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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사상(淨土思想)과 정토신앙(淨土信仰) >
일종의 종교혁명처럼 아비달마를 추구하는 소승 부파불교에 반발해서
대승불교가 일어났듯이 대승불교에 반발해서 등장한 신앙이 정토사상이다.
기존교단인 부파불교의 구태의연하고 전문가 위주의 이론불교에 반기를 들어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인데, 이렇게 일어난 대승불교가 세월과 함께
그 자신도 이론불교로 흐르는 잘못을 저지르게 됐다.
그 좋은 예가 대승불교의 두 축인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학(唯識學)이다.
물론 이 두 사상이 불교 교학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음은 사실이나
무식한 대중의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임이 역시 사실이다.
특히 유식학은 6식이다, 7식이다, 8식이다, 하는 이론을 전개하면서,
제9 백정식(白淨識)이라는 것을 창작하기도 해서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6식을 말씀하신 부처님 직설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리하여 대승불교가 과거의 소승불교(부파불교)처럼 이론적으로 자꾸 어려워진 것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의 하나가 정토신앙이다.
누구나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을 하기만 하면 극락정토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아주 쉬운 불교,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불교,
극히 대중적인 불교를 모색한 것이 정토신앙이다.
불교철학에 탁월했던 원효 대사가 저잣거리를 누비며
무식하고 서러운 백성들에게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길을 가르쳤던 것도
누구나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을 하기만 하면 극락정토에 태어난다는 정토신앙이었다.
그리하여 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나 미륵보살과 같은 보살들이 거주하고 있는
청정한 세계인 정토(淨土)를 희구해서 등장한 불교사상이 정토신앙이었다.
정토신앙이란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그가 주재하는 정토의 존재를 믿고,
정토(淨土)를 실현하거나 죽은 후 그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사상 혹은 신앙을 말한다.
그리고 정토(淨土)란 ‘아미타바(Amitabh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부처,
아미타불이 주재하고 있다는 서방정토(西方淨土), 즉 불자들이 지향하는 유토피아,
모든 유혹과 번뇌가 없는 극락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정토신앙을 아미타신앙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의 서방정토가 가장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원래 자신의 노력으로 수행을 해 깨달음을 이룸으로써
해탈을 성취하려는 철저한 자력구원의 종교로 출발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삶에 시달려 정신적 여유가 없는 중생들도 있다.
이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해탈을 이룰 근기가 없다.
따라서 이들은 타력에 의존해서 쉽게 목적을 달성하거나 행복을 구하고자 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불ㆍ보살을 통해 생기는 공덕은 중생들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관념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의 정토교(淨土敎) 같은 타력적(他力的) 신앙 활동을 이끌었다.
그런데 정토사상에서 흔히 서방하면 극락세계를 떠올린다.
그러나 서방에만 정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남북에 다 정토가 있다.
동방에는 약사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東方淨瑠璃世界)가 있고,
남방에는 보승여래(寶勝如來)의 환희세계(歡喜世界)가 있으며,
북방엔 부동존여래(不動尊如來)의 무우세계(無憂世界)가 있고,
중방엔 비로자나불의 화장세계(華藏世界)가 있으며,
서방에 아미타불의 극락세계(極樂世界)가 있다.
그 외에도 미륵불(彌勒佛)의 도솔천, 관음보살의 보타락산(普陀落山) 등도 정토의 예이다.
이와 같은 정토에 대해서 현실세계를 청정하지 못한 세계, 즉 예토(穢土)라 한다.
그리하여 정토사상에서는 아미타불의 본원력과 구제력에 의지하고,
불⋅보살의 가피에 힘입어 정토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타력신앙을 추구한다.
이는 모든 부처들의 중생구제의 뒷받침이 되는 관념으로서
중생을 구원하는 자비로운 부처라는 구제불(救濟佛) 사상이다.
이러한 정토사상은 원시경전의 생천사상(生天思想)이 발단해서
정토계의 왕생사상(往生思想)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정토사상에 대한 경전은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이라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 있다.
그리고 용수(龍樹)의 저술인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용수가 <화엄경>의 <십주품〉을 해설한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도 정토왕생을 설하고 있다.
비록 정토교를 하열한 법을 좋아하는 범부를 위한 이행도(易行道)라 했으나
나름으로 이해해서, 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세친(世親)의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에도 정토왕생의 수행방법을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 중관학이나 유식학에서도 모두 정토사상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신라시대에 원광(圓光)이
처음으로 정토사상을 도입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그 뒤 자장(慈藏), 원효(元曉), 의상(義湘), 의적(義寂), 태현(太賢) 등에 의해
활발한 교학연구가 이루어졌다. 아울러 정토신앙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민간에 널리 전파됐다. 다만 정토사상은 부처님이 설하신 적도 없고,
실은 부처님 가르침에 배치되는 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초 불교가 출발할 때, 대부분 상류 지식층을 대상으로 포교가 전개됐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부처님께서는 천민들의 구제나 해탈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했다.
물론 불교가 사상적으로는 천민구제 이념에 입각한 것이기는 하나
실제 하층민들이 쉽게 참여할 방법이 없었다.
불교 교학이 하층민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고차원의 것이었다.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에 천민들의 자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전반적인 일반 백성의 의식이 다소나마 향상되고,
힌두교가 등장하면서 무산대중을 포섭하게 되니,
불교에서도 뒤늦게나마 대중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 대승불교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이미 상류 지식층에 걸맞게 시설돼 있어서
대중에 어울리는 교의는 마땅치 않았다.
때문에 대승불교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의를 개발하다가 보니,
더러 부처님 가르침에 빗나가는 것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만약 불교가 초기에 출발할 때부터 부처님께서 천민을 비롯한 하층민들이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교의를 시설하셨더라면 훗날 대승불교운동 방향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불교는 원래 석존(釋尊)의 교설을 토대로 성립한 종교이다.
그 교설은 다름 아닌 석존 자신의 깨달음에 근거한 성불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석존의 교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었고, 또한 그 목적이 만인성불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석존의 교설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류 지식인층이 아닌 하층민으로서 접근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흔히 석존의 교설을 말할 때 시공초월(時空超越)의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거친 시공 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중생들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 진리가 이해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생들은 자신의 감각에 집착하는 경향마저 있다.
이렇게 보면 석존의 교설은 비록 시공초월의 절대적 진리라 할지라도 중생들로 하여금
그러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방편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교사적으로 볼 때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출범한 것이 대승불교운동이었다.
대승불교란 기존의 불교가 전문적인 교학연구에 몰두하며 중생구제에 소극적일 때
석존이 의도한 불교의 진정한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불교부흥운동이었다.
특히 그들은 자신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기존의 불교를 ‘소승(小乘)’이라고 비하하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을
이상적인 모델로 내세웠는데, 이것은 불교의 궁극적 목적, 즉 석존 교설의 진정한 뜻이
모든 중생의 성불에 있다고 본 까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에 가장 충실한 사상 가운데 하나가 정토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토사상의 핵심은 ‘아미타불’과 ‘극락정토’,
그것들의 성립근거인 ‘본원(本願)’, 그리고 그 정토에 누가 어떻게 ‘왕생’하느냐에 있다.
여기서 왕생이란 왕생자의 자력이 아니라 중생구제를 본질로 하는 아미타불의 본원력,
즉 타력에 의한 것으로서, 그 왕생자를 수용하는 극락정토 역시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아미타불의 지혜와 자비가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정토사상의 본질은 가장 원만한 수행환경이 갖추어진 극락정토에 왕생해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듣고 성불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그를 듯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인 자력구원에는 배치되는 사상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대승비불설의 대상인 된 핵심 사상이 바로 정토사상이다.
예수는 인도에 유학하고, 티베트까지 가서 공부한 빛나는 수행승이었다.
그런 분이 자기 스스로를 신(神)이라 했을 리도 없고,
더구나 부활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약삭빠른 자들이 자기네 교주를 신비화하기 위해 신이니 하느님이니 하고 추켜세우고,
천지창조를 했다느니 부활했다고, 도저히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어리석은 중생은 이런 신비스러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어야 더 많이 모여드는 법이니까.
그래서 로버트 피시그(Robert Maynard Pirsig)는 말했다.
“개인이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병자라 하고, 군중이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신력이 약한 중생들이 쉽게 구원받을 길을 찾다가 신에 의지하고 싶어
종교란 이름으로 미화한 것이 오늘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예수를 우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불교에 있어서도 ― 기독교에 오십 보 백보라고 할 일이 정토신앙이다.
자연인인 석존을 도저히 신격화하려니, 이미 설해 놓고 남긴 흔적이 너무 장황하고 방대해서
도저히 이를 숨기고 신격화하기가 어려워 새로 신격을 만들어낸 것이
아미타불이요, 비로자나불이고, 관세음보살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부처님 실체는 점차 신비화되고 신화로 채색돼갔다.
그리고 부처님의 생생한 사실적인 가르침은 중생들 생각과 논리에 의해 조금씩 변질돼 갔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영민하고 약삭빠른 자들이 쉽게 편하게 지내려고 만들어내,
그리고 우매한 중생을 끌어들이는 것이 정토신앙이라는 비판도 있게 된다.
이러한 정토사상은 기독교의 타력구제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이에 바탕 한 정토교는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지해 중생이 구제된다며,
부처님을 절대화하고 유일신교의 타력신앙과 같은 새로운 교리를 전개함으로써
대승불교를 수행불교에서 신앙불교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이념은 당초 석가모니 부처님이 유언하신
“법에 의지하고 자신에 의지하라(法歸依自歸依)”라는 내용과는 분명히 상반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신앙을 비롯한 여타의 타력신앙은
‘자리(自利)가 곧 이타(利他)’라는 입장에서 어려운 중생을 구원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상적 토대 위에서 성장한 대승불교로서는 불가결한 요소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토신앙은 아미타불의 구원을 믿으며,
한마음으로 열심히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외면,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해 종교적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대승불교사상이다.
이러한 아미타불의 정토를 미타정토(阿彌淨土)라고도 하는데,
미타정토의 사상이 중국에 전래된 것은 AD 179년 후한 때 <반주삼매경>이 번역된 것을 그 효시로 본다.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기원 전후, AD 1세기 무렵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이며,
정토계 경전 가운데서도 초기에 편찬된 선구적 불경이다.
중국에서는 후한 시대인 AD 179년에 인도 출신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한역했다.
경의 이름에서 ‘반주’는 ‘~에 대해 가까이 서다’라는 뜻이니,
반주삼매는 마치 부처님이 눈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되는
삼매[불현전삼매(佛現前三昧)]라는 뜻이다.
정토란 염불을 통해 자기만이 도달할 수 있는 피안의 낙원이 아니다.
정토사상의 근본 취의는 자신의 이익이 사회화된 곳에 정토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해탈 또는 구원의 사회화가 바로 정토라는 현실참여의 실천적 성격의 신앙이다.
따라서 내가 쉽게 구원받았다면 남도 쉽게 구원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믿는 진정한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 불교도들에겐 그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나친 이기적인 작태와 이타적 자각의 결여로 정토사상에 배치되는 실상이
참으로 안타까운 오늘의 모습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