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세월호 사태로 죽은 사람이 누구인가?’묻는다면 302이라는 숫자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간 단원고 학생들 중 아는 이의 이름을 불러보라 한다면 아무도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춘천에서 열리는 세월호 사망자들의 추모 집회에 매번 참석해서 죽어간 이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그때마다 눈을 감고 그 이들을 떠올리면 102분 동안 방치된 채 가라앉은 배와 302라는 숫자만 떠올려질 뿐 그 누구의 얼굴도, 이름도 떠올릴 수 없었다. 참 기이하다. 그건 마치 상갓집에 조문하러 가서 죽은 이의 사진대신에 302라고 쓰인 숫자 앞에 절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 기이한 일은 정부에서 사망한 분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정부에서는 왜 그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건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상상해보자.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씨의 죽음이, 그저 박 모 씨의 죽음이라고만 알려졌다면 그건 그 죽음에 대한 집단적인 무책임에 다름 아니고 6월 항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 정부는 국민들이, 세월호의 죽음을 302라는 숫자로만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름이 있고, 얼굴이 있어서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딸로서 구체적으로 기억되기는 죽음이길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지난 5주 동안 끊임없이 세월호의 죽음을 느끼며 살았지만 그 죽음은 아무런 구체성이 없는 건조한 숫자로만 다루어졌다. 그건 방송사도 마찬가지였다. 단 2대의 헬기만이 구조 활동을 하던 4월 18일.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기자들이 TV로는 헬기 121대가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거짓보도를 하던 그 방송들도, 죽어간 사람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세월호의 죽음을 다루는 이런 추상적인 태도는, 그 이후에도 일관된다. 대통령이 흘린 사과의 눈물을 보았을 때 난 정말 울고 싶었다.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하고 부딪힌 일이라면 그렇게 사과만하고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302명의 사람(!)이 죽었다. 사과는 이 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사과가 의미가 있으려면 그 사과에 값하는 책임 있는 행동들이 뒤따라야한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102분 동안 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들이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제 발로 걸어 나오는 사람 말고는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세워질 자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한다. 하지만 밝혀지는 진실도 없고 책임자의 처벌도 없이 공허한 대안만 남발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장례를 치르고 슬픔을 나누기에도 모자란 시기에 유가족들이 나서서 대통령을 포함한 성역 없는 조사를 요구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권력자들의 그런 태도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엄마일 필요가 없다. 버스비가 70원일 거라고 헛소리를 할 정도로 버스를 타지 않으니 버스가 폭주해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는 저 멀리 나이지리아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만큼이나 먼 얘기다. 이 나라가 싫으면 그냥 떠나면 되는 저들에겐 이 구체적인 위험 앞에 노출된 우리들의 삶이 추상적인 숫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 땅에서의 삶을 끝까지 구체적으로 하루하루 살아내야 한다. 불안하고 억울하더라도 차마 떠날 능력이 우리에겐, 내겐 없다. 일본 후쿠사고 원전사고가 났을 때 방사능 오염지역을 영구히 떠날 수 있었던 주민은 100명중에 5명 정도였다. 나머지 95명은 사고가 났어도 떠날 수가 없었다. 집도 직업도 삶터도 이웃도 모두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지하철이 버스가 철도가 배가 비행기가 육교가 체육관 지붕이 위험하다고 해도 떠날 수 없는 나는 302명의 죽음만큼이나 그 죽음을 다루는 저들, 정부와 방송의 모습이 끔찍하다. 그러니 이 거대한 지뢰밭 같은 대한민국을 떠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추상화된 죽음의 굿판을 함께 걷어치우자고. (양창모. 춘천 녹색당원. 강원 희망 신문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