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포스팅은 대구의 주한미군의무사령부인 Camp Walker에서 1970-1971년까지 미군으로 근무한 Don Campolongo씨가 인근의 사찰과 포항, 부산 등지에서 찍은 사진으로 질곡의 그 시절, 생생한 우리네의 일상적인 삶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억을 되뇌이게 한다.
전형적인 초가마을로 마을 주변에 버드나무들이 많았어요~ 손으로 하루종일 모내기 하고나면 눈이 퉁퉁 붓지요 모내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천수답이 많아 이맘때면 초벌 논매기 하였죠~ 힘이들죠.. 동네 아이들의 모습.. 여름이면 매미잡고 구슬치기하고 놀았는데.. 먼~ 시장길(신장로) 산중시골이라 오리나 십리길을 가야 한답니다. 당시 까만 비누도 많았는데. 풀베기 운동(퇴비용)ㅡ4H 구락부기도 보이네요
옛날의 시골풍경 직접 맛을 봤다. 그냥 말을 듣고 알수 없는 일 그래서 그자리에서 맛을 봤다 장터는 옹기전, 어물전, 우시장, 철물전, 장에서 장으로 이장 저장 떠도는 온갖 장돌뱅이에 뜨거운 국물 국밥집, 갓 눈뜬 강아지도 팔러 나왔다 사고 파는 이가 따로 정해진 것도 없었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도 없었다. 사방의 장사꾼이 모인 장터엔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축제가 됐다. 모두가 주인공인 한 명의 관객도 없는 역동하는 완벽한 축제의 한마당 그 자체였다. 장터는 원시적 거래장소다. 땅 바닥에 물건을 놓고 엉덩이를 붙이면 그만이었다. 그런 노점이 장터가 되고 장날이 생겼다. 장터 국밥집에서는 초면과 구면을 불문하고 거래와 별개로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까지 이런 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물러설 줄 모르는 듯, 아슬아슬 하지 짐짓한 발씩 뒤로 물러서는 듯 거래가 됐다. "이러면 밑져요." 그 무슨, 허허허." 그러다가 그다지 상관도 없는 사람이 끼어들면 거래는 또 늦어졌다. 입성이 제법 괜찮아 보이는 사람은 중절모를 쓰고 곰방대를 물고 있지만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는 이것도 저것도 없다 가난에도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지게꾼은 시장이나 기차역 등에서 손님의 짐을 날라주고 품삯을 받았다 긴 기다림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돈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닮았다 흰 수건 곱게 쓰고 고추를 다듬는 아낙의 얼굴은 색 좋은 고추처럼 발그레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든 마을 이장이나 작업 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장소로 이동하던 그때...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풀베러 가지고하면 어찌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수가 없는 마음 생각해보니 풀쇄기란 벌레가 있는데 그놈한데 한방쏘이면 온몸이 부어올랐던 기억이..
첫댓글 어릴적 추억사진을 찾고 있었는데
좋은자료 즐감합니다
그런데
대구든 주변 농촌이든
거리간판이나 눈에익은 지형지물이든
시기와 지역을 인식할수 있는사진이
없어 아쉽네요
기다리면 언젠가 누가 내놓겠지요
감사히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산과 들에서 풀을 베어 지게에 지고 새마을기를 든
마을 이장이나 작업 반장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집합장소로 이동하던 그때...높은 분들이 지나가면
잘 보이도록 도로 옆 가장자리에 산더미처럼 최대한 높게 쌓아
실적에 따라 마을별로 시상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풀베러 가지고하면 어찌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수가 없는 마음
생각해보니 풀쇄기란 벌레가 있는데 그놈한데 한방쏘이면 온몸이 부어올랐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