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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벗과 함께한 바다여행
오 종 락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시원한 바다를 생각하다가 문득 작년 이맘 때 쯤 다녀 온 추억의 바다여행이 그리워졌다. 그 여행은 누구나 쉽게 떠날 수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인생 제2막 새 벗과 함께” 떠난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공직생활을 퇴임한 나는 인생 제2막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노인상담업무를 하다가 새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새 친구들은 다름 아닌 대구 중구에 거주하시는 독거어르신들이며 나와 함께 인생 제2막 봉사단에 참여한 분들은 공무원연금공단 상록봉사단원들이다.
“인생 제2막 새 벗과 함께”는 대구 중구청이 주관하는 2014년 자원봉사 시범 프로그램으로 독거 어르신과 봉사단이 일대일로 짝꿍을 맺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으로 독거어르신 10분과 상록봉사단 10명으로 구성된 홀몸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4월부터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짝꿍어르신들과 “요리학원에서 함께 요리 해보기, 함께 등산하기, 함께 영화보기” 등 몇 차례 행사를 같이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기차를 타고 바다로 멀리 떠나는 행사는 처음이라 기대도 크고 가슴이 설레는 행사였다.
추억의 바다여행 장소로 여러 곳을 물색하던 중, 최종 선정된 곳은 포항 죽도시장과 영일대 해수욕장이다. 포항은 대구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바다구경을 다녀오기에 거리와 소요시간, 교통편 등 여러모로 안성맞춤이라 모두가 좋다고 하셨다.
지난해 7월 중순경 어느 날, 우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동대구역 대합실에 모였다. 어르신들이나 봉사단원들이나 어릴 적에 소풍가던 기분이라며 모두가 좋아 하셨다. 기차를 타고 바닷가로 가는 소풍이라 느낌이 평소 나들이와는 사뭇 달라 모두가 들뜬 기분이다. 우리 봉사단이 준비한 약간의 간식과 삶은 계란을 나누어 각자의 배낭에 담고 기념촬영을 한 후 포항행 무궁화호 기차에 올랐다.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함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에 옛날 추억을 되살리기 좋은 음식으로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준비하였다. 삶은 계란은 기차여행과 단짝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각자 짝꿍어르신과 한 좌석에 앉아 옛 시절 기차여행에 얽힌 이야기와 바다구경을 했던 추억담을 끄집어내어 도란도란 얘기들을 나누었다. 우리 짝꿍어르신도 옛날 서울행 완행열차를 타고 친지댁에 가던 얘기를 나에게 하시다가 “그 시절은 기차에서 간식으로 삶은 계란을 꼭 사서 먹곤했지요.” 그럼 오늘도 “그 시절 기분을 살려 삶은 계란을 먹어 봐야지”하시며 계란을 까신다. 옆좌석의 김씨 어르신은 “기차여행에는 삶은 계란이 딱 제격이야, 이것 참! 기차에서 얼마만에 먹어 보는 삶은 계란이야” 하셨다. 앞좌석에 정씨 어르신은 “모처럼 열차에서 삶은 계란을 먹어 보니 참 맛있네” 하시며 좋아 하신다. 각 좌석마다 짝꿍끼리 도란도란 추억담을 얘기하며 삶은 계란을 먹으니 그 옛날 학창시절 소풍을 떠나던 젊은 시절 못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작은 삶은 계란 하나는 단순한 음식이라기 보다 과거와 오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 참으로 소중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세월을 통하여 많은 추억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소금을 찍은 삶은 계란의 간간한 맛에서 수학여행을 가며 삶은 계란을 까서 같이 먹었던 옛친구의 얼굴과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기차를 타고 추억의 삶은 계란을 먹으면서 문득 어떤 시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인은 “인생의 배낭속에 너무 많은 짐을 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삶은 계란 네댓 개는 담아 두는 것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길 가다 시장기가 돌때면 소금에 찍어 먹으면 허기도 면하고 외로운 길동무를 만나면 하나 나누어 주기도 쉽고 참 좋은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옆좌석에 앉아 계시는 박씨 어르신은 계란을 아껴 놓았다가 나중에 잡수실려고 꺼내 구경만 하시고 도로 집어 넣으신다. 잡수시라고 권유해도 손을 내젖으며 나중에...하신다. 노인정의 친구분에게 드릴려고 그러시는가 싶어 더 이상 권하지는 못하였다.
기차여행은 여유가 있고 추억과 낭만이 살아있어 참 좋은 것 같다. 레일 위로 굴러가는 기차 바퀴소리도 정겨우며 추억을 전해 주는 소리처럼 들려 온다. 특히 동해바다가 기다리는 포항으로 가는 기차라서 더 좋은 것 같다. 어르신들의 표정을 보니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느덧 기차는 포항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택시에 나누어 타고 죽도시장으로 출발했다. 싱싱한 해산물과 활기가 넘치는 시장을 둘러 본 후 지인의 소개로 어느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싱싱한 활어회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담소를 나눈 후 즐거운 마음으로 바다구경을 하기 위해 영일대전망대로 출발했다. 이윽고 동해바다가 눈앞에 들어온다. 어릴 적, 꿈과 추억을 품고 있는 저 바다! 영일대전망대 앞에서 모두 내려 동해바다를 바라봤다.
아아... 언제 보아도 가슴이 탁 트이는 동해바다!
우리 일행은 모두 전망대에 올라 의자에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옛날 추억의 아이스케키(옛날 빙과) 대용품으로 바나나맛 쭈쭈바가 손에 쥐어 졌다. 연신 입으로 가져가며 동심의 세계에 흠뻑 빠져 드는 모습이다. 동해의 파도와 바람은 우리들의 볼에다 쉼 없이 부채질을 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 짝꿍어르신 “아아 속이 다 시원하네! 참 좋다”하신다. 갯내음이 약간 섞인 바닷바람에다 빙과를 잡수시니 기분이 참 좋으신가 보다. 어르신들이 좋아 하시는 것을 보니 나의 기분도 덩달아 즐겁다.
옆에 계신 박씨 어르신은, “우리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바다구경 한번 오는게 참 어려워요.”하셨다. 홀로 살아가고 계시는 어르신이라 나들이가 쉽지 않으신가 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몹시 아리다. 독거 어르신의 노년의 소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어르신들의 소풍은 단순히 즐기는 소풍놀이만이 아니라 세월의 초침시계 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시간에 떠나는 만년(晩年)의 소풍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소풍놀이가 새삼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소풍놀이로 즐거운 노년의 삶을 만끽하시다가 지구라는 별자리의 소풍놀이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시도록 응원하고 쉽다. 인간은 누구나 지구의 소풍놀이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해의 파도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밀려온다. 우리 어르신들의 방문을 반기는 듯하며 말이다. 어르신 회장님 왈, 여러분 “동해바다에 한번 오시기 힘드니까, 오늘 바다 구경 실컷하고 갑시다” 라고 말씀하셨다.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붉게 타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한번 보고 싶었다. 바다를 가르는 어선들의 힘찬 뱃고동 소리, 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힘찬 파도의 몸짓이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나의 귓전에는 애국가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저 멀리 수평선 넘어 우리의 국토 동쪽의 시작! 독도와 울릉도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린다. 나와 어르신들은 전망대에서 포항바다와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여름바다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내가 한 어르신께 “동해바다를 보시니까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라고 묻자, 동해 바다를 보노라니 “힘찬 일출의 모습과 애국가가 떠오르네”라고 하셨다. 동해는 “애국심의 바다인가”보다. 어르신과 나는 동해바다를 보다가 느낀 점이 애국심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간은 파도소리와 바닷바람을 타고 금세 훌쩍 지나갔다.
우리는 영일대 전망대 계단을 내려오며 ‘인증샷’... 한 컷, ‘어르신들! 김치’한 후에 아쉬운 포항의 여름 바다 풍경을 뒤로하고 포항역을 향해 출발했다. 대구에 돌아오는 기차에 오르고 나니 어르신들은 무더위 속에 여행이라 피곤한 탓인지 지긋히 눈을 감으신다. 어르신들과 오늘 하루 여행을 같이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다.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머지않은 장래에 나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약간은 울적해졌다. “인생 제2막 새 벗과 함께“라는 슬로건 아래 추억의 바다여행을 함께한 어르신들이 이번 여행으로 생활에 활력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작년 여름, 포항바다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짓던 짝꿍 어르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여름날 오후다. 그 동안 별고 없으신지! 짝꿍어르신에게 안부전화라도 한번 드려야지... 2015.08.10[12]
첫댓글 정말 뜻있는 봉사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교수님!
그땐 정말 앞장서서 봉사단 행사를 추진해 주신다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동행했던 한 사람으로 이렇게 오교수님의 수필 작품으로 읽으니 그때의 감흥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듯 합니다.
함께하셨던 봉사단원 그리고 참여하셨던 어르신들이 모두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더욱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