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하수미
1961년 경남 마산 출생.
교육학박사. 30여 년 중등 교사, 대학 강사 역임.
『시조시학』 봄호[2019] 신인작품상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협회,
경남시조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
ha6803@hanmail.net
시인의 말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숙제 하나 해결합니다.
남은 숙제 무엇일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이겠지요.
나 홀로 미고랭*
달콤할까 시큼할까 고민 없이 베어 문
한 입 먹고 뱉어낸들 그만큼 잊히고
빚처럼 무거운 생각
만다린이 털어낸다
눈길 가는 곳마다 발리는 온통 초록빛
혼자 듣는 닭울음 기꺼워질 그때쯤
가야지 꽃자리 그곳
한달음에 가야지
*인도네시아 전통요리의 하나인 볶음면
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시간 찾아
울렁임 참아가며 낙타 등에 올랐다
모래가 발목 휘감는
해질녘 사하라
듄으로 쌓인 시간 다시 담아 갈 거란
목적은 상실한 채 밤하늘 올려보며
별에게 목청 높혀도
메아리 없는 사하라
배관공사
온수가 터졌다 어디를 뚫어야 할지
장비를 동원해서 멀쩡한 타일 깨부순다
속내를 살피라는 말
귓전으로 흘렸지
대가는 혹독했어도 감쪽같이 봉합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붙여진 타일
단번에 다 드러나도
알고 싶잖다 그 속내
템페스트 3악장*
징후를 느꼈다 가느단 바람결이
푸른 잎 건드리며 귓가를 스친다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
빗방울 톡 톡 톡
가차 없이 몰아치는 빗줄기와 바람을
버티려는 너조차 저항 없이 품는다
사랑은 막을 수 없지
가을은 막을 수 없지
요동치는 사랑은 너에게 내려앉아
가을을 남기고 느리게 돌아섰다
폭풍이 두고 간 흔적
디미누엔도** 그리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No.17
**점점 여리게 (diminuendo) 음악용어
플로리스트
아깝다고 모든 꽃 다 꽂을 순 없어요
군더더기 버리는 가차없는 손짓에
가시에 찔린 상처마다
환幻으로 피어난 꽃
해설
길의 詩學
-색동저고리에서 페미니즘까지
이형우 문학평론가
하수미의 첫 시조집『나 홀로 미고랭』에는 총 50편이 실려 있다. [1부 13편, 2부 12편, 3부 12편, 4부 13편] 이 중에서 단시조가 18편[36%], 2수 연시조가 29편[58%), 3수 연시조가 2편, 4수 연시조가 1편이다. 4연 시조가 1편이다. 2수 연시조를 즐겨 쓰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다가서면 정격 시조 형식을 갖춘 작품은 단시조가 5편, 2수 연시조가 12편 총 17편[34%]이다. 하수미 시인은 변형 시조를 즐긴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변형 시조의 대부분도 종장 행갈이나, 종장 연구분 정도다. 다른 시인들의 복잡한 변형 구조와 비교하면 간명하다. 시조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현대시조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함이고, 그러면서도 시조 본연의 모습을 지키려는 모순율이다. 시조계가 온통 그러하기에, 별생각 없이 파형破形을 따르면서도, 지나친 원심력은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그의 성품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솔직담백한 삶의 귀결이 시조 형식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수미의 시는 '길 위의 이야기'다. 길은 여정旅程의 여정 餘情이다. 여정 旅程의 여정 餘情은 몸이 녹은 정서다. 그 정서가 언어로 드러나면 몸시詩가 된다. 몸시詩는 관념을 모른다. 체험에서 깨달은 바를 천지인天地人 삼재로 분화시킨다. 그것이 하늘길, 땅길, 사람길로 펼쳐진다. 하늘길은 보편성에 기대고, 땅길은 특수성에 기대고, 사람길은 주체성에 기댄다. 평범한 제도권적 여인에서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는 과정을 진솔하고 겸손한 담론으로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