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고지 안보관광하고 봄향기에 '흠뻑'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13길 -
서울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공기가 맑다.
시내버스를 타고 성산로로 연세대를 지나면 연희 104고지 앞(구 성산회관)이라는 버스정류소가 나온다.
이곳만 해도 매연이 덜해 숨쉬기가 편하다.
성산로를 지나는 간선(파란)버스나 지선(초록)버스를 타면
‘연희 104고지 앞’이라는 다소 생소한 안내방송이 나온다.
모두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104고지 앞에서 타고 내린다.
104고지 앞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성산로 13길을 따라 가파른 고갯길을 200m쯤 가면
좁은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앞 빛바랜 붉은 간판에 ‘연희 104고지 전적비’라고 쓰여 있다.
비좁은 계단을 따라 걷다 보면 천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 연분홍 벚꽃 잎이 계단을 수놓고 있다.
머리 위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만발해 있다.
104고지는 6ㆍ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와 대한민국 해병대가
처절한 전투 끝에 승리를 이끌어 수도 탈환의 전기를 마련한 연희고지 전투를 말한다.
104고지전투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성공한 한미 연합군의 수도 서울 탈환 작전이라 할 수 있다.
104고지는 북한군의 서울 사수 최후의 방어선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적 25여단 및 독립 7연대 소속 약 4000명의 최정예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부대 장교 및 준사관은 대부분 중공군에서 복무했던 정예화된 전투 경험자들이었다.
인천상륙작전 감행 1주일 만인 9월 21일 한국 해병대 1대대가 중앙을,
미 해병대 5연대 1대대가 좌측을, 미 3대대가 우측을 맡아 서울 서측방 병진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한국 해병대 1대대 3중대가 주공을 맡아 치열한 백병전 끝에
21일 오후 6시 30분에 104고지를 완전 점령했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104고지 전적비는 두 곳에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104고지 전적비는 1982년에 세워졌다.
이전의 전적기념비는 1958년 104고지(일명 연희산) 자연석에 새겨 놓아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른다.
이 전적비는 가파른 산비탈 바위에 ‘104고지 전적기념비’라고 한자로 새겨 놓았는데
사람의 접근이 어렵다. 또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초라하다.
지금은 104고지 일대가 개발되면서 전적비 바로 앞까지 주택들이 들어섰고,
철조망과 아카시아나무로 꽉 들어찼다.
이로 인해 80년대 전승에 걸맞은 제대로 된 전적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1982년 정상에서 남서쪽 8부 능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설립했다.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에 가려 한강이 보이지 않는다.
겨우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 남산 타워, 63빌딩, 국회의사당 꼭대기만 살짝 보일 뿐이다.
전적비를 살펴보면
당시 작전에 참가한 1연대장 신현준 대령, 1대대장 고길훈 소령, 1중대장 정만진 중위,
2중대장 김광식 대위, 3중대장 이봉출 대위, 4중대장 고상하 중위 등
지휘관 이름을 비에 새겨 길이 빛내고 있다.
전적비 좌우에는 5월에나 꽃을 피워 올리는 보랏빛 라일락 꽃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가 열리면
104고지 아랫마을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궁동공원의 104고지 앞에 서면
왼쪽으로 백련산이, 정면으로는 안산이 연분홍 벚꽃 이불을 덮고 있는 듯 하얀 빛의 향연을 펼친다.
날씨 좋은 이 봄을 맞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를 찾아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료:서울지방보훈청>
국방일보,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첫댓글 시간내서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