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돌아갑시다
20: 13-17
13. 살인하지 말찌니라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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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국회에서 대통령이 탄핵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등 외환위기 이후 가장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가 컸던 한 해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연말 가까이에서 터진 몇 사건은 우리를 참으로 슬프게 하고 암담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은 모두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소년 학생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가 하면, 어느 지역에서는 고교생들이 특정 여중생들을 상습적으로 집단 성폭행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아주 최근에는 심지어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같은 학년과 상급학년의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을 집단 성폭행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믿어지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동안 나라가 뿌리째 흔들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 사회가 위에서 뿐 아니라 밑에서까지 다 무너지고 있음을, 아니 이미 무너져버렸음을 실감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나라,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까? 기본이 튼튼하지 못했거나 기본이란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본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학문을 해도 기본이 잘 되어 있어야 좋은 학자가 되고, 예술활동을 해도 기본을 잘 다진 사람이 대성할 수 있으며, 운동선수도 기본을 착실히 닦은 사람이 큰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안 돼 있는 나라는 아무리 단시일에 경제성장을 이루고 흥청거려도 오래 못 가고 거품처럼 주저앉고 맙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진정한 민주사회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없으면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해도 좋은 신앙인 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본을 닦아주는 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입니다. 유대교신자뿐 아니라 기독교신자에게서도 십계명을 바로 이해하고 준수하는 것은 신앙의 기본을 다지는 일입니다. 십계명은 거기서 기독교의 신앙적 색채를 다 걷어낸다 해도 누구에게나 어느 사회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가르침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건강한 민주사회를 이루는 핵심정신을 가장 잘 요약하여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최근의 사건들은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십계명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른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다섯 가지 계명 전부를 어긴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인간관계의 기본이 다 무너졌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십계명의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끊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목숨뿐 아니라 사람이 목숨과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떤 것도 탈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제6계명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사람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들 가운데는 여성의 순결도 있습니다. 따라서 순결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여성에게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순결을 유린하는 것은 살인행위에 버금가는 범죄행위입니다.
십계명의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출20:14)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성경에서 금지되는 일체의 불법적인 성관계를 정죄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갖는 성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제7계명을 범하는 행위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출20:15)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단지 어떤 물건을 훔치는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유무형의 재산과 권리와 이익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취득하려는 모든 시도가 도둑질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의 실력 이상의 성적을 얻어내고, 그 결과로 자기가 들어갈 수 없는 학교의 입학자격을 획득하려는 것도 명백한 도둑질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부정행위는 성실하고 정직한 다른 학생들이 오랫동안 흘린 땀과 그들이 기울인 노력과 그들이 소모한 체력과 그들이 쏟아 부은 시간과 그들이 아낀 잠을 다 훔치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희생과 투자의 대가로 그들이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와 기쁨과 보람을 탈취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설계했던 미래의 희망과 꿈과 계획을 다 앗아가는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절도행위입니다. 시험부정행위는 그래서 아주 부도덕하고 악질적인 행위이며 교육적으로 철저히 응징되고 추방되어야 하는 범죄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마다 시험부정행위가 기본인 것처럼 만연되어 있고 부정행위 못하는 학생만 바보 취급당하는 세상입니다.
부패와 불의가 일상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정행위를 하다 발각되면 부정행위를 적발해낸 사람에게 오히려 대들고 협박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교육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조차 그런 험한 일 당하기 싫어서 사랑과 관용을 내세우며 시험부정행위를 적당히 눈감아주려 합니다.
그래서 정직함의 교육이 실종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정직하지 않고 거짓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가 되니까 너도 나도 다 일단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높은 점수 얻고 보자는 생각이 체질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점점 더 병들고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한 나라에서는 진리도 정의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관용을 내세우며 시험부정행위를 눈감아주려 하는 자들은 정의감을 상실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일뿐 다른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의 제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출20:16)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단지 법정에서 허위증언을 하는 행위만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거짓말과 속임수와 진실하지 않은 언행을 금하는 계명입니다. 자기가 몰라서 정답을 쓸 수 없는 문제를 마치 알고 쓴 것인 양, 남이 알고 있는 정답을 부정한 방법으로 알아내서 답안을 쓰는 것은 엄연히 제9계명을 범하는 속임수행위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는 부모 또한 함께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정직을 가르치지 않고 부정직함을 징계하지 않는 교사 또한 같이 제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어려서부터 정직하지 않은 것은 엄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거짓말이나 속임수 같은 것은 가볍게 용서하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식이 나가서 한 짓은 무슨 짓이든 꾸짖지 않고 비호하려는 부모들이 문제입니다. 그런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13:24에 보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했습니다. 정직함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망치고 나라도 망하게 만드는 주범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십계명의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는 것입니다.
이 계명의 뜻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것이나 자기의 분수에 넘치는 것을 탐내지 말고 자족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제 실력에 상응하지 않는 점수를 탐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학교에 들어가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 자체가 이미 잘못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행위는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다른 학생이 들어갈 학교의 자리와 입학자격을 부당하게 빼앗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남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정면으로 범하는 짓입니다.
탐욕은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위험성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마음속 탐욕은 언제 어떤 기회에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지 모르는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한 것입니다. 탐심은 그 탐심을 품은 사람 한 사람에게만 심각한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상존하는 위험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남의 소유에 대한 탐심은 언제든지 기회만 주어지면 살인하는 죄, 간음하는 죄, 도둑질하는 죄, 거짓 증언하는 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까지도 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이 고스톱 하다가 싸움이 나서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했는데 탐심 때문에 오히려 부모를 죽이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앞에서 언급한 최근의 사건들은 인간사회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정신과 가치와 질서를 다 무너뜨린 행위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행위들이 청소년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좌절감은 더욱 큰 것입니다. 물론 기성세대들이 다 그렇게 만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을 맡은 부모들과 교사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가사상태의 우리 사회를 회생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너진 기초, 아니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는 이 사회의 기초를 새로 놓는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모두가, 모든 것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민주사회, 더 나아가 복지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정신이 무엇입니까? 남에게서 소중한 것을 존중하고 지켜주려는 정신입니다. 남의 소유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있어서 진실하고 정직하려는 정신입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자족하는 정신입니다. 이 모든 정신을 달리 요약하면 석 삼(三)자 바를 정(正)자 삼정(三正)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정직(正直)과 정의(正義)와 정도(正道)입니다.
정직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정의는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진실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도는 모든 일을 행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진실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세 가지가 실종되었습니다.
이 정직과 정의와 정도에는 관심 없이 벌이는 이념논쟁은 무익하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 정직과 정의와 정도를 외면하고 개혁을 외치는 것은 위선일 뿐입니다. 이 세 가지를 회복하는 것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며 민주사회, 복지국가 만드는 첩경입니다.
교회도, 아니 교회가 먼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삽니다.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 기본을 회복한 교회만이 희망이 있습니다. 기본을 회복한 교회만이 국민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나라 국민의 4분의 1인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기본을 튼튼히 하면 이 사회와 나라의 기본이 잡힐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민주복지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정신들, 즉 남에게서 소중한 것을 존중하고 지켜주려는 정신, 남의 소유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 정신,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있어서 진실하고 정직하려는 정신, 자기 분수를 알고 자족하는 정신은 다 어디서 오는 것들입니까? 바로 십계명이 가르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그 기본을 튼튼히 하면 이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2004년이 저물어가는 이 때에 지나간 우리의 과오를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며 고쳐가기로 다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기본을 회복하고 튼튼히 다짐으로써 절망하는 국민에게 소망이 되며. 우울한 국민에게 기쁨을 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