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가 청와대에 간다고 출세를 해도 크게 했다며 저의 아내는 제복 바지에 주름을 날아가는 파리가 벨 정도로 날을 잡고 먼지를 털고 또 텁니다.
대통령님과 함께 앉는 헤드테이블에 좌석이 지정되었다는 행정자치부에서 온 전화를 받고,
'철도청에서 혼자 가니 철도인의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할텐데'
'기관사로서도 명예를 높여야 할텐데'
하는 생각에 잠긴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두 아이는 벤드민턴을 치러가자고 영어 본 발음으로 재롱을 떨지만 내일 청와대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에 그럼 대통령께 고맙다는 편지를 해야겠다며, "아빠, 편지를 어떻게 해야 해요?" 라고 물어옵니다.
"인터넷 청와대 사이트에 가서 하렴"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알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어느덧 걱정은 사라지고 대통령을 가까이 에서 뵈올 수 있다는 기쁨에 마음마저 설레어 집니다.
2002년 1월 17일, 드디어 청와대 가는 날.
아내와 두 아이의 대대적인 환송을 받으며 집을 나선 나는 인천시청 자치지원과에 도착하여 인천지역에서 선정된 구청, 경찰서 및 보건소등에 근무하시는 9명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인천시청을 출발하여 경복궁 동편 주차장에 10시 35분 도착하였습니다.
11시에 인원을 확인한 후 대형버스에 나누어 타고 청와대로 이동하여 11시 30분에 영빈관에 입실하였습니다.
행사진행은 참석자 개개인의 접견, 행정자치부 장관의 감사말씀, 위도고등학교 선생님의 건배제의, 사례발표, 대통령의 치사, 청와대 경내관람 순서로 진행된다는 소개를 받고 긴장된 마음을 따뜻한 차로 달래며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대통령 내외분께서 입장을 하셨습니다.
철도청 구로승무사무소 기관사라는 소개를 받고 대통령 내외분과 악수를 나누며 두 분을 뵈옵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3명이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발표하였는데 한라산에서 동물보호와 겨울에 조난자를 구조하는 사례, 여성공무원의 소년 가장을 돌보는 사례 등 정말로 어려운 근무여건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온 몸으로 봉사하는 숨은 일꾼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례발표가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어 각 테이블별로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영빈관의 좌석배치는 원탁 테이블에 10명씩 앉게 되어있는데 저는 대통령 내외분, 행정자치부 장관과 함께 앉는 헤드 테이블에 배정되어 식사도 같이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헤드테이블에는 서울의 노숙자 대책반에 근무하는 분, 춘천의 보건소에 근무하는 분, 광주의 동구에 근무하는 분, 서울 종로구에 근무하는 분, 등대를 지키는 분, 해경, 경찰서에서 오신 분 모두 6명이 있었는데 대통령께서는 일선현장 공무원들의 어려움과 애로사항들을 물으셨습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한다는 등대를 지키는 분의 말을 듣고는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표정을 보며 현장 일선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을 매우 아끼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식사를 할 때는 너무나 긴장이 되어 음식의 제 맛을 느낄 수 없었지만 조금은 진정이 되어 음식의 맛이 느껴질 무렵 "전철운행이 컴퓨터 시스템에 의하여 운행되는가" 라고 대통령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저희 국철 1호선은 컴퓨터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고 기관사의 제어에 의하여 정차 및 출발을 합니다."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또 대통령께서 "예전과 같이 전철을 이용하는 승객이 많은가?"라고 물으셨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지옥철'이란 얘기를 들으셨지요? 지금은 경인 복복선이 부평까지 개통되어서 예전 보다 많이 나아졌고 조만간에 주안까지 개통된다면 '지옥철'이란 말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제가 답변을 마치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어느덧 맛있는 식사의 마지막 순서인 과일이 들어오고 대통령께서 일선 현장공무원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행정에 헌신하고 있는 공직자들의 노력과 숭고한 봉사정신이야말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하는 사회의 등불이라며 치하했으며, 건강보험등 4대 보험을 정착시키고 월드컵 및 아시안게임을 전 국민 특히 현장 일선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하며, 대통령 선거 등을 공정하게 치를 것, 북한에서 경의선 북한 구간을 연결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는 말씀과 함께 남북철도를 연결하여 우리 나라가 물류기지가 될 수 있게 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며, 농업부분에서도 경쟁력을 길러야 하고, 9.11미국 테러사건에서도 우리 국민의 동요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햇빛정책의 결실로 어느 정도 긴장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며,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통령의 말씀 중에서 제 가슴에 가장 와 닿은 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노력해서 더 높은 지위와 부를 얻는다면 그 것 또한 백 번 좋은 일 "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한이 없는 것이라 무엇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면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다며 지금 내 자리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지금 까지 기관사로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돌이켜 보고 이제는 결과에 좌우되는 삶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이상으로 영빈관에서 진행된 오찬간담회를 마치고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과 수궁터, 녹지원등 청와대 경내를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관람하였으며, 청와대 경내를 관람하는 초등학생들의 함박웃음 속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된 모습과 밝은 미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경복궁 주차장을 향해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며 다짐해 봅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자리인 기관사의 자리, 남편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 아들의 자리에서 과정에 충실하는 삶을 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