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제사는 정체가 애매하다.
저녁 식사시간에 교회를 다니시는 장모님과 처남댁이 걸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린 술만 마신다.
다음날은 복내 주암호 곁에 있는 산소에 가서 우리는 절을 하고 두 분은 서 있다.
돌아오는 길에 겸백 사곡마을 앞 사거리에서 주월산 윤제림쪽으로 들어간다.
하늘공기가 정체되어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서인지 득량만과 주변의 풍광은 선명하지 못하다.
어른을 모신 가족들이 올라와 주변의 산이름을 말한다.
장모님을 비롯해 그 어른들은 어렸을 적 이 산과 추억이 많을거다.
뒤뚱과 비끼골과 두루봉의 산을 이제 난 들어가지 못한다.
처남네와 처형네가 출발하고 나서 가까운 우리는 더 많이 챙겨 광주로 온다.
기온이 올라 차 안에 있는 음식이 변할까 걱정하는 바보를 두고 난 군머리 사거리에서
오전에 들른 겸백 복내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복내 주암호를 혼자 내려다보고 대원사 벚꼴나무 터널로 들어간다.
내려오는 차도 많고 주차장에 닿으니 차와 사람이 많다.
남도한바퀴 차가 서 있고 명찰을 목에 건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그 중에는 퇴직하신 교직 선배들도 보이는데 난 다가가 인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다해 나중 보니 대원사 괘불재를 하고 정리 중이다.
일주문 옆의 '우리는 한꽃'이라고 쓰인 작은 문을 지나 단풍이 고운 연못가에서 사진을 찍는다.
가족의 모습은 보기 좋다.
서서히 오르는데 보제루인가 2층 누각이 서 있고 길도 곧게 다듬었다.
천봉산 등산안내도를 보니 산으로 오르고 싶지만 참고 바보를 사진 찍으며 극락전으로 오른다.
자주 왔으면서도 새삼스러운 감실안의 어머니부처를 본다.
긴 염주는 보이는데 머리로 두드린다던 커다란 목탁은 보이지 않는다.
괘불을 건듯한 긴 쇠붙이 기둥 앞에서 신도와 스님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다.
법정스님의 사촌 동생이라는 현장스님인 듯 보이는 스님도 짧은 런닝을 입고 물건을 들어 날른다.
나무에 걸린 법구경이며 불가 격언들을 읽으며 황희영각으로 올라간다.
전남의 여러 전각들에 걸려있는 학정 이선생의 글 중 황희 영각이 난 단아하고 좋다.
청백신근 경사자서에 달통한의 공무원 귀감이라고 쓰인 주련을 읽으며 아는 체를 해 준다.
황정승과 그의 아들이 대원사와 인연이 있어 보성과 인근의 장수황씨 후손과 대원사에서
영각을 세워 준 모양이다.
거친 길을 올라 수관정앞은 단풍이 곱다. 극락전 앞의 석불동자상에 빨간 뜨개모자를 씌웠더니
이 앞의 여럿 돌탑에도 빨간 모자를 쒸워 두었다.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어린 영혼들에게 이 모자는 안온을 줄 것인가?
수관정은 죽음을 보는 정자라 하여 문을 열어보니 목관이 베개 목탁과 함께 놓여있다.
갑자기 서늘한 소름이 밀려온다. 얼른 닫아버린다. 난 죽음을 마주할 준비가 덜 되어 있는가?
오른쪽 산록 나뭇잎 수북한 길을 따라 걸으니 성모전이 나타난다.
환웅의 부인이고 단군으 어머니인 웅녀를 모신 그러고 보면 우리민족의 어머니인 분의 사당이다.
벚나무 가지가 나아가다 다시 붙은 나무에 올라 서니 바보가 말린다.
끝까지 걸을 재주는 없어 되도는데 몸이 흔들린다.
극락전 옆으로 내려오니 자진원오국사부도가 늘씬하게 반겨준다.
깊지않은 조각으로 신녀와 신장들을 돋을새김해 둔 것이 정교하다.
뒷쪽에 작은 전각엔 아도화상이 어린이처럼 앉아 있다.
돌아 내려오며 담장 연못 뒤의 단풍들을 넘어다 본다.
물ㄹ이 가득찬 주암호 가에는 하얀 억새가 물에 반쯤 다리를 잠그고 있고
구비진 낮은 산의 단풍들이 붉어지고 있다. 고요한 날에 저 반영을 잘 잡을 시간을 갖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