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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가 진상용 원문보기 글쓴이: 국화
설이 지났으니까 이제 정말 호랑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호랑이처럼 차분하게 그러나 곧게 일직선으로 걷고
싶습니다. 얼마 전 시장에 대한 그림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꽃을 파는 여인들 모습을 볼까 합니다.
이제 슬슬 봄도 기다려지고, 새해는 좀 꽃처럼 화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루이 마리 드 쉬르베 (Louis Marie de Schryver / 1862~1942)의 작품 속 여인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파리 오페라 거리의 꽃 파는 사람 The Flower Seller Avenue de L'Opera, Paris / 54.6cm x 71.8cm / 1891
파리 오페라 거리는 몇몇 화가들의 작품 소재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스칼렛님이 쓰신 글 중에
18,19세기 옷차림 중에 줄무늬 옷은 노동자 계급이나 죄인들을 상징한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꽃을 파는
여인도 줄무늬 옷을 입었습니다. 한껏 멋을 낸 두 여인이 꽃을 골랐습니다. 저는 지금도 꽃을 살 때면 괜히
웃음이 나는데 그림 속 두 여인의 표정이 시큰둥합니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은 활짝 웃을 때
이야기이겠지요. 젊은 여인들이 들고 있는 흰 꽃 보다는 중년의 여인이 들고 있는 붉은 색 꽃이 더 좋아 보이는데,
아마 꽃 파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기 때문이겠지요? 창백한 아름다움보다는 건강한 소박함이
더 매력있거든요.
쉬르베는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언론이었는데 선조는 벨기에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들 중에는 화가들이 많았는데 어려서부터 화가들을 접하게 되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쉬르베는 열 두 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꽃 시장 The Flower Market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입니다. 화분에 물을 듬뿍 주고 난 흔적이 길거리에 고스란히 남았고 깨진 화분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을 보니 정신이 없는 듯합니다. 꽃을 파는 것은 크게 보면 생명을 파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손길 한 번 더 가서 그 생명이 더욱 싱싱하게 된다면 그 것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가게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 초록 잎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모습이 꽃처럼 상큼해 보입니다.
그가 미술을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야기는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료를 읽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두 개의 이야기를 묶어 보기로
했는데, 그림 그리는 아들을 응원했지만 화가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정도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아이가 어렸을 때 미술학원을 보냈고 그림을 그릴 때 마다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화가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쉬르베 아버지도 아마 저와 같았겠지요.
브로뉴 숲 거리 Avenue du Bois de Boulogne
1853년부터 조르주 오스망 남작에 의해 파리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예전 60년대 서울의 후미진 구석
같은 파리를 철저하게 재 건축한 것이죠. 새로 건물을 짓고, 길을 뚫고 숲을 조성하는 일은 17년간이나 계속되어
오늘 날 파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장면도 정비가 막 끝난 모습입니다. 길과 숲이 만들어지자
산책 삼아 여인들은 길거리로 나섰고 그대로 이어진 발걸음은 살롱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조금 버거워 보이는
크기의 꽃 바구니를 든 소녀는 여인들의 모습을 살피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 송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간절함도 보입니다. 그렇지만 훗날 꽃을 파는 어린 소녀가 꽃을 사는 여인보다 더 근사한 삶을 살게 될 수 도
있지요. 아가씨들, 이왕 사는 것, 좀 풍성하게 사 주면 어떠신지요?
열 세 살이 되던 해 쉬르베가 그린 정물화 두 점이 파리 살롱전에 걸리게 됩니다. 아버지 친구였던 화가들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지도를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공식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열 세 살 아이의
작품이 살롱전에 출품되었으니 대단한 관심을 받았겠지요. 출품 이후 정물화와 풍속화가인 필립 루소의 학생으로
입학 했는데 그 보다 최소한 열 살은 많은 형들 사이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대가의
학생이 되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고 합니다. 재주는 타고 나는 것이 확실합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 극장 프랑세좌
Apres l'averse ; place du Theatre Francais / 71.8cm x 92cm / 1889
한바탕 소나기가 훑고 지나갔지만 아직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우산을 쓴 사람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꽃을 사는 여인의 옷차림을 보니 가을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꽃을 파는 어린 소녀의 옷차림은 그다지 쌀쌀함을
막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추위를 참기 위해 살짝 치켜 올라간 소녀의 어린 어깨가 안타깝습니다.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 어느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긋고 있었겠지요. 노인의 얼굴에도 삶의 무게가 깊은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꽃을 가운데 두고 있는 여인들은 꽃처럼 어렸다가 꽃처럼 피어나고 있고 그리고 꽃처럼 시들어
간 것 이겠지요.
필리 루소 밑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나마 그 것도 얼마 못 가 끝나버렸습니다. 쉬르베는 다시 화실에서
나와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드니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동메달을 수상한 것은 열 일곱 살
때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쉬르베의 10대를 읽다 보면
거칠 것 없이 달리는 기차가 생각납니다. 열 일곱 살 때 저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파리 오페라 거리의 꽃 파는 사람 Flower Seller, Avenue De L'Opera / 69.2cm x 97.8cm / 1891
처음 그림과 너무 구도나 등장 인물이 똑 같아서 처음에 같은 작품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 나란히
비교를 해 봤더니 장소가 맨 앞 작품의 길 건너였습니다. 또 여인 옆에는 검은 개도 한 마리 등장했습니다.
쉬르베는 어떤 이유 때문에 똑 같은 모델을 길 건너편과 이 쪽에 세워 놓고 두 장을 그렸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림을 보던 아내가 명쾌한 답을 내 놓았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는 꽃 파는 사람과 여인들이 아니라 건물인 게지 뭐.
가끔은 단순하게 볼 때 그림이 잘 보이기도 합니다.
그 후 쉬르베는 매년 꾸준하게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합니다. 주로 정물화였지만 초상화와 간혹 풍속화도 있었죠.
1886년, 스물 네 살이 되던 해 쉬르베는 파리의 일상 생활에 눈길을 돌립니다. 파리의 일상이 그림의 주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인상파의 공로가 큽니다. 파리의 멋진 카페와 대규모 상점 그리고 새로 단장된 거리들은 사람들을
길 거리로 끌어 냈고 서로 교류하는 장면들은 화가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되었던 것이죠.
리볼리 거리에서 On the Rue de Rivoil / 73cm x 92.1cm / 1892
그림이 어둡기 때문일까요? 꽃을 파는 여인의 모습이 움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양산을 든 여인의 손에는 이미
꽃이 한아름인데 아직도 여인은 꽃을 고르고 있습니다. 혹시 꽃을 너무 많이 사기 때문에 놀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여인의 눈길을 따라 보니 개가 있군요. 설마 개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겠지요. 혹시 그렇다면, 쉬르베 선생님의
유머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봐도 여인의 한 주먹이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그 해 살롱전에 출품한 ‘나의 마지막 꽃들 (My Last Flowers)’ 과 ‘봄의 첫 날 (The First Day of Spring)’ 이라는
두 점의 작품이 사람들의 대단한 호응을 끌어 냈습니다. 그의 주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었죠.
표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파리의 거리 풍경 묘사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쉬르베의 작품
속에는 꽃 파는 사람, 말과 마차, 우아한 파리지엥들, 거리의 청소부와 세탁부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겼고
벨 에포크 시대 최고의 화가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제 Elysees / 54cm x 73.7cm / 1895
혹시 작품 제목이 샹델리제가 아닐까 싶어 찾아 봤더니 ‘보트를 손에 든 소년’이라는 또 다른 제목이 있더군요.
마치 사진기를 들고 있다가 순간을 잡았는데 꼬마 아이가 빤히 고개를 들고 렌즈를 쳐다 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인들과 아이가 서 있는 곳에 인위적인 빛이 내리는 느낌이어서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놓고
화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 시대에는 저렇게 꽃을 파는 여인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건조한 날씨에 포석거리는 도로에 물을 뿌리는 모습도 이 그림을 통해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또한 사회 저명인사들로부터 초상화 제작 의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수록 미술 정규 교육의
필요성을 알게 된 쉬르베는 스물 일곱의 늦은 나이로 풍속화와 정물화의 대가인 가브리엘 페리에의 화실에 입학,
본격적인 공부를 합니다. 페리에는 윌리엄 부게로 처럼 줄리앙 아카데미의 교수를 역임했던 화가였습니다.
화실에 입학 한 1891년, ‘꿈의 끝 (The End of Dream)’이라는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 처음으로 3등 메달을 수상
합니다. 너무 앞서 달리던 선수가 뒤 따라 오는 선수들과 함께 가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느낌입니다.
개선문 근처의 꽃 파는 사람 A Flower Seller Near The Arc De Triomphe / 22cm x 16cm / 1897
꽃 한 송이 사 주실래요?
멀리 개선문이 보이는 거리에서 꽃을 파는 여인이 꽃을 내밀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꽃 이름이 10개도 넘지
못하니 바구니에 담긴 것은 그냥 ‘꽃들’입니다. 바구니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 가 있습니다. 꽃을 팔기 위해 오늘
언제부터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꽃이 수북한 것을 보니 개시는 했는지 궁금합니다. 바구니 전체를 사기에는 꽃이
너무 많습니다. 할 수 있다면 반 정도는 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인의 얼굴이 지금보다 더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파는 얼굴이나 사는 얼굴이나 모두 꽃처럼 밝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얼만가요?
살롱전에서 수상을 하고 난 후 1900년까지 파리 시내에 화실을 열고 파리 시내를 화폭에 담는 작업을 계속
합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한 쉬르베는 파리 근교 뇌이(Neuilly)에 집을
짓고 새로운 주제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실크와 공단으로 된 옷을 걸친 우아한 모습을 한 이전 시대의 사람들을
작품 속에 담기 시작한 것이죠. 파리의 거리를 묘사했던 그의 초기 작품들처럼 이런 주제를 그린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젊은 남자의 환상 A Young Man's Fancy / 57.8cm x 42.5cm / 1898
꽃을 파는 가게 앞에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손에 이미 꽃 몇 송이가 들려 있습니다. 아마 방금 여인에게서
산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꽃 보다 더 예쁜 여인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처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처럼 이 남자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매일 꽃을 사러 오는 것 일 수도 있겠지요. 아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환상이 현실이 되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잘 나가던 쉬르베에게 시련이 왔습니다. 1900년대 초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었는데 여기에 매료되고 만
것이죠. 당시로서는 폭발적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모습을 빠른 붓 터치와 아름다운 색을 인상파 기법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대중들은 자동차 대회 모습을 사진으로 감상했고 또 사진에
더 열광했기 때문이죠. 1910년이 되자 쉬르베는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예전처럼 파리 시내를 묘사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돈이 작품의 주제를 바꾼 것이죠.
콩코드의 꽃 파는 아가씨
La Marchande Des Fleurs, Place De La Concorde / 15.6cm x 21.3cm / 1898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콩코드 광장에 꽃 바구니를 든 아가씨가 등장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이 아가씨는 앞의
그림 ‘개선문 근처의 꽃 파는 사람’에 나왔던 아가씨와 같은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쉬르베 선생님이 같은 모델을
파리의 이 곳 저 곳에 세워 놓고 그림을 그리신 것 같습니다. 문득 여인의 얼굴을 보다가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 꽃을 든 여인 하나 울고 있었네 –‘ 어찌 보면 울듯한 얼굴이고 또 다르게 보면 수줍은 얼굴
입니다. 참 묘한 표정입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1919년부터 1925년까지 쉬르베는 라인 지역의 문화탐방 업무를 맡게 됩니다. 라인지방의
풍경을 연구하고 그 것을 화폭에 담습니다. 자주 파리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머물렀지만 때때로 시내 외출도
하곤 했습니다. 8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쉬르베는 비록 산발적이기는 했지만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합니다.
마지막까지 대중들 속에 남고 싶었던 정열 때문이었겠지요.
장미 꽃잎에 둘러 쌓인 미인 Beauty amid Rose Petals / 60.3cm x 80cm / 1901
한 때 장미 농장을 자주 찾아가 여러 가지 장미 이름을 외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장미는 화사하기도 하지만
요기스럽기도 합니다.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도 장미의 그 것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땅에 떨어져 검붉게 변한
장미 꽃 잎을 기억하시는지요? 보이는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쉬르베는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걸까요? 덧없지만 그래도 젊음은 장미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참 아름다움이라는 걸 말하는 걸까요?
어쨌거나 정말 매혹적입니다.
쉬르베는 전 생애를 통해 변화무쌍한 파리 예술계의 생리를 목격했습니다. 유파도 변했고 주제도 급격하게
변했지만 그는 비슷한 주제를 유지한 화가였습니다. 잠깐의 자동차 경주에 혹한 기간을 제외하면 정물화에서
시작해서 파리 시내의 모습 그리고 풍경화로 이어지는 그의 주제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파리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동과 떠들썩한 일상이 펼쳐집니다. 물론 당대 가장 멋쟁이
여인들과 아름다운 건물의 세세한 모습은 즐거운 덤입니다.
첫댓글 그림과 설명은 넘 좋아요
좋은 그림 감사합니다
즐감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