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말,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인구(人口)현황(現況)
○ 아래의 통계(統計)자료(資料) 출처(出處)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발행한 “조선(朝鮮)의 인구(人口)현상(現象)”에서 발췌(拔萃)한 것이며, 참고용입니다.
조선(朝鮮)의 인구(人口) 현황(現況) 비교(比較)
(1) 정조(正祖)13년 (서력(西曆) 1,789년) : 경외(京外) 조사(調査)
한성부5부 : 호(戶) 43,929 / 남 96,169 / 여 92,984 / 구(口) 189,153
경기(京畿) : 호(戶)159,169 / 남 324,888 / 여 317,181 / 구(口) 642,069
원춘도(原春道) 호(戶) 81,876 / 남 167,384 / 여 164,872 / 구(口) 332,256
충청도(忠淸道) 호(戶)221,625 / 남 427,831 / 여 440,388 / 구(口) 868,219
황해도(黃海道) 호(戶)137,031 / 남 304947 / 여 262,866 / 구(口) 567,813
전라도(全羅道) 호(戶)319,160 / 남 575,485 / 여 645,319 / 구(口) 1,220,804
평안도(平安道) 호(戶)300,944 / 남 639,229 / 여 658 815 / 구(口) 1,296,044
경상도(慶尙道) 호(戶)365,220 / 남 725,062 / 여 865,911 / 구(口) 1,590,973
함경도(咸境道) 호(戶)123,882 / 남 346,381 / 여 349,894 / 구(口) 696.275
계(計) 호(戶) 1,752,837 / 남 3,607,376 / 여 3,796,230 / 구(口) 7,402,606
(2) 순조(純祖)7년 정유(丁酉) 1807년 / 호(戶) 1,764,504 / 구(口) 7,561,403
(3) 헌종(憲宗)3년 정유(丁酉) 1837년 / 호(戶) 1,591963 / 구(口) 6,708,529
(4) 철종(哲宗)3년 임자(壬子) 1852년 / 호(戶) 1,588,675 / 구(口) 6,810,206
(5) 고종(高宗) 원년(元年) 1,864년) / 호(戶) 1,703450 / 구(口) 6,828,521
(6) 동시대의 여대촬요(輿戴撮要)를 보면 : 전국(全國)을 : <경기(京畿).호서(湖西).호남(湖南).영남(嶺南).해서(海西).관동(關東).북관(北關).관서(關西)>등으로 나눴다.
(7) 명치(明治)33년(1,900년) 호구조사 : 호(戶) 1,397,630 구(口) 5,608,151
(8) 광무(光武)10년(명치39년 : 1,906년 : 내무부조사 : 호(戶) 1,384,493 / 구(口) 5,793,976
(9) 명치(明治) 40년 (1,907년5월20일) 경무고문부 조사(警務顧問部調査) : 호수(戶數) 2,333,087 / 구(口) 9,781,671
● 위의 (8)과 (9)의 조사(調査) 차이(差異)가 무려 4백만(百萬)인(人)이다. 일제(日帝)의 총독부(總督府)에서는, 당시(當時) 조선(朝鮮)의 국정(國情)이 혼란스러워, 조사(調査)의 부정확(不正確)한 점이 많다고 평가(評價)하고 있다. “1년”이란 기간(其間)을 생각해 본다면,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통계(統計)수치(數値)라고 할 수 있다.
(10) 한일합방(韓日合邦) 직전(直傳)의 명치(明治) 43년(1910년 5월 10일) 조사(調査)
관공리 호수(戶數) 15,758 / 양반(兩班) 54,217 / 유생(儒生) 19,075 상업 178,750 / 농업 2,433,459 / 어업 33,646 / 공업 22,943 / 광업 1,429 / 일가(日稼) 69,399 / 기타 34,957 / 무직 31,123 / 합계(合計) 호수(戶數) 2,894,756
➊ 관공리·양반·유생 = 호수(戶數) 89,050
➋ 당시(當時) 나라의 전체(全體) 호수(戶數) 2,894,756
➌ 양반(兩班)【관공리+양반+유생】은 : 전체(全體) 호수(戶數)의 <3.08> %에 지나지 않았다.
➍ 이때의 조선(朝鮮)사회(社會)는 <양반(兩班), 중인(中人), 상민(常民), 천민(賤民)>의 4 등급이 있었다. 조선(朝鮮)의 <명치(明治) 44년부터 대정(大定) 14년>까지의 호당(戶當) 평균(平均) 인구(人口)는, 4.88인, 5.27인 으로, <평균 1호당 5인> 이다. 이로 보아 당시 인구(人口)는 11,500,000∼12,000,000인 으로 추정(推定)된다.
(11) 내지인(일본인)의 도별(道別) 분포도(分布圖)를 보면 : 총평(總評) : 대체적(大體的)으로 경기도(京畿道) 이남(以南)지방에, 많은 다수(多數)가 분포(分包)하였는데, 강원도(江原道) 이북(以北)과 황해도(黃海道) 서(西)쪽 에는 그 분포(分包)가 적다.
(12) 조선인(朝鮮人)의 해외이주(海外移住)
만주(滿洲)와 서백리아(西伯利亞)방면 일대의 조선인(朝鮮人) 총수(總數)는 혹은 일백(一百)오십(五十)만 내외(內外)에 달하는데, 혹은 삼백(三百)만에 이른다고 본다.
북선(北鮮)서선(西鮮)의 조선인(朝鮮人)의 만몽(滿蒙)과 서비리아(西比利亞)방면으로 이주(移住)하여 사는 데, 근래 남선(南鮮)지방의 이주(移住)자가 점차적(漸次的)으로 증가(增加)하고 있다.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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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인구조사(人口調査)자료(資料)를 보면 :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점들이 너무도 많아 맥 빠지는 경우가 참 많다. 이러한 조사(調査) 통계자료(統計資料)는 과연 어느 정도(程度)의 정확성(正確性)을 갖고 있는 걸까?
특히 봉건왕조(封建王朝)시대의 인구(人口)통계(統計)는 : 「10살 미만(未滿)의 아이나, 하인(下人), 노비(奴婢), 천민(賤民), 유랑민(流浪民)등은 제외(除外)되었다」고 하는데, 그 처리(處理)에 대한 기준(基準)이 없다.
○ 경향신문 2015.09.11.자 기사를 보면 :
조선도 국가운영을 위해 호구조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 조선 초기인 1406년 태종은 전국적인 호구조사와 호패법을 시행한다. 새로 건국한 국가로서 국가중요자원인 인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 <태종실록>을 보면 당시 인구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경상도로 4만8993호에 9만8915명이 거주했다. 이어 서북면(평안도)에 3만3890호, 6만2321명이 거주했다. 세종은 한성에 대한 호구조사를 했다. <세종실록>을 보면 1435년 한양 호구는 성 안은 1만9552호, 성 밖 10 리는 2339호로 집계됐다.
성종(成宗)은 <경국대전>을 통해 호구조사는 3년마다 하도록 못 박았다. 조선의 호구조사는 16세 이상 장정이 조사 대상이었다. 10세 이하의 아동, 노비, 유랑민들은 제외됐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70%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토니 마이클은 <인구조사>라는 책을 통해, 조선 인구는 실제 호구수의 7.95를 곱하면 10% 내외의 오차범위에서 근접한 수치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조선 정조 당시 인구는 약 7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인구(人口)통계(統計)는, 위에서 말한 대로, 제외(除外)되는 인구(人口)가 많았으리라는 것인데, “토니 마이클”의 <인구조사>라는 책에서, 제외(除外)된 자들을 모두 포함(包含)한다면 “1 호당 7.95인으로 계산(計算)”하면 10% 내외(內外)의 오차(誤差)범위(範圍)안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정조(正祖)때는 ‘일천(一千)사백(四百)만 명’의 인구(人口)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 <토니 마이클의 “인구조사” 책에서 주장(主張)하는 방법(方法)으로 총(總)인구(人口)를 계산(計算)한다>면 :
㉮ 정조(正祖)13년(서력(西曆) 1,789년) / 호(戶) 1,752,837×7.95= 13,935,054명
㉯ 순조(純祖)7년 정유(丁酉) 1807년 / 호(戶) 1,764,504×7.95= 14,027,806명
㉰ 헌종(憲宗)3년 정유(丁酉) 1837년 / 호(戶) 1,591963×7.95= 12,656,105명
㉱ 철종(哲宗)3년 임자(壬子) 1852년 / 호(戶) 1,588,675×7.95= 12,629,966명
㉲ 고종(高宗) 원년(元年) 1,864년) / 호(戶) 1,703450×7.95= 13,542,427명
㉳ 명치(明治)33년(1,900년) 호구조사 / 호(戶) 1,397,630×7.95= 11,111,158명
㉴ 광무(光武)10년(명치39년) : 1,906년 / 호(戶) 1,384,493×7.95= 11,006,719명
➠ 명치(明治) 40년 (1,907년5월20일) 경무고문부 조사(警務顧問部調査) : 호수(戶數) 2,333,087 / 구(口) 9,781,671【토니 마이클의 주장대로 계산(計算)하면 : 18,548,041명이 된다.】이때는 ‘경무(警務)고문부’에서 조사를 한 것이므로 현대적(現代的)인 조사(調査)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알 수 없네요. 참고(參考)로 올려드립니다.
2016년 10월 17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다 조작입니다. 일본의 인구가 1872년 3480만인데 조선 인구가 반도 안 된다니여..
안녕하세요.
위에서 인용한 통계자료가 조선총독부의 자료입니다. 서력 1907년 이전의 것은 기존 조선사료를 인용한 것이고, 1907년 부터 경무고문부가 조사를 한 것으로 보아 이후부터는 총독부에서 조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참고용이라고 말씀드렸으며, 대륙조선에서 반도로 급격한 이주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에 따라 당시 조선의 통계자료를 인용, 참고로 게재해 드린 것입니다. 최근의 이야기입니다만 반도와 열도는 땅의 면적이나 인구면에서 약 2.5배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대륙의 인구가 결코 아님니다.. 한반도 인구에 맞추어 조작 한 것입니다.
위 자료는 조작한 것인지, 조작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나, 일단 통계자료입니다.
우리가 알고싶은 것은 것, 찾으려 하는 것은 조선사의 진실입니다. 현존하는 통계자료가 대륙의 것이냐? 반도의 것이냐? 하는 문제와 또 그 자료가 왜곡, 조작된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것의 일부입니다. 조작했다면 근거와 증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말로만 떠든다고 진실이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역사해설이 왜곡과 조작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근거와 증거와 조작의 논거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륙의 인구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사람 없습니다.
현재의 역사해설에서 그 통계자료를 소개했을 뿐입니다.
무언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드리자면 : 조선사의 진실을 찾는 다는 것은, 말로 찾자, 찾자한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카페는 <조선왕조의 영토는 대륙 땅이라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또 근거와 증거, 원문의 고증등 논거가 없는 주장은 지양하는 곳입니다.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감성적인 태도보다 철처히 논리적인 태도로 일관하시는 모습에 박수 쳐 드리며 고생이 많으십니다.
비천님!
안녕하세요.
관심과 성원, 감사드립니다.
조작된 수치일 겁니다. 저도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인구수를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습니다. 실록을 중심으로요. 그런데 원문에서 남여 수와 팔도의 수와 합산한 수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거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한 사람이 쓴 게 아닌데요. 그리고 저 인구수는 엉터리라는 것이 실록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관행으로 알고도 눈감아줬습니다. 인구수 대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은 다 빼버리고 상당수가 누락 되었다고 합니다. 알고노 눈감아줬지요. 그러던 것이 일제가 조사를 하면서 다 밝혀진 건데 솔직히 실록은 건드린 것 같습니다. 복사본이 없으니까요.
한글을쓰는 민족만 조사한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