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클레멘스 1세는
성 베드로, 성 리노, 성 아나클레토에 이어
제4대 교황이 된 인물이자
사도 교부 중에 한 명이다.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료가 부족하나,
4세기경에 기록된 외경 『순교자 행전』이나,
13세기에 쓰인 『황금전설』에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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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로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베드로에게 직접 로마 주교로 서임 받았으며,
1세기 말엽 로마 교회 공동체를 사목했다고 한다.
또한 베드로는
실질적인 후계자로 클레멘스를 지명하여
교회의 모든 업무를 위임했다고도 전한다.
따라서 교황 목록에서는 베드로가 죽은 후,
곧바로 그의 직무와 권한을 계승했다고 본 것이다.
클레멘스가 교황이 된 때는
아직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끝나기 전이었다.
그래서 성인은
탄압에 떠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며,
카타콤에 숨어서 미사를 지내고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며,
맡은 바 어린양들의 신앙을 보존하도록 열정을 다했다.
또한 성 클레멘스 1세 성인은
코린토 교회에서 일어난 분란을 중재하면서
그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성인이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서한은
지금까지도 교황좌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
로마에서 설득력 있는 설교가로
성공적인 포교 활동을 수행하던 성인은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됨과 함께
크림반도로 추방됐다.
성인은 그곳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했으며,
유배지에서도 계속 동료 노동 죄수들에게
열렬히 설교하여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한편, 성인은 당시 광산에서 노역하고 있던 죄수들이
물 부족으로 몹시 고통받는 것을 보고,
그곳에 샘물이 나오게 하는 기적도 일으켰다.
이러한 기적과 성인의 성덕에 죄수뿐만 아니라
이교도들까지 감화되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새로운 그리스도교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75개에 달하는 새로운 교회가 건립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소문을 들은 트라야누스 황제는
성인을 사형토록 명령했고,
성인은 목에 닻이 매달린 채
흑해 바다에 던져져 순교했다.
성 클레멘스 1세의 유해는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 형제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고,
로마 성 클레멘스 성당으로 옮겨졌다.

글...2019년 4월 7일 인천주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