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인의 십계명
1, 깊이 있게 배운다;
우리는 타인의 말과 타인의 사유와 함께, 오래 오래 살아볼 필요가 있다.
內面化의 오랜 과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앎에 의한 제이의 천성이지, 앎 이전의 제일의 천성이 아니다.
2, 잘 질문한다;
외디프스가 그의 수수께끼를 풀었을 때에도 스핑크스는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오딧세우스가 그녀의 노래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사이렌은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영웅적인 용기와 匕首가 필요하다.
모든 진리는 시간과 장소에 의해서 규정되는 잠정적인 진리에 불과하다.
우리 학자님들, 그대들은 왜 노벨상을 타지 못하고, 한국문학 이론을 정립하지 못하는 즐거움만을 만끽하고 계시는지요? 도대체가 아무런 명명의 힘도 없는 그대들이 한국 사회의 파산 상태의 주범들이 아니시던가요?
3, 神의 권위도 인정하지 말라;
신은 우리 인간들에게 무조건의 예배와 복종을 강요하지만, 나는 그가 발기부전증의 환자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와의 간통으로 예수를 얻었지만, 바로 그때, 치명적인 매독으로 성 기능의 장애를 입었다는 것을 우리 신성모독자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예수 이후, 하나님이 아들을 얻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神正論은 우리 인간들을 개나 돼지처럼 학대하는 관점에 불과하다.
4, 사상의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낙천주의자로서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라고 역설한 바가 있다. 이 말은 나의 범죄 행위가 있고, 그 다음에 세계가 있다라는 뜻이다.
創字에는 칼 도(刀)字가 들어 있다.
나의 사상의 신전, 낙천주의 속에는 우리 인간들의 꿈과 행복이 들어 있고, 언제나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짓고 있다.
5,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펼쳐 보아라;
넓고 깊은 바다에는 모든 강물들이 다 흘러 들어오고 있다.
오늘도 파도와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모든 물고기들은 ‘논쟁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장미 같은 지식, 언제나 충직한 개 같은 지식, 화류계 여자 같은 지식, 기생 오래비 같은 지식, 사이비 학자 같은 지식, 일본병정이나 독일 병정 같은 지식, 유태인이나 중국인 같이 돈만 아는 지식, 단 하나의 진리만을 선호하는 기독교인이나 공산주의자 같은 지식, 공공복리와 애국심만을 떠들어 대는 지식, 언제나 인간이라는 종의 건강을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식 등----.
우리들이 진정으로 소망하고 있는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의 전사는 부분을 전체와 관련시켜 이해하고, 전체를 부분과 관련시켜 볼 줄 아는 깊이 있고 종합적인 시야를 확보한 지식인일 수밖에 없다.
6, 언제나 ‘실패의 여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라;
우리는 실패를 할 때마다 더욱더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7, 역사의 감각이 마비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세목의 진실성 이외에도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 인물의 창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말대로, 리얼리티, 혹은 역사의 감각이 마비되면 우리 인간들의 삶과는 무관한 뜬구름 속의 이야기가 되거나 언제나 부재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 사색인들의 지식은 언제나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하늘 높이 그 줄기를 뻗어가야 하며, 수많은 가지와 무성한 잎들로 넓게 넓게 퍼져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이그드라실 나무처럼----.
8, 언제나 낙천적이어야 한다;
고통도 두렵지가 않고 불행도 두렵지가 않다.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 혹은 의지박약한 자들만이 고통과 불행을 두려워 한다.
모든 시와 신화와 종교는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9, 더욱더 강력한 적을 찾아 나서라;
나는 오늘도 나를 더욱더 호된 채찍질로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호머, 괴테, 셰익스피어, 니체, 쇼펜하우어, 부처, 예수......,
나는 언제나 더욱더 강력한 적들을 발견하고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10, 언제나 성실하게 생활을 하라;
우리 한국인들은 어떤 말을 해도 알아 듣지 못하고, 또 그것을 실천해낼 능력도 없다.
만인 대 일인의 싸움----,
무지몽매한 한국인들과 철학자와의 싸움----,
나는 오직, 고립무원의 단 한 사람의 성실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
----반경환, [산책에 대하여]({행복의 깊이 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