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난 소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킨다 ♡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사내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 타도연기가 없습니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서, 큰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는 데,
정작 그 어머니는 여주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는 분의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 다음으로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집에 하수도가 막혀도 “누구야! 하수도가 막혔다.
얼른 와서 해결 좀 해라.” 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 안의전구를 바꿀 때도 “누구야! 얼른 와서 전구 좀 바꿔라.”
하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였습니다.
A living ass is better than a dead docter
죽은 박사보다 살이있는 멍청이가 낫다.
하수도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서울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 입니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고,
평생에 한두 번 볼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들이 내 손자라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 입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결과는 없다(All cry and no wool)
빵 한 덩이리가 수 많은 새들의 노랫소리보다 낫다.
(A loaf bread is better than song of many birds)
‘한 겨울 추워 져서야 소나무·잣나무가쉬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는 글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말 입니다.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가르 치셨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 그 못난 소나무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 입니다.
같은 소나무지만 토질이 좋고 비바람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 가 버립니다.
또 한 괴이 하면서도 특이한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 가 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또 크게 자란다고 해도 동량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 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산을 지키는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면서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을 보존 합니다.
결국 잘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재목이 될 수 있는 것도 못난 소나무가
산을 정성 스럽게 지켜 준 덕분 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못난 소나무를 없수이 여기는 경향들이 없지 않습니다.
서로가 못난 소나무이면서, 너는 나를 우습게 알고, 나는 너를 우습게 생각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러 했지 않습니까,
서로 힐난하고 서로 깎아 내리고, 잘난 꼴은 못 보고 그리고는
잘난 소나무만 바라보며 그를 우러러 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못난 소나무 입니다.
우리 자식들 대부분도 못난 소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못난 소나무가 우리에게 효도하고 ,
우리의 산소를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지킬 것 입니다.
그래서 도시의 교육정책도 못난 소나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잘난 소나무는 잘난 소나무대로 열심히 키워야 하겠지만,
평생 동안 고향을 지키게 될 못난 소나무들을 ,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소외 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이 말은 자식이 잘 되면 고마운 일 이지만 자식이 평범하게 성장 하더라도
구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 입니다.
오히려 더 정성 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 입니다.
이 아이가 결국은 내 곁에 오래남아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전구를 바꿔주고,
내가 아프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 갈 놈이기 때문 입니다.
못난 소나무도 함께 모이면 울창한 숲이 됩니다.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못난 소나무가 우리 였으면 좋겠습니다.
(모셔온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