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나혜석의 조카 나영균의 회고에 따르면, 나혜석은 이혼 이후의 수기를 어느 잡지에 연재할 생각으로 계속 글을 썼다. 다만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었다. 원고를 “쌓은 높이가 적어도 50센티미터는” 되었지만, “원고더미가 다락에 쌓여만 있다가 6.25 전쟁이 나면서 난리 통에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그녀 자신도 새로운 글을 발표하는 것만이 사회적 재기의 방법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가능성은 차단되었고, 그녀는 조금씩 세상에서 잊히기 시작했다.
(30-31)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이에요. 당신 댁처럼 영감 아들 간에 첩이 넷이나 있는 것도 배우지 못한 까닭이고, 그것으로 속을 썩이는 당신도 알지 못한 죄이에요. 그러니까 여편네가 시집가서 시앗(첩)을 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여편네 두고 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르쳐야만 합니다.’하고 싶었다.
(59)
아버지가 “계집애라는 것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시부모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면 그만이니라.” 하실 때에 “그것은 옛날 말이에요. 지금은 계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 하던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담뱃대를 드시고 “뭐 어쩌고 어째, 네까짓 계집애가 하긴 무얼 해. 일본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아니 하고 귀한 돈 없애고 그까짓 엉뚱한 소리만 배워가지고 왔어?” 하시던 무서운 눈을 생각하며 몸을 흠찔했다.
(61-62)
경희는 이제까지 비녀 쪽 찐 부인들을 보면 매우 불쌍히 생각하였다. ‘저것이 무엇을 알고 저렇게 어른이 되었나. 남편에게 대한 사랑도 모르고 기계같이 본능적으로 저렇게 금수와 같이 살아가는구나. 자식을 귀애하는 것은 밥이나 많이 먹이고 고기나 많이 먹일 줄만 알았지 좋은 학문을 가르칠 줄은 모르는구나. 저것도 사람인가.’ 하는 교만한 눈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오늘은 그 부인네들이 모두 장하게 보인다. 설거지하는 시월이 머리에도 비녀가 꽂힌 것이 저보다 훨씬 나은 것도 같이 보인다. 담 사이로 농민의 자식들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저보다 훨씬 나은 딴 세상 같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저는 저 같은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고, 제 몸으로는 저와 같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저와 같이 이렇게 가기 어려운 시집을 어쩌면 그렇게들 많이 갔고, 저와 같이 이렇게 어렵게 자식의 교육을 이리저리 궁구하는 것을 저렇게 쉽게 잘들 살아가누.’ 생각을 한즉, 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부인들은 자기보다 몇십 배 낫다.
(125-126)
다른 나라 남자들은 그러할지 모르거니와 굴레를 벗지 못하는 조선 남자들에게 진보가 있으면 몇 푼어치가 있겠소? 그중에도 되지 못한 것일수록 제 앞 하나 꾸리지 못하는 것이 언필칭(말을 할 때마다 이르기를) 여자가 어머니 어떠니 하는 것을 보면 참 아니꼬와. 3년 전에 먹은 오례송편이 다 나올 듯하지. 실상 학식 있고 인격 있는 남자들이야 다 자기 앞을 꾸려 가려기에 어느 여가에 여자 타령할 여유가 있답디까?
(129)
얼마 있지 않은 동안에 어찌 알겠소마는 몇 번 활동사진에서 보니까 한번 마음에만 들면 비록 유부녀 유처자라도 목숨을 바쳐 가며 끈기 있게 사랑을 할 줄 알며, 한 번 틀리는 일이 있으면 언제 알았더냐시피 씩 돌아서면 고만이고 대담스러운 단념심이 구비하였습니다. 묘년(妙年, 스무살 안팎의) 여자를 유혹해 내는 수단도 용하거니와 미남자의 꾀에 빠지지 아니하는 피신 수단도 또한 용합니다. 그만치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남녀 교제라도 재미있을 것이요, 의미가 있고 자유가 있고 평등이 있을 것입니다.
(163)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동양 사람이 서양을 동경하고 서양인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반면에 서양을 가 보면 그들은 동양을 동경하고, 동양 사람의 생활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자기 생활에 만족하는 자는 없사외다. 오직 그 마음 하나 먹기에 달린 것뿐이외다. 돈을 많이 벌고 지식을 많이 쌓고 사업을 많이 하는 중에 요령을 획득하여 그 마음에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외다. 즉 사람과 사물 사이에 신(神)의 왕래를 볼 때뿐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외다.
(163-164)
부부간에 어떻게 하면 화합하게 살 수 있을까. 일 개성과 타 개성이 합한 이상 자기만 고집할 수 없는 것이외다. 다만 극기를 잊지 마는 것이 요점입니다. 그리고 부부 생활에는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사외다. 제1, 연애 시기의 때에는 상대자의 결점이 보일 여가 없이 장처(長處, 장점)만 보입니다. 다 선화(善化) 미화(美化)할 따름입니다. 제2, 권태 시기, 결혼하여 3, 4년이 되도록 자녀가 생(生)하여 권태를 잊게 아니 한다면 권태증이 심하여집니다. 상대자의 결점이 눈에 띄고 싫증이 나기 시작됩니다. 통계를 보면 이 때 이혼 수가 가장 많습니다. 제3, 이해 시기, 이미 부(夫)나 처(妻)가 피차에 결점을 알고 장처도 아는 동안 정의(情誼)가 깊어지고 새로운 사랑이 생겨 그 결점을 눈감아 내리고 그 장처를 조장하고 싶을 것이외다. 부부 사이가 이쯤 되면 무슨 장애물이 있든지 떠날 수 없게 될 것이외다. 이에 비로소 미와 선이 나타나는 것이요, 부부 생활의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192-193)
기백만 인(人) 여성이 기천 년 전 옛날부터 자식을 낳아 길렀다. 이와 동시에 본능적으로 맹목적으로 육체와 영혼을 무조건으로 자식을 위하여 바쳐 왔나이다. 이는 여성으로서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한 도덕이었고, 한 의무이었고, 이보다 이상 되는 천직이 없었나이다. 그러므로 연인의 사랑, 친구의 사랑은 상대적이요, 보수(報酬)적이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은 절대적이요, 무보수적이요, 희생적이외다. 그리하여 최고 존귀한 것은 모성애가 되고 말았사외다. 많은 여성은 자기가 가진 이 모성애로 인하여 얼마나 만족을 느꼈으며 행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모성애에 얽매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비참한 운명 속에서 울고 있는 여성도 적지 아니하외다. 그러면 이 모성애는 여성에게 최고 행복인 동시에 최고 불행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자기 개성을 잊고 살 때, 모든 생활 보장을 남자에게 받을 때 무한히 편하였고 행복스러웠나이다마는, 여자도 인권을 주장하고 개성을 발휘하려고 하며, 남자만 믿고 있지 못할 생활 전전에 나서게 된 금일에는 무한히 고통이요, 불행을 느낄 때도 있는 것이다.
(197)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운명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속 마디를 지은 운명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쇠사슬이외다. 그러나 너무 비참한 운명은 왕왕 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반역케 합니다. 나는 거의 재기할 기분이 없을 만치 때리고 욕하고 저주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필경은 같은 운명의 줄에 얽히어 없어질지라도 필사의 쟁투에 끌리고 애태우고 괴로워하면서 재기하려 합니다.
(202-203)
감정의 순환기가 10년이라 하면, 싫었던 사람이 좋아도 지고 좋았던 사람이 싫어도 지며, 친했던 사람이 멀어도 지고 멀었던 사람이 친해도 지며, 선한 사람이 악해도 지고 악했던 사람이 선해도 지나이다. 씨의 10년 후 감정은 어떻게 될까. 이상에도 말하였거니와 부부는 세 시기를 지나야 정말 부부 생활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그대의 장처 단처를 다 알고 씨는 나의 장처 단처를 다 아는 이상 상호 보조하여 살아갈 우리가 아니었던가.
하여간 이상 몇 가지 주의로 이혼은 내 본의가 아니요, 씨의 강청이었나이다. 나는 무저항적으로 양보한 것이니 천만 번 생각해도 우리 처지로 우리 인격을 통일치 못하고 우리 생활을 통일치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울러 바라는 바는 여든 노모의 여생을 편하게 하고, 네 아이의 양육을 충분히 주의해 주시고 나머지는 씨의 건강을 바라나이다.
(205)
“아니지, 몸이 늙어 갈수록 마음은 젊어 가는 것이야. 오스카 와일드의 시에도 ‘몸이 늙어 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젊어 가는 것이 슬프다’고 했어, 그러기에 서양 사람은 나이 관념이 없이 언제까지든지 젊은 기분으로 살 수 있고, 동양 사람은 늘 나이를 생각하기 때문에 쉬 늙어.”
(206-207)
이혼 사건 이후 나는 조선에 있지 못할 사람으로 자타 간에 공인하는 바이었고, 사오 년간 있는 동안에도 실상 고통스러웠나니, 제1, 사회상으로 배척을 받을 뿐 아니라 나의 이력이 고급인 관계상 그림을 팔아먹기 어렵고 취직하기 어려워 생활 안정이 잡히지 못하였고, 제2, 형제 친척이 가까이 있어 나를 보기 싫어하고, 불쌍히 여기고, 애처로이 생각하는 것이요, 제3, 친우 지인들이 내 행동을 유심히 보고 내 태도를 눈여겨보는 것이다. 아니다, 이 모든 조건쯤이야 내가 먼저 있기만 하면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내 살을 에이는 듯 내 뼈를 긁어 내는 듯한 고통이 있었나니 그는 종종 우편배달부가 전해 주는 딸 아들의 편지이다. ‘어머니 보고 싶어’ 하는 말이다. 환경이란 우습고도 무서운 것이다. 환경이 일변하는 동시에 과거의 공적은 공(空)이 되고 과거의 사실만 무겁게 처져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따라다니는 과거를 껴안고 공에서 생(生)의 목록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247)
나는 분만기에 닥쳐올수록 이러한 생각이 났다. ‘내가 사람의 ‘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그러나 있기에 자식이 생기는 것이지.’하며 아무리 이리저리 있을 듯한 것을 끌어 보니 생리상 구조의 자격 외에는 겸사가 아니라 정신상으로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품이 조급하여 조금조금씩 자라 가는 것을 기다릴 수 없을 듯도 싶고, 과민한 신경이 늘 고독한 것을 찾기 때문에 무시로 빽빽 우는 소리를 참을 만한 인내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무지몰각하니 무엇으로 그 아이에게 숨어 있는 천분과 재능을 틀림없이 열어 인도할 수 있으며, 또 만일 먹여 주는 남편에게 불행이 있다 하면 나와 그의 두 몸의 생명을 어찌 보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의 그림은 점점 불충실해지고 독서는 시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자신을 교양하여 사람답고 여성답게, 그리고 개성적으로 살 만한 내용을 준비하려면 썩 침착한 사색과 공부와 실행을 위한 허다한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자식이 생기고 보면 그러한 여유는 도저히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내게는 군일 같았고, 내 개인적 발전상에는 큰 방해물이 생긴 것 같았다. 이해와 자유의 행복된 생활을 두 사람 사이에 하게 되고, 다시 얻을 수 없는 사랑의 창조요 구체화요 해답인 줄 알면서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행복과 환락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어찌나 슬펐는지 몰랐다.
(255)
그리하여 저 소유자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으레 제 물건 찾듯 이 불문곡직하고 찾는구나. 나는 웃음이 나왔다. “세상 일이 이다지 허황된다……” 하고. 그리고 “에라 가져가거라.”하는 퉁명스러운 생각으로 지금까지 맡아 두었던 두 젖을 그 쪼그만 소유자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 하회를 기다리고 앉았었다. 그 쪼끄만 주인은 아주 예사롭게 젖꼭지를 덥석 물더니 쉴 새 없이 마음껏 힘껏 빨고 있다. 내 큰 몸뚱이는 그 쪼그마한 입을 향하여 쏠리고 마치 허다한 임의의 점과 점을 연결하면 초점을 달하듯 내 전신 각 부분의 혈맥을 그 쪼그마한 입술의 초점으로 모아드는 듯싶었다. 이와 같이 벌써 모(母)된 선고를 받았다.
(270-271)
최후로 씨게 요망하는 바는 나도 신여자로 자처한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신인이라고 해 주는 것을 별로 영광으로 알지 않는다 함이외다. 나는 사상가도 아니요, 교육가도 아니요, 예술가도 아니요, 종교가도 아니외다. 다만 사람의 탈을 썼고, 여성으로 태어났으며, 사랑으로 살아갈 도리만 찾을 뿐이외다. 혹 다른 때 인연을 맺게 되더라도 명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씨여 사상적 방황이란 그다지 못한 일이오니까? 방황해야만 할 때 방황치 말라는 것은 못된 일이 아니오니까? 그다지 조바심을 하여 걱정할 것이야 무엇 있으리까? 방황도 아니 하고 고정부터 하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화석의 그림자나 아닐까요?
(317-318)
자녀 중 만일 허물이 있을 때는 그 어머니를 책하지 않고 그 아버지를 책합니다. 아버지는 먼저 죽고 어머니가 있다면 그 어머니는 할 수 있는 대로 자녀를 교양시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먼저 죽고 아버지가 있다면 다른 여자가 들어와 살림을 하게 되는 동시에 자녀 교육은 등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위하여서는 어머니가 살아 있고 아버지가 먼저 죽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만 있을 때는 그 책임을 어머니에게 지우나, 양친이 있을 때는 그 책임을 아버지에게 지웁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 다른 남편에게 가면 그 책임을 남자에게 지우며, 결혼 아니 한 여자가 아이를 가질 때는 그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게 됩니다. 자식이 있고 이혼소송이 나게 되면 재판장은 양친을 보아 유리한 편으로 자식의 책임을 지우게 합니다.
(322)
사람은 누구든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사람은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한다. 아무라도 한 번이다 두 번은 다 자기 힘을 자각한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즉 자기를 잊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자다. 또 사람은 자기 내심에서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가 있는 것이다. 그(보이지 않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곧 자기를 잊지 않는 것이 된다. 요컨대 우리들의 현재 및 미래의 생활 목표의 신앙 및 행복은 오직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무것도 우리의 맘을 기쁘게 해 줄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자기 내(內) 생활의 전개를 자기가 보장하려는 것인만치 지실(摯實)할(손에 잡히는 열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