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4일
현지시간 오전 10시
일본발 로스앤젤레스(LA)행 노스웨스트항공 NW0002기.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산타모니카 해안 상공에 들어섰다.
LA국제공항(LAX)에 곧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 속도를 줄인 비행기는 LA 도심 상공을 부메랑처럼 선회하기 시작한다. 창문 밖으로 LA 도심이 펼쳐졌다. LA 다운타운의 고층빌딩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밋밋하다. 다운타운 위를 지나자마자 돌아온 길로 돌아가듯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180도 회전하면서 고도를 더 낮춘다. 곧바로 도심 주택가가 창가로 펼쳐진다.
바둑판...
한적한 시골마을이 끝없이 펼쳐진 듯 평지에 높은 건물이 없다. 바둑판 위의 줄처럼 도로들이 획을 긋고 각각의 네모난 면 안에 나무와 주택, 아파트가 펼쳐져 있다.
광활한 서부, 태평양과 만나는 LA, 천사의 도시.
태평양 해안가와 맞닿은 LA국제공항 활주로에 터치 다운!
Welcome to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elcome to Los angeles
"하이. 비자와 서류를 보여주세요. 미국 방문은 처음이십니까"
"아니요. 3년 전에 학생비자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잠시만요...음...저를 따라오세요"
손으로 까딱까딱 '넥스트~'하며 '벼리'를 부르던 그. 검정색 유니폼에 권총을 찬 입국심사관은 말이 없다.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측한 2차 심사 대상. 미국 방문 기록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종로구 미국대사관에서 영사의 확인 작업이 생각나 조금은 긴장된다. 그래도 무덤덤한 표정을 잃지 말자.
입국심사대 코너에 위치한 2차 심사실. 창구 안 여자 심사관은 부를 때까지 기다리란다.
"학생비자 당시 미국에 얼마나 머물렀습니까"
"2004년 9월에 인디애나주로 입국해 2005년 12월 한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보관한 I-20(학생비자 증명서류)를 볼 수 있을까요? 흠...텍사스주에서는 왜 커뮤니티 칼리지를 그만뒀나요?"
"당시 어학연수였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해 대학 졸업하기 위해서 자퇴(Withdraw)한 겁니다"
"전산망에는 Central Texas College에서 아직도 재학 중이라고 나오네요. 한국 간 이후 다시 온 건 처음인가요?"
"그래요? 이상하네요...한국 귀국 후 미국 재방문은 처음입니다"
오랜만에 영어로 이야기를 하려니 문법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해야 할 말만 단어를 강조하니 대화는 된다. 친철하지 않은 태도에 벼리 역시 일부러 덤덤한 표정으로 할말만 한다.
도장 꽉. "가보세요"
"엘.에.이 국.제.공.항.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짐가방 2개, 가방 1개, 정장을 담은 꾸러미 하나.
입국장 유리 앞으로 보이는 차들...시끄럽고 페인트 벗겨진 도로변. 다른 얼굴 다른 피부...LA이다.
<시간 맞춰서 갈 테니 도착하면 공중전화를 찾아서 전화해라>
대용 선배라는 분이 픽업을 나온다고 했다.
동전이 없다. 어쩌지...
"익스큐즈미?"
"에?"
"아 놀라지 말아요...나는 이곳에서 나온 사람이에요. 사람들을 돕는데 기부를 좀 하세요."
"...아..."
"엘에이 처음이지요. 환영해요. 기부를 하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엉겁결에 환전해 온 5달러를 건넨 뒤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LA 국.제.공.항 직원들은 기부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줌마 목소리의 한국말이 나온다. 하지만 벼리에게 돈 받은 흑인 여성은 이미 사라진 상태.
"대용 선배님. 안녕하세요 예. 접니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요. 네네...스타벅스 커피샵쪽에 있겠습니다."
이메일로만 주고받았지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다. 신입을 위해 직접 마중나와 준다고 하니 감사할 뿐. 20분, 40분, 한 시간....대용 선배는 오지 않았다. (근데 선배라지만 초면부터 반말을 하신다. 선배니까...)
'전화를 한 번 더 할까. 아니야 선배께서 알아서 오시겠지...왜 안 오지. 근데 어떻게 생긴 분이지? 기념 촬영이나 하자. 진짜로 LA에 도착했구나~'
"선배님... 네 저 노스웨스트 타고 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항공편을 잘못 말씀드렸네요. 네네...죄송합니다"
대용 선배 목소리에 짜증이 들어가 있다. 살짝 주눅들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위치를 잘못 말한 내 잘못이다.
"벼리? 딱 보니까 너 같더라. 오느라고 수고했다.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자. 너 뭐 마실래. 야 비행기 타고 온 사람이 옷을 잘 차려입고 왔네. 00이는 추리닝 입고 왔던데..."
"죄송해요. 저 때문에...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혼다 시빅 트렁크에 짐가방을 넣고 LA국제공항을 나섰다. 시차 탓인지 정신이 멍하기 시작한다.
"회사 사람들이 다 너 기다린다. 사장이 너 온다고 점심 사준다고 했다. 00이는 벌써 출근해서 너 기다리고 있고. 피곤하겠지만 하숙집에 짐 내리고 밥부터 먹으러 가자. 양복 가져온 거 있지? 사장이랑 점심 먹는데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는 게 좋겠다. 근데 LA는 와본 적 있니?"
대용 선배는 이것저것 질문하지만 정신이 혼미한 벼리는 "예예..."를 하며 격식차리기 바쁘다. 군대는 아니지만 선배를 대면하는 게 어색하고 긴장되기 마련이다. 프리웨이 고가도로(405) 밖으로 도심이 펼쳐진다. 교차로로 들어서더니 다른 프리웨이로 나온다(10번). 사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미국 와 봤다고? 그럼 적응은 빠르겠네. LA까지 먼 길 왔다."
큰 나무가 심어진 가로수들 사이로 주택들이 들어차 있다. "동네가 좋네요" "이 동네가 한인타운에서 그래도 꽤 좋은 동네다. 하숙집은 나도 사는 곳이고 아주머니가 잘해주신다."
대용 선배 첫인상과 말은 차갑다. 어렵다. 어색하다...
하숙집 뒷마당 별채에 짐을 풀었다. '아~미국 냄새' 카펫이 깔린 미국 집에서 나는 특유의 주택냄새. 시큼하고 낯선 냄새는 여전하다. 인디애나나 텍사스나 캘리포니아나 나무 주택에서 나는 이 냄새...미국에 다시 오긴 진짜 왔구나.
당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곳을 차를 타고 움직인다. LA 한인타운 박대감네 도착. 서울 면접에서 본 사장이 앞에 있다. "어 어서와. 수고했어요. 야 정대용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빨리 앉어" 동기 00도 인사한다. 일주일 먼저 와 있어서인지 제법 여기 사람 같다.
"벼리'씨' 온다고 사장님이 밥 사준다고 했어요. 선배들이 벼리 오빠라고 하지 말래요. 회사 동기 사이에 '오빠'라는 말 좀 그렇대요"
정신이 없다. LA 시간 낮 12시30분. 한국 시간 오전 5시30분...눈 앞의 사물이 들어오지만 뇌는 거부한다. 말을 하지만 벼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후아...
인상 좋은 사장은 아는지 모르는지 소고기를 잔뜩 시킨다.
"기자할라고 LA까지 왔는데 많이 먹어야지.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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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께서 10주년이란 글을 쓰셨네요. 이 카페가 생기자마자 가입할 당시 군 제대 보름 앞 둔 머슴아였지요.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실감은 안 나지만 저 역시 많은 일이 있었네요. 생각지도 못 한 미국행. (한국에서 기자를 꿈꿨는데 미국에서 밥 벌어 먹고 살 줄이야....) LA통신이랍시고 몇 번 이 곳 소식을 전했지만 2년 가까이 뜸 했네요. 새해를 맞아 저도 한 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이 카페와 10년 살아보니 '인생 예측불허' 더군요. 모두들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첫댓글 만에 하나라도..제가 엘에이에 가는 날이 있다면..그때까지 별님이 거 계신다면..꼭 함 뵙고 싶다는...ㅋㅋ 여튼 이국 타향에서도 늘 건필하시길!
꼭 한번 오셔요. 비수기 이용하시면 항공이 싸고 가이드 해드립니다.
사랑해요. 벼리꿍ㅋㅋㅋㅋㅋ
1980...부끄러워요 ㅋㅋㅋㅋ
인생은 알 수 없네요~ 건필하세요~
그렇죠. 건필하세요. 꾸벅
USA1인걸보니 장편연재인가보네요.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