중의 한사람. 그의 작품은 완약파 사인중 장기적으로 오리지널(正宗)이라 존중받아 왔다. 옛날에는 그를 ‘사가의 으뜸’(词家之冠)이라 불렀다. 송나라 때에 영향력이 아주 컸다.​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으나, 방종한 성격 때문에 고향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였다. 그래도 학업에는 게을리 하지 않아 백가의 서책을 섭렵했다고 한다. 원풍연간(元豊年間:1078∼1085)에 수도로 올라가 변도부(汴都賦, 주방언의 최초 이름을 날린 작품)를 헌상(獻上)하여 신종(神宗)으로부터 인정받고 태학제생(太學諸生)에서 태학정(太學正)으로 승진하였다. 대성부(大晟府)의 제거(提擧)와 순창부(順昌府) 처주(處州) 지사(知事)를 맡았다. 고전음악의 정비와 신곡(新曲)의 개발로 팔면영롱(八面玲瓏)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

주방언은 태평성대의 북송 후기에 태어나 악방(乐坊)에 연연했으며 풍류와 염정, 도시 풍경 등을 창작소재로 삼았다. 예컨대 《少年游·并刀如水》의 부드러움과 속삭이는 듯한 분위기，《夜游宫·叶下斜阳照水》의 소슬함과 처량함，《玉楼春·桃溪不作从容住》의 멋들어짐과 진지함(缠绵沉挚)은 모두 사랑을 논하는 가작(佳作)이다.​

주방언은 완약파의 집대성자로 앞사람들의 성과는 승계하고 흡수하고 정화시켜 크게 빛을 냈다. 주방연의 노력으로 완약파는 예술적으로 최고봉에 이르렀다. 그의 스타일은 남송의 史达祖, 姜夔, 吴文英, 周密, 张炎 등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남송 이후의 격률사파(格律词派)를 시작하게 했으며 사의 역사에서 극히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

남송(南宋)의 강기(姜夔)와 함께 북송의 대표사인(代表詞人)으로 꼽힌다. 저서에 《편옥사(片玉詞》 《청진집(淸眞集)》 등이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1월 12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