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용
먼 타향에서 추석을 기다리는 것을 얼마나 기쁨인지 모른다. 70~80년 대에는
타향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다가오는 추석에 고향 갈 생각만 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게 했다. 특히 추석 고향 가는 길은 코스모스가 반겨주었다. 고향에 가면
그렇게 반겨 줄 사람이 없어도 고향이라는 그리움 때문에 늘 설레게 했던 그 시절이
이젠 더 그립다고. 해남버스 기사 김금용(59) 씨는 27살에 결혼을 막 하고 서울로 향했다.
처음 서울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몇몇 직장을 옮기다가 서울 시내버스 기사로 일을
하게 됐다. 그때 버스 운전기사가 되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에 얼마간의
돈을 주어야 하고 운전도 잘 해야 버스 기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30년 동안
시내버스 운전으로 자식 셋을 두었다. 애들이 다 커 막내가 대학 4학년이 되었을 때 김금용 씨는
해남으로 귀촌하게 됐다. 그는 아내와 결혼하고 막 서울로 올라갈 때는 아내에게 다짐했다.
"우리가 서울에서 살만큼 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래서 그는 먼저 해남으로 내려오게
됐고 아내는 1년 후에 그의 고향인 현산면 구시리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생활 30년 동안 현산면 구시리는 그의 마음속에 항시 떠난 적이 없었다. 특히 부모님이 이곳에
계셔 1년에 세네 번은 찾았다.
서울에서 시내버스 운전 기사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만남 속에서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먼저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고향에서 해남버스를 한 지 6년 됐다. 손님은 한산하다. 거의 노인들뿐 그러나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먼저 인사를 하고 반갑게 맞아준단다. 정류장에서 차를 갔다 대면 손님들이
알아서 빠른 시간 안에 탑승한 서울과 달리 여기에서 기사가 알아서 정류장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의 동태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김금용 씨가 운전하는 코스는 해남에서 계곡을
지나 영암 독천이다. 이번 해남 5일장날에 손님이 많아 앞문까지 빼곡히 들어섰다. 이렇게 많은 손님을
맞아본 적이 처음이라고. 예전에서 고향을 찾을 때 광주에서 해남까지 운행하는 완행버스와 같았다.
장날이 아니고는 시골버스는 한산하다. 어쩌다 젊은 엄마와 아기, 외국인이 탔을 때 시골버스도 활기차다.
그는 마지막 봉사하는 마음으로 노인들이 버스에 오르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 노인들은 앞에 앉기를
좋아한다. 앞좌석이 구경하기 좋은 좌석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인들의 마음을 알아 챈 그는
앉으고 싶은 데로 앉게 한다. 그 대신 운전자가 더 세심하게 안전운행을 하면 된단다.
고향 어르신 때문에 모든 자식도, 그도 타지에 나가 성공했다. 앞으로 그가 대표해서 고향 어르신들을 공손하게
모실 것이라고 한다.
해남버스 운전기사는 기계수리에 대한 기본적으로 기술을 갖고 있다. 쉬는 날을 이용해서 지역 노인들의
농기계와 가전제품을 수리해 줄 생각이다.
고향은 그냥 그리운 데로 가치가 있다. 그 선한 가치는 타향에서 살아갈 원동력을 만든다. 또한
고향에 다시 찾아와 고향 사람들과 함께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옛것의 진한 향수와 더불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김금용 씨는 시골버스를 운전하면서도 소 50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느지막한 나이에
고향산촌에서 살기를 원했고 그 뜻을 이루었다. 특히 그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혼자 버스 안에서 있을 땐 가곡과 동요를 부른다. 초록 들판에서 황금 들판으로 달리는
버스는 그가 동심으로 달려가는 아련한 추억과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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