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공주라는 이름의 공작새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다가,
사업이 쫄딱 망해서, 시골에 내려왔다.
그 때 상태를 전태수 님의 시로 가름한다.
산길 뒹굴던 돌이
멋모르고
산인 체 하려다
강물에 쏠리며
흘러온 세월
덧없는 추억이라도
자취나 남기라는 듯
잔잔한 행복
꿈이라도 꾸라는 듯
푸근히 누리를 덮고 있다.
장에 팔려고 나온 강아지며 병아리도 구경하고, 막걸리 한잔에 흥얼거리면서, 밤늦게 돌아오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였다.
그날따라 장바닥에 이상한 물건이 눈에 띠었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공작 알이라고 한다. 술 안주로 사가고 남은 것이 한 개라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병아리 부화장으로 가져갔다.
한 달 쯤에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공작을 기르게 된 것이다.
공작이 처녀라 공주라고 불렀다.
봄에 알을 낳았다. 애처로워서 어쩌나! 그래서 수놈을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원주 기독병원에서 공작을 기른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지학순 주교가 조사(鳥舍)에서 모이를 주고 계셨다.
용건을 말씀드렸더니.
“나보고 중매를 서라고? ”
중매를 잘 하면 술이 서 되요, 못 하면 뺨이 서대라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가져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공작이 놀라지 않게, 품에 안고 기독병원에 갔다.
공주를 살며시 새장 안에 넣고,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았다.
반응이 즉시 왔다.
수놈이 날개를 한껏 펴고 춤을 추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 공주가 슬그머니 앉은 자세를 취했다. 올라오라는 신호다.
수놈은 서두루지 않았다.
한참 춤을 추다가, 깃을 오므리고, 마침내 공주 등 위로 올라왔다.
언제 나타났는지, 암놈이 공주를 사정없이 쪼아뎄다.
정수리에 피가 낭자해서.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다.
며칠 후에 다시 올 테니, 암놈을 격리시켜두라고 부탁했다.
주교님 생각은 달랐다.
당신 마누라라 해도 그대로 보지는 않을 것이네!
암놈은 질투했다고 하기보다는, 필사적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한 것이야!
미련을 버리고 그냥 돌아가시게!
주교님 생각이 확고하니 더는 부탁할 수 없었다.
공주는 평소에 좋아하던 개구리며 땅콩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식음을 전폐하고 구석에 웅크리고만 있었다.
일주일이 되었다.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수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열흘째 되던 날 공주가 죽어있었다.
주인님 배려로 멋진 낭군을 만났는데, 오매불망(寤寐不忘) 앉으나 서나 그때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보여주지나 말 것을!
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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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9MbfXiFP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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