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일이 다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에 외환은행을 매입했던 론스타가 1.5조원을 투자하여
불과 3년 만에 3조원을 훨씬 넘는 이익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책적으로 큰 문제이며 누군가 음모를 꾸미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인 것 같다.
세상에, 외국인이 우리 돈을 무려 ‘3조원 이상’이나 챙기게 생겼다니,
이건 모든 국민이 불끈 일어나 함께 분노할 일이다.
공영방송인 KBS는 [일요스페셜](3월 19일)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다음날 9시 뉴스시간에도 반복해서 보도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감성적으로 접근할 일이 결코 아니다.
감성이 일을 하면 이성이 잠을 자고,
이성이 잠을 자면 진실과는 거리가 먼 선동만 기승을 부릴 뿐이다.
이제라도 이성적으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경제정책이란 과거에 일어난 일의 후유증(부작용)을 치유하거나,
현재 일어나는 일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펼쳐지는 것이 보통인데,
외환은행 매각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비하기 위해 펼쳐진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이성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고, 잘잘못의 판단도 정확하게 내릴 수가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외환은행을 매각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경영지표 자료에 따르면 당시의 경영수지는 악화일로에 있었고,
끝까지 방치해두면 지불불능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만약 외환은행이 지불불능 사태에 직면하면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전 금융기관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금융위기’가 전개될 것이 빤했고,
결국은 금융공황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었다.
이것은 금융공황을 겪었던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역사적 경험이다.
만약 금융공황이 벌어지면 어떤 사태가 나타날까?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통화는 경제에 있어서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하고,
금융기관은 그 혈액을 순환시키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만약 금융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과 같은 일이 경제현실에서 나타날 것은 당연하다.
세계대공황 때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었다.
산업생산은 3년 사이에 1/4이 줄었고, 실업률은 30%를 넘겼으며,
길거리는 집 없는 부랑아들로 넘쳐났었다.
자선단체의 음식배급소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섰고,
쓰레기장을 뒤져서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게 금융공황의 무서움이다.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르지 않았더라도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았겠지만,
그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그 결과가 비참한 만큼
그 대응도 신속해야 했고,
비용이나 손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게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정책당국의 올바른 자세이다.
전쟁이 수십 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어도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듯이 말이다.
더욱이, 2003년 11월에는 LG카드 사태가 터졌지 않았던가!
만약 외환은행이 론스타로부터 자금을 수혈 받지 않았더라면,
외환카드는 LG카드보다 더 먼저 부도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국내 신용카드사 전체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어쩌면 모두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결국은 금융위기를 피할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사태를 예방한 것이 외환은행의 매각이라는 정책결정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금융상황이 이랬다면,
LG카드 사태를 불러온 원인도 규명해두었어야 한다.
그래야 장차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신용카드사의 수익이 너무 크므로 수수료를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자들의 책임을 무엇보다 먼저 물었어야 한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대폭 낮추지만 않았더라도
LG카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외환은행의 부실화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의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은 외환카드의 적자에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신용카드사 수수료를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LG카드 사태를 유발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경제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이제는 적반하장으로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했다고 비난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정책당국이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경영지표 자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정책당국에게 이 문제에 자문해주던 외국계 컨설팅 기관이
그 실상을 과장했을 수도 있다(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판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다른 투자 경쟁자는 없었는가를 먼저 살폈어야 한다.
만약 경영지표가 고의적으로 왜곡되었다면,
외환은행에 투자하는 자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고,
론스타와 함께 다른 경쟁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른 투자자는 외환은행 매입에 나서지 않았을까?
왜 이런 의문은 외면당하고 있을까?
다른 투자자들이 외환은행 매입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빤하다.
그 투자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론스타의 외한은행 매입은 손실의 가능성이 그만큼 컸다고 해야 하며,
위험이 이처럼 큰 만큼 이익의 크기도 커야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해야 한다.
이게 국제금융계의 냉정한 현실이다.
끝으로, 당시의 정책당국자에게 이 문제의 책임을 꼭 물어야 한다면,
그로 인해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도 함께 따져야 한다.
그래야 이 문제를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서라도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차분하게 따져보자.
예방의 공적은 좀처럼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세상인심이지만,
예방처럼 뛰어난 업적은 없다.
이미 사태가 터진 다음에는 아무리 뒤처리를 잘 하더라도
큰 손실은 물론이고 부작용과 후유증까지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혜안을 가진 자라도 나서서 예방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
마치, 1998년 미국에서 LTCM(롱텀케피털) 사태가 터졌을 때에
연방준비은행이 취했던 조치를 미국 경제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해주었듯이 말이다.
LTCM은 헤지펀드의 하나로서 전형적인 투기자본이었다.
이 회사가 망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수십 명의 부자들만 손실이 나면
그만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왜 굳이 연방준비은행까지 나서야 했을까?
LTCM이 망하면 수십억 달러의 파생금융상품들까지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금융위기가 전체 금융기관으로 전염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방준비은행이 나서서 상업은행들이 뒷수습하도록 했고,
그 결과도 비교적 만족할 만 했다.
물론 의회에서는 소수의 부자들을 위해 엄청난 자금지원을 했다고
가혹한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론스타 매각을 주도했던 당시의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었던 변양호 씨가
우리나라 국부를 대규모로 유출시킨 장본인으로 일부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예방을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예방의 공적을 세웠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일부 전문가 세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변양호 씨는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상반기 중반부터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는 흔히 볼 수 없는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가 만약 당시에도 과감한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외환위기는 막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이런 사람을 지금처럼 이렇게 매도한다면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사안일한 자세가 만연된 관료사회에서
모처럼 소신껏 일한 사람이 이렇게 매도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방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지금처럼 매도당한다면,
장차 눈앞에 아무리 큰 위기가 닥치더라도 정책당국자 중
어느 누구 하나 감히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후 수습을 잘하면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데,
누가 굳이 예방하려고 하겠는가?
오히려 사태발전을 고의적으로 방치하다가,
수습을 잘하여 높이 평가받으려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는 참으로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친친. 씀
첫댓글 부동산 문제를 보면 여당 야당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아이엠에프 사태도 알고보면 시대가 그렇기도하지만 국가경영과 경제에 대한 무지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외환은행 매각사태나 진로사태나 무지로 인한 욕심이 부른 손해이기도 하고, 이런 연구가 부족하는한 앞으로도 일어날 공산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