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맞는지 모르겠군요. 단 1박 2일의 여행이지만, 거리는 거의 6백 마일, 그러니 약 1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이었고, 아울러 참 여러가지로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거의 15년만에 처음 어머니와 단 둘이 하는 여행이라 뜻깊었고, 어머니께서 행복해 하셔서 저도 참 행복했습니다. 왈라왈라라는 곳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실제로 가본적이 없었던지라, 나름 조금 기대도 했었고, 혹시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가보고 나서 완전히 선입견이란 게 무너졌습니다. 오후 세 시만 넘으면 얼굴이 불콰해져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다운타운 몇 개 스트릿 안에 모여있는 와인 시음장들, 그리고 간단히 마련된 바, 혹은 와이너리나 시음장 바로 바깥에 세워놓은 간이 테이블에 앉아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와인을 기울이는 사람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시애틀과는 또다른 와인 문화였고, 역시 산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방문한 개개 와이너리들 중 마음에 남는 쪽으로 시음 여행기를 써야 할 듯 한데, 우선은 왈라왈라라는 곳에 대해 완전히 인상을 바꿨다는 이야길 하고 싶습니다. 왈라왈라는 양파로 유명하고, 와이너리로도 유명하지만 이곳을 떠올릴 때 고풍스럽고 정비가 잘 된 작은 도시의 이미지는 생각도 안 해본지라, 다운타운 지역에 대해서는 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미 프로서며 콜럼비아 밸리, 레드 마운틴, 왈루크 슬로프, 호스 헤븐 힐, 그리고 다른 워싱턴주들의 와인산지 지역을 찾아가본 적이 있는 저로서는 그 도시를 둘러싼 풍경들에 대해서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 도시의 내부 분위기는 전혀 예상조차 못 하던 거였으니까요.
참, 예뻤습니다. 아내가 일하는 날만 아니었다면 같이 올 수 있었을텐데... 아버지도 원래 함께 하시는 거였는데, 수술 때문에 함께 못 하시고, 그래서 어머니와 둘만 오게 됐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제게 그 '감성'을 물려주신 분이라, 정말로 '함께' 즐거웠습니다. 어머니와 대취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취하게 와인을 마시며 돌아다닌 다운타운 왈라왈라, 참 예뻤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마커스 위트먼 호텔은 클래식하며 중후한 분위기였지만 방의 시설들, 그리고 부대 시설들은 참 현대적이었고, 특히 로비가 마음에 들었는데, 거기서 몇 차례 피아노도 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방에 식탁이 없어서, 그냥 호텔 1층에서 동생이 싸 준 김밥에 함께 한 리즐링이며 안주거리들도 즐거운 추억들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규모의 농업을 보면서 어째서 워싱턴 주의 농업이 엄청난 규모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잉여 식량이 남는지, 그리고 그 잉여들이 어떻게 '원조'라는 이름으로 개도국으로 흘러가 그들의 농업을 망가뜨리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농업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그 때문에 농업 역시 대자본을 소유한 이들에게 더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미국 안에서도 영세농은 계속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편으로, 와인 산업의 약진은 그같은 왜곡된 구조 안에서 영세농들이 살아남는 방법으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하나의 작은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와인의 생산이나 유통에서 자본의 힘이 막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와이너리가 직접 소비자들과 만나는 시음장들이 가득찬 왈라 왈라에서는 마켓으로는 전혀 가지 않고 오로지 생산자와 소비자만이 존재하는 시장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은 비단 와인 뿐 아니라 파머스 마켓이라는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뭔지 모를 안도감이 오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연간 채 1백케이스가 안 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런 와이너리들에게 '시장의 법칙'을 따르라고 하면, 이건 가혹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런 와인들에 힘을 실어주는 소비자들의 문화가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직접 확인하고 저도 그런 데 일조를 했다는 것이 이번 짧은 여행이 제게 준 또 하나의 보람이라면 보람일까요? 하하....
그래도 참 오랫만에, 모자간에 단 둘만 여행한 것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어리광을 많이 피우고 떼를 써서 -_-; 와인도 많이 샀습니다. -_-;; 아, 대신 오는 길에 제 단골집 토마스 스트릿 비스트로에 들러서 저녁을 사 드렸는데, 여기서 우리 가져온 와인 한 병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 메일 커스터머들도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답니다.
예.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차차 개개 와이너리 방문기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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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eattle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권종상
첫댓글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어머님과 단둘이 여행한다는 것이 어찌 그리 쉬운일인가요 정말 효자이십니다. 부럽구요. 지금도 효자이시지만, 앞으로도 더욱 어머님께 효도하시는 아들로서 지내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십시요.
아, 그리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좋았답니다.
농업이 대형화되고 전문화되가는 것이 세상의 요구이지요. 부작용이라 생각되는 현상은 어쩌면 자본주의 경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미래를 내다보고 이에 대처하는 것은 바로 경쟁력이 되는 세상입니다. 좋은 글 그리고 배움과 생각하게 하는 글 고맙습니다.
옛 말에 부모에게 잘 하는 자식중에 거지없다고 했습니다...또 마누라에게 잘 하는 사람중에 부자 없다고도 했고요(사실은 지가 깨달은 겁니다만..)...머지 않아 부자 되실 겁니다.
벌써 부자라고 생각하는데요... 하하. 지금같은 세상에 휴가라도 다녀올 여유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부자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벌써 부자 마음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모자간의 모습이 보기가 참 좋습니다..^^*
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손도 꼭 잡아 주시고...
오랜만에 만나보는 효자 우체부님 반갑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