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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듣는 밤 / 최창균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빗소리
참으로 많은 생을 불러 세우는구나
제 생을 밀어내다 축 늘어져서는
그만 소리하지 않는
저 마른 목의 풀이며 꽃들이 나를
숲이고 들이고 추적추적 세워놓고 있구나
어둠마저 퉁퉁 불어터지도록 세울 것처럼
빗소리 걸어가고 걸어오는 밤
밤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내 문 앞까지 머물러서는
빗소리를 세워두는 구나
비야, 나도 네 빗소리에 들어
내 마른 삶을 고백하는 소리라고 하면 어떨까 몰라
푸른 멍이 드는 낙숫물 소리로나
내 생을 연주한다고 하면 어떨까 몰라
빗소리에 가만 귀를 세워두고
잠에 들지 못하는 생들이 안부 묻는 밤
비야. 혼자인 비야
너와 나 이렇게 마주하여
생을 단련 받는 소리라고 노래하면 되지 않겠나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 마냥 들어주면 되지 않겠나
1960년 경기도 일산 출생
1988년 <현대시학>에 <벼랑에서> 외 1편을 발표하며 작품
경기도 파주시 고하읍에서 젖소 20여 마리를 키우며
1만5천여 평의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있다
시집 <백년자작나무 숲에 살자 > 창비 2004년
제37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비 그친 뒤 / 안도현
담장 밑 텃밭 상추 푸른 냄새가
3층 교실까지 올라온다
딱정벌레같이 엎드려 사는 슬라브지붕집 빨랫줄에
누군가 눈부시게 기저귀를 내다 넌다
저 아기도 자라면 가방 들고 딸랑딸랑 이리로 걸어 올 것이다
1961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1년 대구매일 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리운 여우>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닷가 우체국>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
1996년 제1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제13회 소월시문학상, 2005년 이수문학상
전주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비 맞는 전문가 / 최정례
십여 년 동안 그가 한 일은
비 맞는 일뿐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는 재빨리 나가야 한다
버스 정거장 가로수 아래로
머리에 코에 수염에 빗줄기가
주르륵 흐르도록 해야 한다
주머니 가득 빗물을 채우고
그를 기다렸던 버스가 텅 빈 채
다시 출발할 때까지
서서 비를 맞아야 한다
건너편 창에서
그녀의 그림자 사라질 때까지
과자처럼 바삭거리며
리모콘과 뒹구는 그녀를 위해
가로수 늘어진 가지를 흘러
머리카락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셀 수 있어야 한다
담배는 주머니 안에서 죽이 돼야 한다
그녀가 원하면 언제든지
비 맞는 장면을 보여 줘야 한다
죽을 때까지 지독하게 젖는 일을
불편없이 사랑해야 한다
전근대적 추억을 고용하려고
희생적 지출을 한 그녀을 위해
그는 비 맞는 전문가니까
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0년「현대시학」에 시「번개」등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햇빛 속에 호랑이』등 다수
밤비 / 장석남
밤비는,
참으로 멀리서부터 밤비는
왔구나
낙숫물에 깎이는
섬돌귀는
이 비와 같이 다니느니라
뭉툭하게 닳아졌고
나는 새로 선 비석처럼 귀를 세우고
아득한
비의 여정을 듣는다
이 시간
오동잎 뒤에 세워둔
푸른 잠은 깊어지고
(푸르다니!)
푸른 잠이
너울대며 가는 길도
밤비의 발걸음을 닮았다
그렇지, 밤비 후득이는
오동잎이
우리 生이지
소주 생각 간절한 밤비 속
우리 生이야
오동잎 박차며
코너웍하는 밤비 소리
귀의 골짜기에
흙탕물이 가득 찼다
모두 지나가면
차고 단단한 가을물이
무릎에 구름을 앉히고
동냥밥을 먹는,
또는 손 탁탁 털고
쫄쫄 굶는
그게 生이지
그게,
그것이,
우리 生이지
인천 덕적도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1991년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문학과지성사
1995년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문학과지성사
1998 <젖은 눈>솔
2000년 산문집 <물의 정거장>이레
2001년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비
2005년<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문학과지성사
2008년 산문집<물 긷는 소리>해토
1992년 김수영문학상.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비에게 쓰다 / 윤성택
버스는 아가미를 열고 우산 몇을 띄워놓네
다음 정차 역까지 단숨에 가려는 듯
바퀴마다 지느러미같은 물길이 돋네
떠날 수 없는 정류푯말만 발밑 꽁초를
길가로 밀어 넣네 밤은 곳곳의 네온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고, 푸르다가 붉다가
점멸하는 자음만으로 도시를 읽네
건너편 창을 훑고 내려오는 자동차불빛
밀물처럼 모서리에서 부서지네
파도소리가 밤새 저리 뒤척이며
경적을 건져낼 것이네 한 떼의 은빛 치어가
가로등으로 몰려가네 살 오른 빗방울이
창문으로 수없이 입질을 해오지만
내가 던진 찌는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네
이렇게 텅 빈 밤이면 그립다던가
보고 싶다던가 모스부호처럼
문자메시지를 타전하고 싶네
살아가다보면 한번쯤 좌표를 잃는 것인지
이 막막한 표류를 어쩌지 못하네
무엇이든 깊어지기 시작하면
그렇게 일순간 떠오르는 것
흐르는 생각 끝에 맨홀이 역류하네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리트머스>
비와 목탁 / 이동호
무작정 때리다보면
지구라는 이 목탁도 언젠가는 텅텅 소리가 날 테지
빗방울이 땅에 떨어져 '철썩' 마지막으로
목탁 한번 치겠다는 것이
전혀 어불성설은 아니지
빗방울이 연습삼아 사람들 목 위의
목탁을 먼저 쳐보는 것은
지구를 쳐볼 기회가 단 한번 뿐이라서지
비 오는 장날을 걸어다니다가
머리 위, 비닐에 묵직하게 고인 빗물을
고스란히 맞아본 적 있지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서
'앗'하는 목탁소리가 터져 나오더군
빗방울이 때리면 뭐든지 목탁이 되고 마는 것
그게 삶, 아니겠어
소리를 내기 위해 물렁해지는
저 땅을 좀 봐
새싹이 목젖처럼 올라오는 것. 보여?
멍 자국이라는 듯 쑥쑥 키를 키우는 저것
소리의 씨앗인 빗방울 속에서 자라는
저 푸른 목탁소리
대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제6회 ≪시산맥상≫ 수상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조용한 가족>
음악처럼, 비처럼 / 안현미
새춘천교회 가는 길 전생처럼 패랭이꽃 피어 있을 때
흩뿌리는 몇 개의 빗방울 당신을 향한 찬송가 같았지
그때 우리에게 허락된 양식은 가난뿐이었지만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처럼 가난하기에 더 열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찬송가 불렀었지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걸 음악이라고 불렀지
예배당 앞에 나란히 앉아 기도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담뱃불을 붙여 줬던가
그 교회 길 건너편엔 마당에 잡초 무성한 텅 빈 2층 양옥집도 있었던가
그 마당에 우리의 슬픔처럼 무성한 잡초를 모두 뽑고
당신의 눈썹처럼 가지런하게 싸리비질 하고 꼭 한 달만 살아보고 싶었던가
햇빛 좋은 날 햅쌀로 풀을 쑤어 문풍지도 바르고 싶었던가
그렇게 꼭 한 달만 살아보자고 꼬드겨 보고 싶었던가
그럴까봐 당신은 이 생에 나를 술래로 세워놓고 돌아오지 않는 기차를 탔던가
춘천을 떠나는 기차시간을 기다리다 공지천 이디오피아 창가에 앉아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눈썹에서 주워 온 몇 개의 비애를 안주로 맥주를 마실 때
막 사랑을 하기 시작한 연인들의 백조는 물 위에서 뒤뚱뒤뚱,
그 뒤뚱거림조차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는데
아직도 찬송가처럼 몇 개의 빗방울 흩뿌리고 있었지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걸 음악이라고 불렀었지
1972년 강원도 태백 출생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곰곰>(2006년 렌덤하우스)
비의 뜨개질 / 길상호
너는 비를 가지고 뜨개질을 한다,
중간 중간 바람을 날실로 넣어 짠
비의 목도리가, 밤이 지나면
저 거리에 길게 펼쳐질 것이다,
엉킨 구름을 풀어 만들어내는
비의 가닥들은 너무나 차가워서
목도리를 두를 수 있는 사람
그리 흔하지 않다,
거리 귀퉁이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새벽녘 딱딱하게 굳은 몸에
그 목도리를 두르고 떠났다던가,
버려진 개들이 물어뜯어
올이 터진 목도리를 보았다던가,
가끔 소문이 들려오지만
확실한 건 없다,
비의 뜨개질이 시작되는 너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다는 것 말고,
빗줄기가 뜨거운 네 눈물이었다는 것 말고는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재학.
청림문학 동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그 노인이 지은 집> 당선
시집<오동나무안에 잠들다><모르는척>
비 그친 새벽 산에서 / 황지우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꽃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으로 입선, '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문학과지성>에 발표
1995년 학고재 화랑에서 조각전을 여는 등 전방의 예술가로 활동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한국 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비 내리는 날 / 김승희
오늘은 내가 조용히 견디려고 하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
주룩주룩 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좀 봐.
빗물마다 손이 있어.
손마다 귀신이 있어.
유리창이 마구 문지르며 손은 유리를 부여잡으려고 해.
나팔꽃, 칡꽃, 넝쿨 장미,
위로 위로 올라 가려는 세상의 모든 손들이 떠올라.
그런데 유리창은 그 손을 미끄러 뜨리려고 해.
그리고 비가 오고 있어.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빗물의 손들은
하염없이 유리창에 손을 비비며
무언가를 호소해. 그 손들이 모두 송이 송이 혀로 보여.
오늘은 내가 조용히 견디려고 하는데
빗줄기마다 수천수만 송이 귀신의 혀가 피어나고 있어.
빗줄기마다 흐린 혀의 꽃다발이야.
시냇물 같은 혀의 꽃송이들이 유리창에 죽죽 흘러.
오늘은 내가 견디려고 하는데
유리창 속 얼굴 속으로
빗물이 번개를 그으며 급류처럼 흘러가.
번개의 급류에 맞아 내 얼굴이 쪼개진 석류가 되었어.
쪼개진 석류 이빨 사이로
소용돌이치듯 뜨거운 피가 흘러.
그러나
비는 또 오고
유리창엔 수천수만의 꽃송이가 지고
구름 같은 귀면이 흐르고
유리창은 야간열차처럼 검은 거울이 되고
거울 속에는 얼굴이 있고
그녀의 얼굴은 비바람에 부딪쳐 파열하는 석류가 돼.
핏물 흐르는 파열된 석류가 점점 부어오르고 있어.
점 점 점 점 석류는 커져서 드디어
이 방보다도 커진 석류.
지평선보다 더 부어오른 석류의 쪼개진 두개골이 하염없이
비바람을 맞고 있는 거야.
흐린 나무들은 미친 듯이 머리를 풀고 회오리치고
푸른 곰팡이 먹은 얼굴의 오필리아가 몇번이고 다시 또 다시
부풀어오른 늪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런 날.
195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대학원에서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이상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에 있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에도 당선되었다.
시집「태양 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달걀 속의 생」「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등을 냈으며,
산문집「33세의 팡세」「남자들은 모른다」, 소설집「산타페로 가는 사람」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등을 펴냈다.
비의 악기 / 송재학
레인스틱* 속의 비는 왜 고요하지? 비의 중력장에선 물질은 모두 형광이다 비는 익숙하고 놀라운 감정이다 천천히 레인스틱을 기울이면 맨발의 雨脚이 걸어간다 젖은 풀의 정강이가 빗줄기 닮은 것도 보인다 레인스틱으로 스콜은 즐기는 방법도 있다고 하지만 손바닥만큼 고이는 비의 고요가 좋다 모래와 자갈, 자갈과 조개껍질 부딪치는 소리이면서도 까칠까칠하면서 젖어가는 느린 파문이 좋다 느린 빗발은 그림자까지 소소하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토닥토닥 비는 서로 극미립사의 혀를 건네고 있다 레인스틱은 물의 트럼펫이면서 물의 약음기이다 비와 레인스틱은 내 몸 속 98 퍼센트 수분을 재빨리 눈치챈다 우기와 레인스틱은 구름이 숨겨논 먹구름과 천둥의 순서도 잊지 않는다 한 번 젖어버린 레인스틱처럼 나도 젖어버린 기억을 흉곽에 채우는 중이다 내가 빗방울로 생각될 때까지
* 비를 가장 그리워했던 선인장 가지 속을 파내어 모래나 자갈 등을 넣어 뒤집어 세우거나 흔들면서 나는 소리의 악기로 칠레 등지에서 기우제에 사용된다.
1956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 어름시집(88), 진흙 얼굴(2005),
산문집 : 풍경의 비밀(2006),
김달진문학상(94), 소월시문학상 우수상(94),
비, 토끼풀꽃 / 이해리
빗소리 자박자박
야산 기슭으로 진군해 온다 유월의 빗소리엔
하얗게 눈뜨고 죽은 군화소리가 들어있어
붉은꽃 발가락마다 축축한 무덤 하나씩 동여매고
내게로 건너오는 빗소리
빗방울 흐드러진 산야에 수많은 토끼풀꽃 피워낸다
토끼풀꽃 가만 보면 누군가의 눈물 맺힌 뼈 같애
조그만 주먹밥 방울방울 흩어놓고
땅 속에서 솟아오른 어린 병사의 유서 같애
그 겨울 백두산까지 끌려간 소년병 아버지
부상의 아픈 눈썹뼈 자국
늬 아부지 겁이 많아서 바람 속 수선화처럼 떨었단다
말도마라 말도마라 총알은 함박눈으로 쏟아지지 거대한 괴물처럼
어둠은 덮쳐오지 꽝꽝 언 참호를 야전 삽 하나로
소리 안내고 파라는 명령
꽃피는 마을로 돌아가 얼른 죽음을 벗고 싶은 이름들
이 산하의 토끼풀 만큼 쓰러져 갔어.......
뭐라고 웅얼웅얼 못다한 말 하고 있어
아무리 들으려해도 그 마지막 소리
빗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네
우우 세계로 뻗어가는 붉은 물소리 들릴 뿐
토끼풀꽃 딛고 헝클어진 서해해전 소식 들릴 뿐
경상북도 칠곡 출생
대구예술대학 한국음악과 구료
1998년 계간 <시대문학> 신인상
2003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부문 당선
대구시인협회회원
민족문학 작가회의 대구지회회원
시집으로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비가 내린다 / 이경림
수많은 말줄임표들이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더 이상 낮은 곳이 없을 때까지
휘돌며 굽이치며 헤메다 마침내는
........의 바다가 되어
........답게 넘실거려 보려고
입 콱 닫고 몸으로 한 번 소리쳐 보겠다고
수 천리 밖에서 스크럼을 짜고 달려온다
와서는
바위에 온 몸을 찧으면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면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면서
간다.......
이루 셀 수도 없는
저 ........ 들이
세상을 조용히 메우며
1947 년 경북 문경군 가은면 완장리에서 출생
1989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굴욕의 땅에서' 외 9편으로 등단
1992년 첫시집 『토씨찾기』(생각하는 백성) , 1995년 두번째 시집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세계사) , 1997년 세번째 시집
『시절 하나 온다, 잡아 먹자 』(창작과 비평) ,2005년 네번째 시집 『상자들』출간
12월, 비 내리고 / 전동균
산비탈 밭에 채소를 가꾸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허리 굽혀 풀을 솎다가
잔뿌리 끝에 어린 벌레들이 딸려나오면
잠시 일손을 멈추던 그 마음들은.
홍제동 뒷산 약수터 길을 오른다
높다란 나뭇가지 위 까치집들 볼 때마다
내 몸 안에서 저절로 푸른 햇살 돋아나
노래하듯 출렁이던 날들을 지나서
잎 진 나무들의 숲을
물통 덜거덕거리며 걸어간다
약수터로 접어드는 길목,
바위굴 같은 단칸 슬래브 집 처마 아래
다람쥐 일가(一家)가 비를 피해 모여 있다
기억 속의 키 작은 아이 대신
무허가 빈집을 지키고 있다가
내 발짝소리에 놀라
꼬리 말아올리는 맑은 눈빛에
산길은 더욱 굽어져 자취를 감추고
비 오는 날에는 삭은 나뭇잎 몇 장 떠올라
산이 숨겨둔 비밀을 누설하는
약수터, 그곳에 나는
끝내 닿을 수 없으리라
떨어지는 빗방울 속으로 망명하지 못하고
말없이 걸어가는 내 젖은 삶을
누군가 허락해주기 전까지는.
1962년 경주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거룩한 허기>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등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 박제영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한때는 ‘나’이기도 했던 당신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
강원도 춘천 출생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맨홀 속의 사내>,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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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화아!~ 옥선님 대단합니다.... 우산도 없이 빗속으로 뛰어볼까요? ^^
와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좋은 시향에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