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준갑 기구한 인생 2026/10/11저승길에 가다.
-출생사망일 : 1949.1.1.-2026.10.11
(실제 집나이 1947년생 호적 2년늦음)
-출생장소 : 강경
-철도근무년월일 : 1967.12.31.-1998.12.31.
(31년 근무 명예퇴직)
고 국준갑은 강경에서 출생후 강경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중도공고 입학 부설 철도양성반에 참여 철도기관조사시험에 합격후, 1967.12.31. 이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로 발령받아 청운의 꿈을 안고 철도에 입문하였으며 31년을 천직으로 알고 근무하였으나 아내가 보증을 잘못 서 명퇴금으로 빛을 갚느라, 1998년12월31일 명예퇴직 하였다.
국준갑은 철도에 취업후 박복선과 결혼하여 아들 국용호와 딸 국윤미 국향미를 낳아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나 가정불화로 명퇴 무렵 부인과 이혼 기구한 인생을 살다가 2026/10/11 간경화증으로 이세상을 떠나갔다.
조동화는 국준갑과 이리기관차에 같이 근무한 인연으로 퇴직선후배모임 철우회에서 매달 만나 친목하였으며, 기관차 퇴직선후배모임 운전전우회에도 참여 2개월 한번씩 만나 친목하였고, 비슷한 연배 선후배모임 운전친목회를 결성 모임을 같이 하였다.
국준갑은 2022/11/10 개최한 철우회운영회에 참석 친목한후 다리관절 염으로 걷기가 힘들어 이후 철도공식모임 활동을 못하였다.
10여명의 친목모임 운전친목회 2023/1/13 공간식당 모임에도 다리가 아프고 걷기가 어려워 나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고 최상열 전형무 조동화 3인은 2023/1/13 모현동 고려아파트1506호로 위로금5만원과 음료를 사서 문병하였다.
국준갑은 혼자사는 외로움으로 집안에는 이곳 저곳에 막걸리병과 소주병이 여기저기 나 딩구러 있어 술을 절제하여 건강에 유의하고 식사를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였는데, 국준갑은 아들 국용호이야기를 하며 1976년생으로 결혼을 않하고 혼자독신으로 생활, 진해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한달에 한번정도 집에 찾아와 집안 청소해주고 아들이 착하다고 하였다.
국준갑은 2023년 이후 3년10개월동안 외부활동을 거의 못하고 주간보호센타와 요양원에서 생활하다가 배에 복수가 차 올라 익산병원에 입원 2일만에 2026/10/11일 이승과 영원히 이별하였다.
조동화는 박병윤운전전우회장과 2026/10/12 오후18:00 익산병원장례식장 빈소에 문상 국화한송이를 바치고 왔노라.
조동화는 박병윤전우회장과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국준갑의 아들 국용호를 불러 고인이 된 국준갑과 인연이야기를 하며 남은 가족들이 화목히 잘 지내라고 당부하였으며, 이혼한 부인 박복선여사가 상복을 입고 문상객을 받고 있으므로, 아들용호한테 어머니 어디계시냐고 물어보니 뒤편 좌석에 앉아 있다기에 오시라고 하여 그동안 고단한 삶을 살아오느라 고생하셨다고 위로하고 지난시절 뒤로 하고 자식들과 남은인생 뜻깊은 삶을 잘 사시라고 이야기 나누고 왔노라.
기구한 인생을 살다간 국준갑의 인생을 더듬어 보았노라.
한번뿐인 인생 자기 몸 아끼고 돌보며 즐겁게 살아가면 좋으리요.
행복합시다.
건강합시다.
<홍안의 나이 18세에 철도에 입문한 국준갑은 인생의 모든 것이 두갈래 철길밖에 없었던 생전의 철도선후배들과 친목을 돈독히 하였노라.
고 국준갑이 되어 이승과 영원히 작별하고 하늘나라에서는 마음껏 오대양6대주 훨훨 날며 행복한 세상을 마음껏 항해하시구려.
죽음앞에서는 아무리 큰권세와 지위 재산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겨우 78세 되어 저승에 갔다니 애석하기 그지 없구려.
세상만사 모두가 지나간 자취 되어 서쪽에 지는 해를 시름없이 바라보며 철도인선후배들과 함께 애통한 마음을 전하는구려.
고 국준갑이여!
미움과 서러움 근심 걱정 다 거두어 이제 이승의 모든 고통 다 잊어버리시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시구려.>
<⬇2022/11/10 철우회운영회 모습사진입니다
국준갑은 2022/11/10 철우회운영회에 참석후 무릅관절염으로 더 이상 철도선후배들과 공식활동은 사실상 끝나고 주간보호센타와 요양원생활을 하다가 2026/10/11 이세상을 떠나갔다.>
<⬇2022/11/10 국준갑은 운영회를 마치고 이리공고 후문 황금코다리에서 오리주물럭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선후배간 담소하고 포츠를 취하였으나, 이후 3년10개월간 정신질환과 독거노인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갔도다. >
인생의 의미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입니다.
길가에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집니다.
- 출처 : 벨루가 -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이 소중한 것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인생? 암에 걸려서 3개월 후에 죽는다는 판정을 받은 친구가 와서 손을 잡고 울고 위로하고,
그 불행을 슬퍼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한 시간밖에 못살 사람이 3개월이나 살 사람을 불행하다고 위로해 주고 갔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 수많은 인생에 대한 명언 중에서도 막시무스가
최고의 명언 5개를 골라보았다.
1. 인생이란 불충분한 전제(前提)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인생이 충분한 전제에서 결론을 내리는 일이라면, 우리가 사는일이 이렇게 서툴고 실수투성이는 아닐 것이다.
인생은 도대체가 전제(前提...먼저 내세우는 것)가 없는 놀이다.
막시무스가 인생에 대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는 영국의 소설가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의 말이다.
2. 인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당신은 살아 나가지 못할 테니까.
막시무스가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해주고 싶은 얘기다.
아무리 심각해도 인생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없다.
넥타이 풀고 살자.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엘버트 허바드(Elbert Hubbard, 1865~1915)가 남긴 멋진 말이다.
3. 당신은 여기 잠깐 들른 것이다.
서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마라.
그리고 가는 길에 꽃향기도 꼭 맡아보아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쓴 천상병의 세계관과 비슷한 인생관을 담고 있는 글이다.
우리는 여기 잠시 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여행자처럼 살자.
살아 있을 때는 지금의 타이거 우즈만큼 유명했던
하겐(Walter Charles Hagen, 1892~1969)이라는 미국의 프로 골퍼가 한 이야기다.
4. 인생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많아도 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별로 없다.
살면서 욕심이 날 때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뭔가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하는 말이다.
인생에는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작가 겸 삽화가였던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 1928~ )의 말이다.
5.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고 그게 전부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이 막시무스의 생활만 돌이켜 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을 기억하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노력해 본다.
단 하루라도 제대로 말이다.
독설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65~1950)의 인생 관찰이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
아일랜드의 천재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명에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훌륭한 번역가들이 "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라고 번역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말하고자 하는 묘비명의 그 글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일까?
무엇이던지 하고자 하면 당장 시작해보라,
바로 실천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죽음에 임박하여 자기 삶을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것이다.
그러지요.
한번뿐인 인생 우물쭈물하면 후회하지요.
먹거 싶은거 먹고, 하고 싶은일하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하고 미루지말고 실천하며 후회하지 말아야지요.
죠지 버나드 쇼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