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가운데 만난 고택 - 대구 옻골 마을
오월의 잎사귀들이 윤潤지다. 신록이 나날이 짙어지는 오월이면 세상은 온통 녹색물감으로 채색된 한 폭 수채화 같다. 오월은 잘 살고 싶어진다. 저 윤진 잎사귀들처럼 빛나게 살고 싶어진다. 마침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그치고 난 후의 가로수들은 막 세수를 끝낸 아이처럼 빛이 난다.
옻골 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 마치 보물찾기를 한 것처럼 흥분되고 반가웠다. 질주하듯 달리는 세월만큼 무심한 도심 한복판에, 시간을 거스른 채 보존되어 있는 고택이 있다. 조선시대 얼굴 그 모습 그대로 느리게
흘러 시간을 이어준 사람들, 경주 최씨 종가다.
지하철 해안역에서 방촌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서 3KM쯤 가다보면 길이 끝나는 무렵 만나는 오래된 마을이 있다. 둔산동이라는 지명보다 근처에 옻나무가 많아 옻골 마을로 불리는 마을이다. 경주최씨 칠계파(漆溪派)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성촌락으로 현재 20여호의 고가들이 있다. 마을을 가는 동안 전혀 무료하지 않도록 양쪽 길에 이팝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즐비해 마중한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세월을 이어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선비수라 불리는 수령 350년 된 회화나무 두 그루가 유서 깊은 전통 양반마을임을
말해준다. 옻골 마을의 입향조인 일명 최동집 나무이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 백불 고택
이 마을 제일 안쪽에 조선 영조 때의 학자로 영남문인 3인중 1인인 백불암(百弗庵) 최흥원선생의 종택인
백불고택(百弗古宅)이 있다. 이 고택은 대구지역의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대구시 민속자료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랑채에 걸린 2편의 편액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최흥원 선생의 60세 이전의 호였던 수구당(數咎堂)은 ‘자신의 허물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이며, 주자학의 百弗知 百弗能(백가지 아는 것도 없고,
백가지 능한 것도 없다.)에서 유래된 백불고택은 60세 이후에 쓴 것으로 역시 겸손한 학자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백불고택 편액이 걸려있는 사랑채 뒤로 걸음하다 마침, 종손 안채에서 나오는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내 집임에도 언제든 나그네에게 문을 열어 놓는 불편함이 느껴져 얼른 눈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한다. 저들은 종가의 전통을 이어오기 위해 자신의 불편함 쯤은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었다. 그의 할머니가 그랬듯, 어머니가 그랬듯 400년 동안 최씨 종가가 오롯이 전해져 내려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권리 대신 전통과 가문을 위해 살아왔을까.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은 짐들이 자부심으로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당을 황급히 빠져 나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공간
종가 동쪽으로는 조상을 위한 공간으로 보본당 이라는 재실이 있다. 보본당은 불천위(위패를 모신 후 옮기지 않는 것)제를 올리기 위한 제향공간이다. 옻골의 불천위는 대암 최동집선생을 모신 별묘와 백불암 최흥원 선생을 모신 대묘가 그것이다. 특히 이 보본당 서쪽 방은 우리나라 실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류형원의 반계수록을 영조의 명을 받은 최흥원 선생이 최초 교정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옛 선비들은 결코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죽은 자를 산 자와 같은 공간에 두고 여전히 문안하며 살아왔다. 사소한 일상부터 혼례, 과거, 벼슬을 얻게 될 때도 반드시 사당에 들러 조상을 뵈었다. 그들은 죽음을 결코 끝, 단절로 끝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들의 장례 문화는 화려한 꽃상여로 치장하고 또 다른 시작으로 승화하는 축제로 마감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꿈을 키웠던 강학당
느긋한 마음으로 동계정(東溪亭) 앞에 멈춰 섰다. 담장 안으로 웃자란 잡풀들이 오래 동안 비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 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글 읽는 소리들로 가득 찼을 이곳. 세월의 무상함이 스친다. 방패연처럼 마냥 높이 날아오르고 싶었던 그 시절의 우리들처럼 이곳에서 글을 읽던 아이들도 이미 어른이 된 모양이다.
얼추 키가 비슷한 나무들로 연결시켜 안과 밖의 경계를 말해 놓을 뿐, 마냥 열려 있었을 저 나무 문 너머로 계곡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여름이면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물장난을 쳤을, 내 유년시절의
추억과도 잇닿아 있어 슬며시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온다.
아름다운 문화유산 옛 담장 길
우리의 옛 선비들이 그랬듯이 옻골 사람 역시 모두 자연과 하나로 그 긴 세월을 살아오고 있었다. 집을 지을 때도 나무를 깎거나 다듬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원목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러니 짜 맞춰져 반 듯 반듯한 틀보다는 곡선이요, 유연하니 마음 또한 부드럽다. 담장 역시 흙을 짓이겨 담장을 쌓고 소나무 가지를
기와처럼 흙 담에 얹어둔 토속담장이다.
아름다운 옻골 마을의 옛 담장은 등록 문화재 제 266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길이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길을 따라 걸으니 오월의 따스한 봄볕이 등을 감싸 안는다. 어떤 집의 담장 너머로 때늦은 자목련이 고갤 내밀고, 어떤 집 뜰에는 붓꽃과 목단이 한창이다. 이 느긋한 여유로움과 평화로움. 비개인 하늘에 햇살이 부서지고 길을 걷다 마주친 우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는 동네 아낙의 고운 미소 위로 잠시 봄빛이 머문다.
첫댓글 대구에 가볼만한 곳이 있군요....고택만큼이나 ... 정갈한 글입니다 ^^
헐~~ 대구 사람도 저기가 어딘지 잘 모른다는 ㅜㅜ
강아지풀님한테 물어서 가봐야 할듯해요 ~~
대구도, 가볼만한 곳 제법 됩니다. ㅎ
프쉬케님 저보다 더 대구분이시더군요.
아무래도 어릴 적 추억의 곳이란 고향이라 더 정감이 가기 마련이죠.
전, 아직도 대구가 타향같아요.
저도 오래전에 갔었던 도심속의 고택이 맘 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
장독대 바로 앞에 방이 있는데 조그만 툇마루가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던지요
벽장도 있어서 옛생각도 났구요 ....제바로 아래 여동생이 아무리 찾아도 없는거예요
동네를 다찾아도 없어서 엄니가 벽장을 뒤져보니 ....
글쎄 ..토종꿀 먹다가 취해서 단지 끌어안고 잠이 들었던 거예요ㅜ.ㅜ.
ㅎㅎ 예전에 꼭 그런 개구진 동생이 하나씩 있었어요. ㅎㅎ
벽장..... 숨바꼭질 하면 제일 먼저 숨는 곳이잖아요.
거기 숨으면 젤 먼저 들키던 곳.
댓글에서 웃음이 번집니다.^^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란 말 깊이 다가오네..그 위에 중첩하듯 원근법으로 찍은 사진도 멋지고...전문 여행칼럼니스트가 다 되었네..니가 쓴 책 나도 읽고 싶네..ㅎㅎㅎ
사진은 내가 찍은거 아냐. 사진사가 찍었어.ㅡ,ㅡ;;
그렇구만...언젠가 니가 농담처럼 사진은 내가 찍고 글은 니가 쓰자했던 생각이 나는구만...
강님께서 책까징 쓰셨우????
소개해줘요 잉~~
이 친구 은근히 부끄럼(?)이 많아 공개 안할겁니다 ㅎㅎㅎ
아이고, 책 쓴거 아니예요.
여러 사람이 쓴 글들이 모여져 한권의 책이 된거죠.
남이 쓴 것에 그저 한 두편 얹혀진것 뿐이예요.
전 개인적으로 동계정이 좋았습니다.
멋스러운 현판도 그랬고
여유있는 공간과 주변풍광과의 어우러짐.
최씨종가의 여러 고택들 중에서
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여기 오셨으면, 연락 하셔서 차 한잔 할 걸 그랬어요.
별꽃님은 절 모르시겠지만,
이전에 대구 정모할 때, 별꽃님이 대구 사셨었다는 소릴 들었구요.
막연한 친근감까지 갖고 있었더랬죠..
ㅋㅋ 지금도 대구 살고 있답니다.
부산에서 온지 벌써 반년이 지난걸요^^
아이고 그러시군요.
제가 이렇게 정보에 늦에 놓치는 게 한두가지가 아녜요.
근데 이번에는 제가 멀리로 이사할 거 같네요.ㅡ,ㅡ;;
사진 너무 좋아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