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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한산 노적사(北漢山 露積寺)를 찾아서 ①
-노적사 가는 길. 대웅전과 부처님진신사리탑까지-
2월 14일 오전 11시 12분 태고사를 물러 나와 북한산 노적사(露積寺)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쪽 방면의 사찰은 대개 삼각산(三角山) 대신 북한산(北漢山)이란 이름을 씁니 다. 이쪽 지명이 북한동(北漢洞)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을 대대적 축성할 때 태고사, 증흥사를 비롯한 12개 사찰이 북한산성 축성과 방비를 위해 창건되거나 중건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 동 일대의 사찰들은 대개 '북한산 ○○사'란 편액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적사도 '북한산 노적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태고사 입구에서 노적사까지는 약 600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태고사 옆 중흥사도 찾고 싶었으나 후일을 기약했습니다.
태고사와 이웃한 중흥사지(重興寺址)
5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창고 법당이었는데 그 사이 대웅전을 지어 법회를 보는 는 것 같았습니다.
비석거리의 비석들
중흥사에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비석군을 만납니다. 이 비석들은 선정비(善政 碑)로 약 26기(基)가 있는데 북한산성과 관련한 역사자료이기도 합니다. 길은 미끄럽 고 날씨도 스산하여 나중에 소상히 담고자 하고 지나갑니다.
복원된 산영루(山映樓)
5년 전에 갔을 때는 비석거리 앞 수려한 곳에 산영루지(山映樓址)에 안내판만 있어 복원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는데 최근 복원되었네요. 산영루 앞 바위에 올라 정면 찍기를 해야 하는데 바위가 얼어 붙어서 올라가지 못에 비껴찍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예전에 산영루지(山映樓址)에 있던 안내판을 올려 봅니다.
진국로(鎭國路)
비석거리에서 조금 내려오니 진국로(鎭國路)라는 석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옆에 '구 진 국사'라는 글씨가 있어 이곳이 노적사임을 알았습니다. 노적사의 옛이름이 진국사(鎭 國寺)이기 때문입니다. 진국로(鎭國路)는 진국사(鎭國寺) 가는 길이란 뜻이죠. 즉 노적 사 가는 길이란 뜻입니다. 11시 39분에 당도했습니다.
구 진국사
'구 진국사'라 되어 있는데 진국사가 곧 노적사입니다. 그런데 이 길은 정문 길이 아니 고 일종의 샛길인 셈입니다. 중흥사쪽에서 내려오다 노적사로 가려면 이 길로 가면 됩 니다.
진국로라고 하면 혹 모를 사람이 있어 노적사란 표말을 꽂아 놓았네요.
청사초롱이 노적사로 이끕니다.
기둥마다 좋은 글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드디어 노적사가 보입니다.
노적사를 찾는 분들이 짤막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저절로 열릴 것 같습니다.
공덕탑(功德塔)
북한산 노적사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331번지(대서문길 311-35)에 소재한 대한 불교조계종 사찰입니다.
「조선시대 숙종 때(1711) 팔도도총섭이었던 성능(聖能) 스님이 창건한 노적사는 서울의 제일명산 북한산의 중심 노적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명승고찰이다.
북한산성의 축성과 수비에 크게 기여한 성능스님이 집필한 옛문헌 '북한지'의 기록을 보 면 창건 당시엔 진국사(鎭國寺)라 불렀는데, 완전히 소실(연대미상)되어 빈 터만 남게 된 것을, 이를 애석히 여기던 중 서기 1960년 무위스님을 비롯한 창암 유흥억거사, 박금륜 행보살, 김진공성보살, 유인순보살 등 여러 불자님들이 불심으로 정성을 모아 사찰을 중 건하고 '노적사(露積寺)' 라 하였다.
1977년 노적사 주지로 부임한 종후(宗厚) 스님이 불사를 일으켜 적멸보궁, 부처님진신사 리탑, 대웅전, 미륵전, 약사전, 삼성각, 나한전, 용궁전, 종각, 동인당, 요사채 등 오늘날 의 노적사로 중흥시켰다.
웅장하고 신령한 노적봉 아래의 노적사는 천혜의 자연속에 자리한 기도영험이 뛰어난 지상선경(地上仙境)의 사찰이다.
2001년 1월에 전통사찰로 등록된 노적사는 대원력의 수행도량, 화엄신중 기도도량, 나한 성중 기도도량, 평화통일 기도도량, 청정법신불 기도도량으로서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실 천하는 빛이 가득한, 무한대광명의 부처님 도량이다.」 -북한산 노적사 안내서-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아 감당하기 어렵게 됩니다.
아, 여기가 노적사인가!
노적사 경내 입구에 건축자재들이 경관을 해치고 있네요.
노적봉이 운무 속에 가려 있어 신비를 연출합니다.
오후에는 날씨가 개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구름이 걷히지 않았네요. 노적봉이 모습 을 드러내면 더욱 멋진 풍광을 보일 텐데... 11시 45분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전각 배치도
안내판의 전각배치도는 위와 다르게 나와 있는데 현재의 명칭으로 작업하여 올렸습니다. 여기에 전각배치도와 함께 노적사에 대한 안내문이 있어 전문을 옮겨 보았습니다.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의 군사 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 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 이런 사찰을 승영사찰(僧營寺刹)이라 하는데,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노적사도 승영사찰이었는데 당시에는 진국사(鎭國寺)라 했다. 위치로 미루어 중성의 수축과 방어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성 축성과정과 현황을 정리한 『북한지 (北漢誌 1745년 간행 )』에는 "진국사는 노적봉(露積峰) 아래에 있으며, 85간으로, 승려 성 능(聖能)이 창건하였다." 고 기록돼 있다.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ㆍ나한전ㆍ삼성각ㆍ종각ㆍ요사채 등의 건물과 석불입상은 모 두 최근에 지은 것으로, 옛 직국사의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돌사자상만이 옛 진국사의 존재를 알려 준다. 돌사자 상의 몸통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으며 안장 위에는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 대좌에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문수보살 동자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창건공덕비
「이곳에 고대로부터 진국사(鎭國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병란으로 소실되어 빈 터만 남게 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불자님들이 힘을 모아 本 사찰을 불기 2504년(서기 1960년에 중창하였다. 이에 그 공덕을 후대에 전하고져 이 비를 세운다.
불기255년(서기 1978년) 주지 박종후
건립자(建立者)
청신녀 박금륜행 유인순 김진공성 청신사 유흥억 주 지 신무위」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편액
보림루(寶林樓)
보림루(寶林樓) 편액
극락전(極樂殿)
지금은 극락전이지만 전에는 대웅전이라는 편액을 걸었고, 그 이전에는 삼보전(三寶殿) 이라는 편액을 걸은 바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대웅전과 관계 깊었던 것 같습 니다. 현재의 대웅전은 앞서 대웅전으로 건립되었는데 대웅전 뒷편에 부처님진신사리 탑을 건립하고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편액으로 바꾸어 달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대 웅전 편액 다는 바람에 이곳도 삼보전에서 대웅전으로 다시 극락전으로 바뀐 것 같습니 다.
그런데 이곳을 점심공양 후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회의 중이라 후일을 기약했습니다.
대웅전 가는 길
노적봉이 운무에 가려 있어 신비에 쌓여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불기 2505년(1960)에 무위 스님 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고, 이후 불기 2530년(1986) 종후(宗厚) 스님에 의해 재건립(증 개축)되었습니다. 불기 2553년(2009) 대웅전 뒷편에 부처님진신사리탑을 건립하고 부처님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대웅전 뒷벽을 뚫어 유리창으로 만들고 불상을 다른 곳 으로 이운하고 불단에 금강보좌만 모시고 편액을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바꾸어 달 았는데, 최근엔 다시 불상을 모시고 대웅전이란 편액을 다시 달았습니다.
대웅전 앞의 석등
적멸보궁(寂滅寶宮) 불단의 모습
대웅전에 드니 법회 중이었습니다. 잘 되었다 싶어 비니초님과 조용히 삼배하고 앉아 법문을 경청했습니다. 말씀이 가만가만해서 잘 들리지는 않지만 법문을 듣고 있는 자체 가 좋았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신중기도를 봉행했습니다. 이 날이 정월 초이레이니 신 중기도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기도를 함께하였습니다. 거의 1시가 되었을 무렵 법회가 모두 끝나 법당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중앙 불단은 벽을 유리로 하여 부처님진신사리탑을 향하여 예불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데 노적사는 석가모니불상을 모셨습니다. 불상 위에는 '적멸궁(寂滅宮)'이란 세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畵)
석가모니부처님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부처님께서 지은 수인은 설법인(說法印)입니다. 나무 밑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설법 하시는 모습이므로 영산회상도가 아닌가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_(())_
창문 너머에 사리탑이 보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탑
부처님 진신사리 증명서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高陽 露積寺 石獅子像)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63호-
경내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경내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돌사자상만이 옛 진국사의 존재 를 알려 준다. 돌사자상의 몸통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으며 안장 위에는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 대좌에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문수보살 동자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였는데, 경내입구에 있던 사자상을 사리탑 옆으로 이전해 놓았네요.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高陽 露積寺 石獅子像)은 2015년 6월 15일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노적사는 북한산성 내 전통사찰로 조선 숙종 38년인 1712년 성능스님이 진국사(鎭國 寺)라는 이름으로 최초 창건했지만 이후 폐사돼 흔적만 남아 있던 자리에 1960년대 무 위스님이 중창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변경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노적사 입구에 주 둔했던 군부대에서 막사를 건축하면서 출토됐다고 전한다.
고양 노적사 석사자상은 방형의 가까운 몸통과 대좌, 신체에 비해 간략해진 다리의 표 현, 고개를 살짝 틀어 옆면을 응시한 모습, 머리부터 목선까지 조각된 갈기, 두터운 눈 썹 아래에 툭 불거든 두 눈, 앙다문 입술 사이로 드러난 뾰족한 뻐드렁니 등의 표현에 서 사실적이며 해학적인 요소도 확인할 수 있다.
석사자상은(石獅子像)은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인 사자를 말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통일신라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조각, 회화, 공예, 석조 등 다 양한 불교미술품 장르에 표현됐다.
고양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석사자상은 현재 정확한 제작 시기는 파악할 수 없지만 출토지가 노적사 인근이라는 점과 조선말에서 근대에 돌로 만들어진 사자상 예가 많지 않고 당시의 사자상에 대한 양식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북한산성 내 문화유산의 다양성을 알려 줄 수 있다.」 -자료출처 : 북한산 노적사 문화유산정보-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법회를 마치고 공양간을 찾아 사찰음식의 진미를 느끼며 맛있게 공양을 들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데 노적사 신도부부가 친절하게 차 한 잔 하시겠냐고 하면서 극락전 밑에 있는 방으로 안내를 하셔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노적사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여러 가지 법담도 나누며 훈훈한 대화를 이어 갔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비니초님과 우바이께서는 말아 놓은 연잎을 정리해 종이상자에 담았습니다. 그새 많은 연잎을 말아 놓았더군요. 알고 보니 우바 새님은 저와 동갑이셨고 우바이님은 한 살 차이라 우리 카페를 소개해 드렸는데 들어 오시겠다고 하셔서 당일에 가입을 하셨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으시네요. 바쁘신 모 양입니다.
오랫동안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후 2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카 메라에 담을 것도 많고 해서 후일을 기약하고 일어났습니다.
다음은 노적사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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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기를 통하여 새로운 것,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드디어 노적사 어렵게 찿으셨군요. 후일 등산 하면서 찿아 가봐요....나무묘법연화경()()()
실은 쉬운 곳에 있습니다. 대서문에서 올라오다가 중성문을 지나면서 몇 번 그 입구를 보았었습니다.


피고 새 우는 花笑鳥歌之節에 가지요. 감사합니다. 
_()_ _(())_
다만 도선사쪽에서 올라 백운대를 지나 내려가다가 한 번, 대성문 대동문을 지나 찾으려다가 다시 실패했던
것이죠.
삼 세번 드디어 노적사에 ...
노적사 아담하고 예쁜사찰인것 같습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_()_
염화님과 미소님, 그리고 법우님 등과 가려고 남겨 둔이 몇 군데 있습니다.
_()_ _(())_
실은 노적사가 전통사칠로 등록된 것이 2001년이라 전통사찰총서에도 나오지 않아서
노적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울 뻔 하였는데 노적사에서 만난 '나제님'께서 안내서를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2009년까지만 있어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함께 오를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실감 있는 노적사 순례기 잘 봤습니다. 산영루는 1920년 홍수로 유실되기 전 모습에
50년 사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_()_
가깝게 복원되었네요. 남아있던 기초석과 옛 사진을 토대로 복원한것 같습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 60
황폐화 된 사찰터에 복원불사가 활발히 이루지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예리하시네요. 사진 각도가
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잘못된 본문은 삭제했습니다. 


날 다시 담자 생각했지요. 감사합니다. 
_()_ _(())_
그날 길은 미끄럽고 날씨는 추워서 손을 호호 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