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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복을 빌라! (민 6:22-27)
최근 글을 보다가 어떤 시인의 참 재미있는 인생론을 읽었습니다. 인생 100년을 따라 추적
하며, 각 나이별 특징을 재치 있게 설명해 놓은 글인데요, 이 글의 첫 출발부터 상큼하더군
요,“한 100년쯤은 살아봐야 인생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겠지요...”해서 그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적어 왔거든요, 잘 들어 보시고, 지금 나는 몇 살쯤 살고 있는지를 한번 가늠
해 보시기 바랍니다.
<1세는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12세는 돈의 위력을 알만한 나이, 19세는 어떤 영화도
볼 수 있는 나이, 24세는 후배에게 사회정의를 떠넘기는 나이, 29세는 아무리 변장을 잘해도
진짜 물 좋은 곳에는 못 가는 나이, 39세는 책과 매우 멀어지는 나이, 48세는 통계학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나이, 50세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즐겨 보는 나이, 56세는 아파트가 싫
어지는 나이, 59세는 성골과 진골이 아니면 뭐든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이, 62세는 3-40대
여자가 무서워 보이는 나이, 66세는 학원간 손녀를 기다리는 나이, 73세는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 86세는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 99세는 가끔 하나님과
도 싸울 수 있는 나이, 자, 드디어 100세, 100세는?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
이...>
참 재미있지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몇 살쯤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아파트가 아직 싫지는 않고요, 그러고 보면 저는 50세와
56세 사이를 살고 있는 거군요. 그런데요 한편으로 아직 후배에게 사회정의의 문제를 떠넘
길 마음은 없고요, 그 점에서는 제 나이 24세 이하이네요, 그러나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과
씨름하며 겨루며 사니까, 그 점에서는 제 나이 99세이군요. 얼른 답이 떨어지지 않는군요.
그런데요, 이 글에서 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100세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100세란, 인생 과제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라 했거든요. 저는 이 설명을 조금 바꾸고 싶습
니다. 100세는 하늘 소명 다 이루고, 주와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는 나이라고 말입니다. 사랑
하는 동광 가족 여러분, 주 안에서 100수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동광의 1세대 어르신 여러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힘을 내셔서, 최소한 100
수를 누리시다가 마침내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여러분, 오늘 하루 교회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께 꼭 새해 인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
서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옆의 분과 인사하며 연습하실까요?>
우리에게는 정초에 덕담을 건네면서 하늘의 복을 비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특히 가
내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덕담을 주시면서 한 해를 축복해 주시곤 했는데요, 해서 2004년
신년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복을 빌라”는 제목의 말씀을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도 큰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하루에 한번 자녀를 축복해 주는 일
이다!" 다시요, 잘 기억하세요.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하루에 한번 자녀를 위하
여 복을 빌어 주는 일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하루에 한번
내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나의 입술을 열어 하늘의 복을 빌어 주는 일입니다. 바로 이 점
이 믿는 부모와 믿지 않는 부모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부모님께 여쭙겠습니다. 부
모가 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최소한 하루에 한번 내 아들과 딸을 위하여 하늘의 복을 빌어
주었습니까? 정녕 나는 진심으로, 또 구체적으로, 내 자녀를 날마다 축복하고 있습니까? 질
문을 조금 바꾸어 볼까요? 부모인 내가 자녀에게 하는 말 가운데 복을 비는 말이 더 많습니
까? 아니면 야단치고, 들들 볶고, 혼내고, 짜증내고, 혹은 저주하는 말들이 더 많습니까?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부디 오늘부터는 아무리 피곤해도 내 아들, 내 딸의 손을 잡고, 하
루에 한번 이상, 입술을 열어, 축복의 말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한번씩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루에 한번씩 자녀를 위하여 하늘의 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
로만 하지 마시고, 꼭 입 밖에 내어, 입술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잘 되고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하루에 한번씩 축복할 때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복을
빌어 주라는 말씀인가? 이 질문의 답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소중한
말씀, 잘 들으시고, 그대로 따라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특별한 명령을 주시는 장면인데요, 명령인 즉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불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전하
라 하신 말씀의 내용인즉,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축복할 때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가 자녀를 위해 복을 빌 때 이렇게 하라는 소중한 말씀인데요, 이제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복 주시고 지켜 주시기를 원하노라!”/ 6:24
6:24 / (읽기) / 거기 보니, 누가 복을 주신다고요?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신다고요?
너, 곧 내 자녀에게! 그렇습니다. 나와 내 자녀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모
인 내가 주는 것 아닙니다. 아니, 내가 주고 싶어도 내가 줄 수 있는 복이란 것이 별 것이
없습니다. 부모가 주는 복만 가지고 한 평생 살라하면 우리 자녀들 한 세상 살기 어려울 것
입니다. 해서 하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라 하신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
랍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임하도록 빌어 주는 일, 그것이 우리 부모의 몫인 것입
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씩 자녀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빠는 말이
야, 하나님이 내 딸에게 큰 복을 주셨으면 참 좋겠다. 엄마는 말이야, 사랑하는 내 아들이
하늘의 큰 복을 받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럼, 우리 아들, 우리 딸, 하나님이 복 주실 거야,
복 주시고 말구, 그럼, 내 복둥이!”
그런데 살다 보면 이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낀데, 그런데 그 녀
석들을 보는 부모에 마음에 어쩜 그리 화가 나는지요, “에이그 이 화상아, 애물단지야, 도
대체 넌 누굴 닮아 그러니, 너 어쩌려고 그러고 사니, 내가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죽어.. 이
애물단지야!” 지금 씩, 웃으시는 분들, 전과가 있으신 분들인데요, 아니요, 그렇게 하지 말
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4절 말씀을 보니, 우리 자녀들을 위해 빌어 주어야 하는 복 중에 가장 중요한 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보실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
켜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정말 그렇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잘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생명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명을 잘 보전하는 일
이 더욱 중요합니다. 은혜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는 일이 더욱 중요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아 그 복을 잘 지켜가는 일, 참 중요합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님이 내 자녀 지켜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은 사탄과 마귀가 내 자녀를 넘보지 못하도록 하나
님께서 내 자녀의 삶에 튼튼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쳐 주시고, 철저하게 보호하여 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적절한 기도이며 적절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이 너무나 많은 유혹과 위
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자식이 일단 집을 나가면 부모는 걱정
에 땅이 꺼집니다. 그러다가 내 아이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안심을 하게 되죠, 그렇다고
부모가 날마다 일일이 자녀들 쫓아다니며 보디가드 노릇을 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고 안
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축복하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복을 빌
라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꼭 그렇게 기도해 주시고 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모
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수호천사를 보내셔서 우리 자녀들이
오가는 모든 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인사한번 하실까요?
<주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6:25 읽기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빌
어야 할 두 번째 복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마디로 은혜를 주십사고 빌고
또 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25절 말씀의 표현 자체가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노라.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갈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하여 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위해 빌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선지자 모세가 시내 산에
서 율법을 받을 때만 해도, 누구 한 사람 시내 산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죽지 않았다 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할 수 있음은 그 자체로 은혜 중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해서 이 귀하고 복된 은혜를 자녀들에게 빌어 주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도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야곱처럼 새 이름과 새 복을 얻어 새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자녀
되도록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선
내가 먼저 하나님을 뵙고도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환도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
어도 주님께 매달려 한 판 영적 씨름을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씨름에서 이기셔야 합니
다. 나와 내 아들딸을 위하여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죽어도 이 손을 놓을 수 없다고 매달려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얼굴을 돌려 버리신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우리 하나
님, 꼴도 보기 싫어 아예 얼굴을 돌려 버리신 가정, 저주받은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
시면 은혜가 내리지 않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니 모든 일이 각박해지고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대체 인생의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질 못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려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은혜가 떠나고 하늘의 영광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하루에 한번씩,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부디 얼굴을
내 자녀에게서 돌리지 마시고, 오직 하늘의 은혜로만 충만케 하옵소서.”기도할 때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 동광의 자녀들, 모두가 잘 되고 잘 되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입술로 덕담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옆의 분에게 복을 빌어 주실 때에 저
를 따라, 힘 있고 똑똑하게 복을 빌어 주십니다. 주 안에서 은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넘치
는 은혜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6:26 읽기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빌어
주어야 하는 마지막 복인데요, 여기 26절에도 하나님의 얼굴이란 표현이 나오는군요. 그런데
이번엔 얼굴을 너에게로 향하여 드사 라고 표현하네요. 얼굴을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
라.
여기서 너를 향하여 얼굴을 든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지요. 이는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
할 때 취하던 행동인데요, 이와는 반대로 너를 향하여 고개를 숙인다, 혹은 너 앞에서 얼굴
을 떨군다는 표현은 너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해서 하나님께서 얼굴을 내
자녀에게로 향하여 들어 주시기를 비는 것은 내 자녀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6절에 참으로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평강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특청을 드리되, 다른 것이 아니라 평강을 주십사고 부탁드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각별
한 관심과 사랑의 내용이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우리 부모가 자녀들을 축복할 때, 하늘
의 평강을 빌어 주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평강을 마지막으로 빌라 하신 것일까요? 한
마디로 24절에서 빌어주었던 하늘의 복과 25절에서 빌어주었던 하늘의 은혜, 이 복과 은혜
가 완성되기 위해선 26절의 평강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인생
을 복 받은 인생, 행복한 인생으로 완성해 주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평강이 없이는 복이
복일 수 없으며, 평강이 없이는 은혜가 은혜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강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평강이 빠진 그 무엇도 복과 은혜가 되기 어렵습니다. 건강도, 미모도, 재
능도, 재산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 세상의 그 무엇도 평강이 없으면 오히려 화근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평강을 그 중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평강이 빠진 복은, 복이 아니요, 평강이 빠진 은혜
는, 은혜가 아닙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 이 소중한 복과 은혜와 평강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 부모가 아무리 원해도, 우리 부모가 아무리 잘
난 것 같아도, 우리 부모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아도, 우리 부모들이 내 손으로 빚
어 줄 수 있는 복과 은혜와 평강이란 것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들입니다. 해서 24절, 25
절, 26절 모두, 구구절절이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빌고, 은혜를 빌고 평강을 빌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내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부모는 자녀를 위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중요한 단어입니다. 나는 내 자녀
를 위한 축복의 통로이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합니다. 내
아들과 내 딸에게 하늘의 복이 임하도록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부모라고
하는 축복의 통로가 막히면 그 자녀들 인생이 참으로 불쌍해집니다. 부모를 통해서 하늘의
복과 은혜와 평강을 받아야 할 터인데, 그 통로가 꽉 막혔으니, 그 모든 복과 은혜와 평강을
자기 손으로 빚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수성가하는 분들의 인생이 참으로 힘겨운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문제는 모두가 다 자수성가에 성공하지 못한다는데 있지요. 해서 부모라는
축복의 통로가 막힌 자녀가 가장 안 되고 불쌍한 자녀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으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부모님 여러분, 2004년을 맞이하는 신년 주
일, 이 부족한 종,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새 해, 한 손으론 주님의 손을
잡으시고, 다른 한 손으론 내 자녀의 손을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서는
복을 주십사고 기도하시고, 자녀를 향해서는 복을 받으라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신 하늘의 소명인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으로 소중한 약속의 말씀 한 구절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6:27 / (읽기) /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 간직하시며 기억하시기 바랍니
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분명히 약속해 주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
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내 이름으로 복을 빌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아멘. 이 말
씀 붙들고 한 해 크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실까요?!
<말씀 안에서 자식 농사 잘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안에서 모든 일 잘 되고 잘 되시기 바랍니다.>
네가 축복하면 내가 축복하리라! (민 6:22-27)
미국 대통령이 움직일 때 보면 옆에 꼭 붙어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블랙박스가 들려져 있습니다. 언제 핵전쟁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는 박스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무슨 명령을 하든지 다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 옆에 한 사람이 돈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여러분이 주라는 대로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생활이 될가요?
고아원에 가서 1억을 주라면 1억을 줍니다. 선교사가 자동차를 사 달라고 요청하면 즉석에서 자동차를 사라고 옆에서 돈을 세어 주는 사람이 옆에 따라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 가요?
그런데 바로 우리의 삶이 그런 삶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축복 주시는 것을 보장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하게 모든 비밀을 다 말씀하여 주시는 사람들이 시대마다 있었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모세에게 모든 비밀을 다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법궤위에 있는 속죄소위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든 비밀을 말씀하여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그런 말씀중에 하나입니다.
아론과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렇게 이렇게 말하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우리가 서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후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확실한 예를 하나 들어 봅니다.
엘가나라 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내가 둘이었습니다. 한 명은 한나이고 한 명은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아들이 있었는 데 한나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브닌나는 아이를 낳지 못 하는 한나를 무시하였습니다. 은근히 무시한 것이 아니라 겉으로 나타날 정도로 깔보았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갑절이나 사랑하였지만 치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못 낳은 상처는 아들을 낳아야 치료되는 것이지 남편이 위로한다고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문제는 역시 자기 문제입니다. 자기 외에 누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한나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지고 갔습니다. 한나는 이 문제를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풀었습니다. 하나님과 이런 약속을 하면서 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나는 이렇게 서원 기도를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한나는 술취한 듯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엘리 제사장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왜 술을 마시고 기도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그 때 한나가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 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삼상 1;15-16)
이 말을 듣고 엘리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17)
엘리 제사장의 이 말을 듣고 한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앞에서 한 말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네가 말하면 내가 책임지리라.>
이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같이 우리가 서로 축복하면 하나님은 그 축복한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 축복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축복하면 어떻게 이루어주시는 것일가요?
이렇게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라>
어떻게 축복하여야 할가요?
1. <지켜 주세요>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2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들을 축복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지켜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축복한 그대로 복주시고 지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중에 복은 지켜 주시는 복입니다.
<내가 복을 주어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복을 주어 오래 살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내가 복을 주어 너를 지켜 주겠다>
지킨다고 할 때 히브리어는 <솨마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솨마르>라는 말은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지켜 달라고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주변에 가시 울타리를 쳐주셔서 보호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면서 우리를 지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시 121;3)
우리가 그 사람을 축복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느 병사가 전쟁터에서 전쟁하면서도 편히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 병사가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전쟁터에서도 그렇게 잘 자니?>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밤 중에 둘 다 잠을 안 잘 필요가 없지.>
<무슨 말이니?>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데 나까지 안 잘 필요가 없어.>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하고 있는 여자 선교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풍토병으로 위장병이 심하였습니다. 잘 먹지도 못 하고 몸이 약해지면서 점점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몰골이 이상하여져 가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파송 교회가 어려워서 선교비를 한 달이 지연되었습니다. 돈을 꾸을 곳이 없어서 보리 죽만 한 달 내내 먹었습니다.
후에 의사가 그의 몸을 진찰하면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그 때 만일 본 교회에서 선교비를 잘 보내 주었다면 선교사님은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위장병이 심하였습니다. 그 때 보리죽만 한 달 먹었기에 위장병이 나았습니다.>
선교사는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나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어머니가 쉬지 않고 기도하며 나를 축복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나와 있는 나를 지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 달라고 누군가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그렇게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50명 장사꾼이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장사하러 떠났습니다. 모두 낙타를 탔습니다. 비싸고 무거운 보석들을 실었습니다. 한 명이 유대인이고 49명이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가 쫓아 왔습니다. 50명이 의논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을 수 없으니 제비를 뽑아서 제비뽑힌 사람이 낙타를 사자에게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면 배부른 사자가 사람을 잡아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제비가 뽑힌 사람은 낙타를 사자에게 주고 먹을 것, 마실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물론 물건도 버려야 합니다. 혼자 걷기도 힘든 사막이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자기 몸보다 큰 낙타를 먹고 쫓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이틀 지나니까 사자가 또 쫓아 왔습니다. 49명이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49명이 모두 낙타를 주었습니다. 이제 유대인 혼자 남았습니다. 모두 마실 물, 먹을 양식, 팔 물건 모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고생하면서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뒤에서 터덜 터덜 걸어오던 49명 이방인들이 말했습니다.
<유대인아! 이제는 제비뽑을 필요가 없다. 너 혼자 남았다. 네 낙타를 주어라.>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어떻게 사람이 죽니? 내 낙타 주어야지.> 그리고 낙타를 주려고 뒤를 보았더니 사자가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앞에 동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가지고 가니까 물건은 적고, 살 사람은 많아서 값이 두 배로 올랐습니다. 이방인들이 물었습니다.
<유대인아! 49번 제비를 뽑았는 데 어째서 너는 한번도 안 뽑히니?>
유대인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과 내가 다른 점은 꼭 하나다. 너희들은 안식일에 성전에 가지 않지만 나는 안식일이면 꼭 성전에 가서 랍비의 축복을 받았다.>
이 말 한 마디에 49명이 모두 하나님을 믿기로 개종하였습니다.
축복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432장입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이 찬송은 뉴욕에서 목회하시던 마틴 목사님 아내가 작사하고 목사님이 작곡하신 찬송입니다. 이 찬송 뒷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중병에 걸려서 일어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일 저녁 설교를 하러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내가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부목사님에게 맡기고 아내 곁에 있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 설교를 아버지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버지가 설교를 하시면 어머니 병은 하나님이 고쳐 주실 거예요.>
아들이 이렇게 말할 때 목사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설교하러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내를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 때 아내가 중병속에서 이 가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곡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은 지켜 주기를 축복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 주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2. <은혜 주세요>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축복하는 사람에게 얼굴을 드시고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플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1. 믿음이라는 단어입니다.
2.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3. 능력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은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기적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 은헤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한나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아이를 낳지 못 하는 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사람이 아이를 낳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소록도 문둥 병자 병원에서 생활하다가 완치되어 세상으로 나온 배 일봉 집사 간증입니다. 딸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아내도 자궁암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신도 문둥병에 걸려 소록도에 격리 수감되었습니다. 병이 심하여 눈까지 멀었습니다. 아픈 인생을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시력을 되돌려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겠사오니 정의와 평화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
다리를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겠사오니 어려운 이웃을 향하여 걸어 갈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겠사오니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매일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은혜 가운데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서로 축복할 때 은혜를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플어 주시겠다고 보장하셨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미국 10대 재벌중에 한 분은 하이네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올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통장을 보니 1만 5천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돈을 모두 가족에게 주고 어디로 사라지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돈이 내 마지막 재산이다. 그 동안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 하였다. 마지막 돈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리고 그 돈을 하나님께 모두 드렸습니다. 대단한 용기였습니다.
교회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 파산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화재거리가 되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그에게 사업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하였습니다. 돈을 모아 주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다시 재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은혜를 빌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3. <평강 주세요>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서로 평강을 빌어 주면서 축복하면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평안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화목하지 못 하고 평안하지 못 하면 불안하여 살 수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평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하나님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평화가 우선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 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무죄한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을 인하여 그런자가 건지심을 입으리라>(욥22;21-30)
감리교를 창설하신 분은 영국 웨슬레입니다. 그 때 영국에서 쌍벽을 이룬 설교자가 있습니다. 죠지 휘트필드입니다. 두 목사님은 영감적인 설교를 하면서 영국의 영계를 이끌었던 시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신학은 좀 달랐습니다. 그래서 가끔 신학적인 논쟁을 하곤 하였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죠지 휘트필드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웨슬레 목사님과 신학과 진리 해석이 다르지요? 목사님이 천국에 가시면 웨슬레 목사님을 만날 수 있을 가요?>
이 때 죠지 휘트필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웨슬레 목사님을 만나지 못 할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훌륭한 분이기에 하나님 바로 곁에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근처도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라이벌이면서도 상대방을 칭찬하는 두 분의 인격이 돋보이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평강을 축복하는 이에게 평강을 선물로 보장하여 주십니다.
중환자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면서 중환자 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평강이 꿀처럼 흘렀습니다. 그렇게 얼굴이 평화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그 환자를 보고 있는 이들이 놀라워서 물었습니다.
<무슨 병인지 알고 계시나요?>
<네.>
<중병이지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평안하실 수 있나요?>
이 말을 듣고 그 환자가 대답하였습니다.
<내 병에 대하여 의사들은 처방을 잘 모르고 있지만 내가 믿는 예수님은 만병의 의사되십니다. 못 고치실 병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고쳐 주실 것을 믿기에 평안합니다. 그 분은 나를 고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나는 육군사관 학교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박 정희 대통령이 타던 차를 보았습니다. 그 곳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타는 방탄용 차는 차 껍질만도 2톤이나 되는 쇠덩어리입니다. 5 미터에서 총을 쏘아도 바늘로 건드린 것만큼도 흠집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차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앉아 있을 때마다 늘 불안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저격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에 앉아 있다고 평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의 임하도록 축복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옆에는 늘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하면 축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지켜 주세요>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2. <은혜 주세요>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3. <평강 주세요>라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