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글쓴이는 보통 기승전인간찬가로 영화를 감상합니다. 이번에도 그럴겁니다.
한산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한산을 본게 작년 8월이었으니, 1년 반도 안돼서 이순신 3부작의 2,3편이 연달아 개봉된 셈인데, 그 정도 차이임에도 영화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한산 스포?도 같이 나올 수 있겠네요.
한산은 한산도 대첩, 즉 이순신 장군님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표현한 영화였습니다. 거기에 이순신 통제공님만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과 그런 자들에게 감화되어 전향한 항왜들처럼, 의를 위해서 이 땅을 지키는 수많은 자들을 같이 비추며 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테마를 확고하게 굳히죠.
반면 노량은 이런 국가적으로 성웅이 되어가는 이순신의 모습이 아닌,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명예를 위해 전투를 하던 자들이 아닌, 국가간의 판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개개인이 겪는 갈등, 그리고 몰락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한켠엔 작품 내내 허무주의가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죽음에 대해 깊게 묘사하죠.
노량은 오프닝부터 한 인물의 몰락을 표현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평민 기노시타 도키치로부터 시작해서 결국 태합까지 올라가는, 그리고 정명가도라 하여 조선과 명을 향해 전쟁까지 걸었던 한 풍운아는 이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덕천가강,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아들의 보좌를 맡기죠.
그리고 죽음의 순간 깨닫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보좌로 만족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그 사실은 곧 대부분의 일본 장수들이 통찰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이렇듯 처음부터 몰락과 변화를 노래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부터 시작한 죽음은 이후 이순신의 아들을 통해 이순신에게 와닿고, 모두는 이제 그동안 얘기했던 의(義), 명예보다는 목숨에 대한 셈법을 시작합니다.
왜는 물러날 것입니다. 조선이 전쟁터가 되는 일은 당분간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왜 퇴각하는 군대를 기어코 쫓아가 섬멸해야 되는가? 여기서 이순신 통제사와 조선수군 대 나머지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명도 왜도 심지어 조선 조정도 조선수군의 더이상의 활약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나라를 지켜온 조선수군의 방식이, 이순간부터 반대로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죠.
그럼에도 이순신 통제사가 기어코 진군을 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순신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었다고 봐도 될겁니다. 여기서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그는 몰락할 상황이었죠. 그걸 아는 상황에서도 그는 결국 나아갔습니다. 그게 그가 할 일이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자들은 모두 그런 역사적인 아이러니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한산에서 조선을 위해 몸바친 자들은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곧 다가올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주도적인 세력이 되었어야 할 시마즈는 단 한번의 해전으로 너무나 큰 피해를 입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남은 고니시는, 미래에 어떤 일이 기다릴지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허망한 미래를 알고 이 영화를 보고있노라면 한산에서 전향했던 항왜가 외치는 의라는 단어도 참 허무하게 들립니다. 그는 누구를 위해 의를 외쳤는지요. 그가 목숨을 버리며 외친 의마저도 조선의 미래를 생각하면 회의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그 외에도 이런 죽음을 향해 가는걸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순신의 아들, 그 아들을 참한 검객들, 전사자 목록에 심지어 거북선까지도, 이 모든 여정의 끝은 결국 소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듯, 영화는 죽은 것, 죽어가는 것들을 수시로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이영화가 죽음을 통해 강조하는건 , 역시 그런 몰락 속에서도 치열하게 자신이 할 것을 해나가는 영웅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미래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누가 칠천량 해전이 그렇게 될줄 알고, 나중에 에도 막부가 성립할지 알았을까요?
조선 수군은 원균이라는 졸장으로 인해 전멸할 때도 나라를 지키는데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고, 그런 용맹함으로 노량이라는 상황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통제공이 그걸 아는데 왜적을 차마 그렇게 보낼 수 있었을까요?
조선의 장수중 누가 가장 위협이 될 지 아는데 일본군이 그 자를 뒤에 두고 귀국할 수 있었을까요?
명은 이제 전쟁이 끝나가는데 자국민의 희생까지 해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주연들은 그러한 자신만의 뜻을 품고 움직입니다. 결국 성사되거나, 혹은 안되거나, 아니면 둘다였지만요.
그런 장대한 몰락의 서사를 2시간 좀 넘는 시간으로 잘 표현했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쿠키영상을 보니 그런 생각이 확 달아나더라고요. 순식간에 이순신 성웅 만들기 & 임진록2+ 조선의 반격이 맞았다 라고 영화 의도를 고정시켜버려서 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아무튼 전 그렇게 느꼈다고요(...)
전투씬은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야전을 표현한게 정말 맘에 들었는데, 아무리 cg를 잘 만들어도 티가 나는게 보통인만큼, 어두운 밤을 통해 티를 감추고 전투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일본 수군이 최대규모라는 점을 한껏 이용해서 위용을 충분히 보여주고, 시마즈가 백전노장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군대의 체급차도 만드는 등 세세하게 신경 쓴 점도 좋더라고요. 시마즈와 함대가 처음 등장하는 씬은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야기의 불친절함? 이라고 해야될까요, 아무래도 노량 당시 각 세력이 맞이한 상황을 씬 몇개로 표현하기 어려운만큼,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가야 재밌게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회사 사람의 감상이 '초중반이 좀 지루해서 별로였다'여서 걱정했었는데, 보고나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내가 재밌게 봤으면 그만이지만(..)
그 외에도 배우분들의 연기가 빛을 발했는데, 개인적으로 백윤식 배우님이 분한 시마즈는 위엄있고 냉엄하며 표정의 변화도 없어서 이순신 최후의 적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완벽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배우분들도 배역에 걸맞는 멋진 모습을 보이셨고요.
작품 외 가장 큰 단점은 관크였습니다. 왜 12세 이상 관람가에 초등학생들 대여섯명이 와서 뒤에서 떠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정말 끊임없이 속삭이는데 아... 스트레스 쌓이는데 영화 보면서 종업원 부르기도 그렇고 애들한테 뭐라고 하기도 그래서 그냥 앞자리로 옮겼습니다. 노량인데 이렇게 자리가 많이 남아도 되나 그런 생각도 한거 같네요
아무튼, 이런 영웅신화 같은 얘기를 좋아해서인지 즐겁게 봤습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