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지나치는 보석 같은 볼거리가 이 땅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수줍은 매력이 일품인 이들을 찾아 경상북도로 떠난다. 입소문을 타지 않아 한가하고 고요해 그 아름다움이 눈에 더욱 들어온다.
경북 글·사진=이진경 객원기자 취재협조=경상북도관광공사 www.gtc.co.kr
켜켜이 돌을 쌓아 만든 고모산성의 성벽
문경 토끼비리와 고모산성
고단하지만 아름답구나
서울에서 문경까지는 KTX나 비행기가 없다. 사실 굳이 탈 필요도 없다. 서울 도심에서 출발해 차로 2시간30분이면 어느덧 문경이다. ‘경상도는 멀다’는 심리적 부담감에서 경상북도 문경은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차로 몇 시간이면 닿는 이 길을 우리 선조들은 걸어 다녔다. 동래에서 한양까지. 죽령을 넘으면 보름이 걸리고, 추풍령을 넘으면 보름에서 하루가 더 걸렸다. 하루라도 빨리 한양 땅을 밟고자 했던 선비들은 토끼비리를 따랐다. 토끼비리. 영남대로 중 가장 험하다고 알려진 길이다.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은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만나 산간 협곡을 S자 모양으로 흐른다. 물은 흘러 벼랑을 냈고, 그 벼랑 위에는 3km의 길이 났다. 어찌나 험한지 조선시대에는 ‘관갑의 사다리길串岬棧道’이라 불렀다. 선현들은 관갑잔도를 두고 ‘꼬불거리는 길이 양의 창자처럼 길고, 비탈져 굽은 길은 새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서거정’, ‘굼뜬 말은 빠른 걸음을 자랑하다가 여기에 와서는 천천히 걸어간다-김종직’고 노래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길을 걸었다. 조금 험해도 한양까지 14일면 닿는 지름길인데다가 과거에서 좋은 소식을 기대하는 염원까지 담았다. 토끼비리가 자리한 문경은 한자로 ‘들을 문聞’에 ‘경사 경慶’ 자를 쓴다. 짚신 발로 얼마나 걸었던지 지금까지도 길이 반들반들하다.
토끼비리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은 고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927년. 후백제군에 쫓기던 태조 왕건은 이곳에 다다라 길을 잃는다. 어디에도 길이 보이지 않는 아찔한 상황. 마침 토끼가 나타나 벼랑을 따라 가는 것을 보고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다. 비리는 벼랑을 뜻하는 ‘벼루’의 사투리다.
토끼비리는 국가지정 명승 중 하나다. 길로 지정된 국가지정 명승 6곳 중 토끼비리와 하늘재, 문경새재 3곳이 문경에 자리했다.
선조들이 노래한 건 토끼비리의 험한 길만이 아니었다. 한시 속의 토끼비리는 봉우리마다 빼어난 경치에 가는 길을 더디게 하고, 계곡 산천의 기이한 풍경을 선사했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토끼비리와 이어진 길을 따라 고모산성으로 향한다. 곧 진남문이 나오고,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이후의 주막 터도 보인다. 성황당도 있다. 1796년에 지어져 200살이 넘은 성황당은 그보다 오래 살아온 커다란 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산성의 역사는 더 길다. 고모산성은 삼국시대인 470년경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짐작된다.
언덕을 따라 어느 정도 산성에 올랐다 싶으면 뒤를 돌아보자. 진남문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뻗은 성벽의 모양새가 시원하다. 토끼비리도 한눈에 조망된다. 굽이치는 영강의 물줄기는 경북팔경 중 으뜸이라는 진남교반을 만들어 내며 절정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풍광도 풍광이지만 산성 자체가 예쁘다. 오늘날에 와서 복원했다지만 켜켜이 돌을 쌓아 만든 솜씨가 뛰어나고 정갈하다.
고모산성의 성벽이 진남문을 가운데에 두고 시원스레 뻗어 있다
상주 나각산
강, 들, 산을 한눈에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수천 산자락을 굽이돌고 수만 가닥의 하천과 내를 아우르며 흐른다.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모여 강이 되는 곳은 낙양의 동쪽. 낙양은 상주의 옛 지명이니 낙동강은 상주에 이르러 비로소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상주에서 강이 된 낙동강은 상주의 한 마을에 ‘낙동’이라는 지명을 유일하게 허락했다. 낙동강은 마을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마을 한켠에는 나각산이 솟아 있다.
문경 고모산성에서 차로 20분을 달리면 상주고, 20분을 더 달리면 높이 240m로 야트막한 나각산이 나타난다. 산책 삼아 오를 만한 만만한 높이라 체력에 자신이 없는 이들까지 넉넉하게 품어 안는 산이다. 나각산은 낙동면이나 물량면 어느 방면으로 올라도 상관없다. 낙동면 쪽은 완만한 대신 조금 길고, 물량면 쪽은 짧은 대신 조금 급하다. 나각산 전망대까지는 낙동면에서 출발해 걸음을 서두르면 1시간이 걸리고, 물량면에서는 걸음을 서두르기 어려워 1시간이 걸린다. 울울창창한 솔숲을 따르는 길, 서두를 이유가 크게 없다면 1시간30분가량 여유를 두고 찾는 게 좋다.
나각산은 색이 아름다운 산이라고 했다. 봄에는 연둣빛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드는 산야가 나각산 아래 펼쳐진다. 집집마다 덕장마다 매달아 놓은 곶감의 향연에 상주가 온통 주홍빛으로 물드는 가을에는 나각산을 찾을 이유가 배가 된다. 겨울은 가장 쓸쓸한 계절이다. 곡식이 베어나간 들판은 황량하고 낙동강의 물빛도 어둡다. 그래도 나각산에 오를 이유는 충분하다. 나각산 주변은 나각산보다도 야트막해 나각산 전망대는 거침없이 풍경을 쏟아 낸다. 낙동강을 품은 들판과 저 멀리 산까지, 3~4시간 땀을 흘려 높은 산에 오른 듯한 보람을 준다.
나각산 출렁다리
안동 유교랜드 즐기며 배우는 유교
양반의 고장 안동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작년 6월 문을 연 유교랜드(054-820-8800, confucianland.com)는 고루하게만 여겨지는 유교를 놀이처럼 즐기며 배우는 공간이다.
유교랜드로의 여정은 타임터널을 통과하며 시작된다.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터널을 통과하면 비로소 유교랜드의 본 전시관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대동마을. 유교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한 대동마을에서는 앞으로 전시될 소년, 청년, 중년, 노년의 연령대별 주인공 캐릭터와 접하게 된다. 대동마을을 지나 소년선비촌, 청년선비촌, 중년선비촌, 노년선비촌 등으로 구성된 전시관에서는 각 연령대에 행하는 유교의 문화와 관습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소년 시절의 들돌 들기라든지 청년 시절의 과거 시험 보기, 중년 시절의 성벽 쌓기 등이 예다. ‘예전에는 이랬다’ 하고 사진이나 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유교랜드에서는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다.
정자관을 본뜬 유교랜드의 건물 모양도 독특하다. 정자관은 옛 선비들이 평상시에 머리에 쓰던 관.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 선생을 기려 상공에서 바라보면 매화꽃잎 네 장이 동그랗게 둘러싼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유교랜드가 자리한 안동문화관광단지 내에는 허브 정원과 식물원 등의 시설을 갖춘 온뜨레피움, 퍼블릭 골프장인 휴그린, 안동 리첼 호텔이 모여 있다.
Travel Info
▶체험
고모산성이 자리한 문경 진담 일대에는 고 카트, 짚 라인 등 레포츠 시설이 몰려 있다. 사격도 그중 하나. 클레이사격, 권총, 공기소총을 체험할 수 있는 문경 사격장(054-553-0001, www.mgshooting.or.kr)은 전국 6개 사격장 중 하나다. 클레이사격 25발 1만9,000원, 권총 10발 1만3,000원, 공기소총 10발 4,000원.
상주시에서 운영하는 상주 국제승마장(054-535-5634~5, horse-riding.sangju.go.kr)에서는 승마 체험이 가능하다. 승마전용체험장을 세 바퀴 도는 단순한 말 타기 체험에서부터 마방 먹이주기, 승마 강습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상주 국제승마장은 세계대학생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한 국제 규격의 승마장이다. 승마 체험 월요일 휴무. 승마 5,000원, 승마+마방 먹이주기 1만원, 승마 강습(40분) 3만원.
▶음식점
백련지(경북 상주시 함창읍 구향리 169-17, 054-541-0203)는 상주 함창읍에서는 6년째 영업 중인 향토음식전문점이다. 문경과도 가깝다. 대표 메뉴인 백련 한정식 코스를 주문하면 구절판, 잡채, 전, 차돌박이 등 십여 가지 요리와 연잎밥과 나물, 국 등이 함께 나온다. 천연 재료만을 사용하는 건 백련지의 원칙. 연은 인근 마을에서 공수한다.
안동 황우는 안동 한우의 대표 브랜드다. 안동 황우촌(경북 안동시 옥야동 306-44, 본점 054-841-8222, 식당 054-857-3392)은 농장에서 직접 기른 질 좋은 한우를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는 식육 식당이다. 택배 주문도 받는다.
안동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는 봉화의 송이 요리를 맛보자. 일부러 찾아도 후회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맛이다. 송이돌솥밥, 송이전골, 송이전 등 송이 향을 듬뿍 머금은 요리가 많다. 봉화 읍내 인근의 인하원(경북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713번지, 054-672-8289, 673-9881)이 잘한다.
▶숙소
한옥 민박이나 모텔, 여관 외에 마땅한 숙소가 없던 안동에 지난 2012년 10월 안동 리첼 호텔(054-850-9700, www.richell-andong.co.kr)이 문을 열었다. 총 객실 수는 90개. 스탠다드, 디럭스, 스위트, 로얄스위트 등급으로 나뉜다.
모든 객실에는 발코니가 딸려 있으며, 싱크대와 전기레인지, 냄비 등 간단한 취사도구가 마련돼 있다. 일반적으로 조식은 뷔페로 제공되며, 객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에는 해장국 등으로 대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