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길고 해가 짧은 곳, 깊고 얕은 산이 고장을 이루어 시인 박세현이 '앞산 뒷산에 빨랫줄을 거는 동네'라 했던 곳, 조선 중기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이 '무릇 나흘동안 길을 걸었어도 하늘과 해를 볼 수가 없었다'고 한 정선이다. 지금도 만항재에는 눈이 쌓여 설경을 자랑하고 남도에서는 경쟁적으로 꽃소식을 알리고 있지만 꽃이라곤 노란 생강나무 밖에 보지 못할 만큼 봄이 더디 오는 곳, 정선으로 나는 가고 있다.
정선은 평창을 거쳐 지금은 터널이 길을 대신하고 있는 비행기재를 통하여 가던가 진부에서 오대천 물길을 따라 나전으로 가야 하는데 두 길 모두 여느 여행길과는 색다른 감흥이 일 것이다.
구절양장의 오대천 길은 우리나라 제일의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이고 수항리에는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기 전에 세웠다는 수다사 절터가 있어 이번 여행은 오대천 길을 택하기로 했다.
오대천의 물은 굵은 바위에 걸리면 흰 거품을 토해내고 굽어진 길이 나오면 순응해 가며 돌아간다. 물길 따라 휘어진 길은 겹겹이 포개진 산으로 막혀 도무지 앞이 어떤지 알 길이 없어 어느 이름 모를 세상으로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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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진부에서 나전까지 가는 길 내내 따라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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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옆으로는 백석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좁은 공간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선 산간 집들이 점점 흩어져 있다. 여기에 진달래꽃이 피고 하얀 껍질 바탕에 윤기 있는 자작나무 잎 순이 돋아나 들녘이 풀빛으로 채색이라도 되면 '무릉정선'이라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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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폭포/소나무 사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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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진부에서 10km 남짓 가면 수항리가 나온다. 수항리 표지돌을 끼고 오대천 밑으로 내려가 잠수다리 직전에서 좌측으로 자갈길을 5 여분 가면 밭 안에 수다사 절터가 있고 거기에 예쁜 탑 하나가 오대천을 내려보며 서 있다. 수다사는 현재 남아있는 석탑으로 보아 7세기 중엽, 고려시대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밭 안에 있는데 밭 주인이 하는 말이 밭을 밟지 말고 보라는 것이다. 밭을 밟으면 밭이 굳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난 그 분의 말에 화도 나고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면서 밭 외곽으로 조심조심 다녀왔다. 그 분이 이런 맘을 갖게 된 이유를 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도회지 풍으로 생긴 작자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폼을 잡고 있는 모양이 맘에 안 들었을 게다. 게다가 오대천 자갈밭 나뭇가지에 지난 농사 때 사용한 검정비닐이 보기 흉하게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 홍수가 이들의 '봄'을 빼앗아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탑은 두꺼비가 눈을 껌벅 껌벅 하고 있는 것 같아 귀엽기도 하고 엄마 잃은 아이 같기도 하여 애처롭게 보이기도 한다. 1000년의 세월을 의연히 서 있었다고 생각하면 의젓하게 보이기도 한다. 온갖 어려운 일, 억울한 일 또는 기쁜 일을 다 겪었을 것 같다. 가만히 탑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탑은 말하고 있다. "역사는 흐르고 잠시의 고통은 지나가니 천년 만년 후에 욕되지 않게 정도의 길을 가야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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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비탑으로 이름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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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진부에서 30km정도 가면 나전이 나오고 나전에서 좌측으로 가면 여량이다. 곡식이 남아돈다고 해서 붙여진 여량(餘糧), 비단 밭이라 불릴 만큼 비옥하고 비교적 너른 땅 나전(羅田). 이런 지명은 어쩌면 다른 동네 사람들의 푸념같이 들린다. '너희 여량과 나전은 그나마 낫다' 라는 부러움이 서려 있는 듯하다. 그 만큼 정선은 넓고 비옥한 땅이 부족했다는 반증이라고나 할까? 이래서 시인 박세현은 정선을 두고 다음과 같이 얘기했나 보다.
(전략) 작은 절망 큰 절망 풀뿌리처럼 엉겨 사는 곳 봄이 오면 잊었던 꽃들 되살아오고 사람들 비탈진 밭에 나가 씨앗을 뿌리는 나라 씨앗은 그들의 한 됫박 숨찬 꿈이다 (후략)
(정선 아리랑, 박세현, 문학과지성사 중 정선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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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넓게 보이는 여량 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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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이름까지 예쁜 여량. 임계 가는 언덕길로 오르면 여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골지천이 옆으로 흐르고 중앙에는 여량초등학교가 예쁘게 자리하고 있다. 그 앞에는 제법 규모가 큰 성당이 있어 낯선 여행객에게는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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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량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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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여량 초입 왼쪽으로는 아우라지역이 있다. 아우라지역 벽에는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어 여느 간이역하고는 자못 다르게 보인다. 아우라지역은 원래 여량역이었다. 어쩐지 '관광역' 냄새가 많이 나 여량역이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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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역'이 되어 버린 아우라지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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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역 안에 역명표도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역명표에는 좌측으론 나전이 우측으론 구절이 적혀 있으나 정선선 꼬마열차는 지금은 증산-정선구간만 운행되고 정선-나전-아우라지-구절리 구간은 수해로 운행되지 않고 있다. 9월 개통 예정이지만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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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 아우라지역 보다는 여량역이 더 예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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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낯선 지방에 오면 편히 쉴 만한 곳을 찾기 마련인데 여량에는 옥산장이 있어 좋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가는 고향집처럼 편안한 맘을 갖고 이 곳을 찾아도 된다. 여기서 하루 밤을 묵고 산책 겸 아우라지에 나가 맘에 드는 돌멩이라도 줍는다면 새로운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게다. 나는 강가에서 돌멩이를 주울 때 제일 못생긴 놈을 주워 온다. 산은 제일 못생긴 나무가 지키듯이 강은 제일 못생긴 돌멩이가 지킬 것만 같아 재미 삼아 강가의 주인공을 가져올 심산으로 못생긴 놈을 하나 주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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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산장/하룻밤 편히 쉴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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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한다. 북쪽의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구절천(송천)과 동쪽의 삼척군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임계쪽의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다. 구절천은 돌이 많아 거칠게 흐르고 골지천은 얌전하다. 구절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하는데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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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이 골지천이고 섭다리 밑을 세게 흐르는 천이 구절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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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올해는 양수가 많았나 보다. 영동지방은 물론이고 이 곳 정선에도 여름에 홍수가 나 오대천, 골지천, 조양강 곳곳에 수해복구와 예방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은 아리랑의 발상지중의 한 곳으로 정선아리랑 중에서 대표적인 가사가 이 곳과 연관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이였던 여량리의 한 처녀와 구절리 너머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동네사람들의 눈을 피해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는데 밤사이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나룻배가 떠내려 갔고 이를 바라보던 뱃사공은 이런 안타까움을 아리랑으로 노래했다. 이 뱃사공은 장구를 잘 치는 지장구라는 분이었는데 실제 인물이라 한다. 그리고 노랫말 속에 나오는 아가씨가 바로 아우라지 처녀상의 주인공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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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 잃고 외롭게 떠 있는 나룻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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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여기서 동백나무는 남도의 빨간 꽃 동백이 아니고 정선에서는 봄에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한다. 산수유나무하고 흡사한데 생강나무의 잎과 줄기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생강나무의 꽃향기도 대단하여 한 송이 따서 차안에 두었는데 집에 올 때까지 뿜어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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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에서는 동백이라고 하는 생강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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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한편 초례를 치른 여량의 한 처녀가 강을 건너 시집으로 가는 날 하객과 친척들이 많은 짐을 싣고 강을 건너다가 뒤집혀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뒤로 해마다 두세 명씩 이 물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 곳에 처녀상을 세운 이후로는 이런 일이 없어 졌다고 한다.(아우라지에 얽힌 사연은 〈답사여행의 길잡이3 동해·설악편〉에서 발췌 정리)
멀리서도 보이던 처녀상이 보이지 않아 이상히 여겨 동네 주민한테 확인하니 홍수 때 떠내려가 총각한테 갔다고 하기도 하고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디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였다. 2002년 8월에 찍은 사진을 보면 그 때도 비가 대단하여 처녀상이 떠내려갈 것 같았는데 그대로 놔둔 것을 보면 비에 쓸려 총각한테 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아무튼 빨리 처녀상을 세워야 아무 일 없을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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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상은 총각을 만나러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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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김정봉 |
| 물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여량과 구절 사이에 통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얼기설기 매어 섶다리를 놓는데 봄에 물이 불어 다리가 떠내려가면 나룻배가 이 다리를 대신한다. 이 섶다리도 그저께 쓸려 나갔다 한다. 평년 같으면 벚꽃이 필 때까지 섶다리가 온전하였던 것 같은 데 올해는 일찍 섶다리가 없어졌다. 아우라지비로 이어지는 섶다리만 남아 있고 나룻배는 고장나 주인을 잃고 쓸쓸히 노닐고 있었다. 섶다리도 없어지고 나룻배도 없어 이 곳 주민들은 당분간 여량을 가려면 큰 다리로 돌아서 다녀야 한다고 한다.
틀만 남아 있는 처녀상, 주인 잃고 묶여 있는 나룻배, 홍수복구를 하는 골지천의 포크레인... 아우라지 봄은 스산하였다. 남과 북, 동과 서가 합수 되어 '아우러지는' 세상은 아직 이른 모양이다. |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것같은데..
잘 읽었습니다
멋저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멋지다
백석 폭포 너무 멋있다..
와 백석폭포 멋지다
처녀상은 총각을 만나로 갔다.. ㅋ
잘읽었어요,,
잼있게 읽었어요..
백석폭포가 너무 멋져요~
재미있었습니당
여기서 놀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산에서 물을 흘러..@!~
폭포가 시원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