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경 요한복음 1장 14-18절
찬송 115장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눅2:10-11)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음을 알리는 천사의 말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소식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 곧 복음이라 합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복음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구주, 곧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어제나 오늘이나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또 그 죄의 열매인 사망과 온갖 악행으로 말미암아 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눈을 들어 평화 없는 세상을 보십시오. 지금 내란 사태로 고통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형편을 보십시오. 내란 사태를 일으켜 국민과 나라를 존망의 위기 가운데로 몰아넣는 죄를 짓고도 오히려 큰 소리치고 있는 반란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을 옹호하고 있는 일부 지지자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소망 없는 세상의 모습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 유대 땅과 거기 살던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똑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왕은 헤롯 대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부인과 자녀들까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사는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오직 로마 황제의 이익과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유대 땅을 다스렸던 헤롯 대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너무너무 큰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심지어 헤롯 대왕의 가족들조차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자기의 친 아들과 아내까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이는 권력자가 무슨 짓인들 못하였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의 종교 생활은 또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로 예루살렘 성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바로 제사장들이 할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은 오히려 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과 하나님의 성전 제사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무너무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형편이 오죽이나 악하였으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강도의 소굴이라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3)
또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율법 조문으로만 사용하므로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만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제시하는 율법 조문을 따라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인생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만,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결코 벗어버릴 수 없는 양심의 짐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결코 지킬 수 없는 율법 조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인생의 절망과 슬픔을 아십니까? 이런 사람들은 늘 자기보다 덜 경건하다고 여기는 이웃을 정죄하고 판단하므로 서로에게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며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세상의 모습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다 자기 욕망에 눈이 멀고, 자기 의에 눈이 가려져 절망과 고통과 슬픔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캄캄한 어둠 가운데서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어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죄와 악으로 깊이 오염되고 부패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는 세상에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아멘입니다. 이 일은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상 가운데 빛과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환하게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대적하는 죄가 무엇인지, 또 죄를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슬러 살아갈 때 얼마나 악한 열매를 얻게 되는지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죄인들이 맺고 살아가는 그 악한 열매들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그의 곁에 사는 이웃들도 얼마나 큰 고통과 절망을 만나게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죄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살던 대로 살아갈 따름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때문에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따라 부지런히 달려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그 삶의 방식으로 말미암아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헤롯 대왕을 보십시오.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12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이들을 고용하여 하루 16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끔찍하게 환경을 파괴하여 지구를 큰 위기 가운데 몰아넣고서도 아무런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뻔뻔함을 보십시오. 가부장적 질서를 고집하는 가장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소망 없는 모습입니까?
이 세상에 빛이 필요합니다.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빛과 진리를 선물해주셨습니다. 그 빛과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 순종할 때, 하나님 나라와 구원과 참 자유를 선물해주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눅2:10-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 가운데 찾아오셔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는 얼마나 충만한 사람, 얼마나 부요한 사람이 된 것입니까? 온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 세상의 모든 필요를 넉넉하게 채우시는 하나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셨으니, 한없이 부요하고 풍성합니다.
왜 세상에 구원이 필요합니까? 앞서 말씀을 나눈 그대로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건강도, 재물도, 생명도, 능력도, 지혜도, 의로움도, 선함도, 거룩함도 없습니다. 세상은 한없이 가난하고 또 가난합니다. 누구든지 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욕심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또 욕심을 냅니다. 왜죠?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 풍성하고 넉넉하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함께 계시면 이 모든 가난의 문제가 한순간에 다 해결됩니다. 다시 말해 구원이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안에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셨는데, 더 이상 무엇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 세상이 구원을 받는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아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선물해주러 오신 구원자 예수님께서는 다른 분이 아닙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에는 이미 구원이 이루어져 더 이상 구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어떻게 이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났습니까? 오직 은혜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따라 세상의 빛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로 살아갑시다. 세상의 복이 되어 살아갑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6-18)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6-7)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