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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29일 밤 10시쯤. 김정금 씨(가명·여·27)는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한 대학교 뒷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당시 신혼이던 김 씨는 회사 일을 마치고 인근 시장에서 장을 본 후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한참 전부터 김 씨의 뒤를 따라오는 수상한 남자가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은 채 어슬렁거리며 뒤따라오는 남자가 김 씨는 왠지 불안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김 씨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볼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가는 방향이 같을 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김 씨는 두려워졌다. 남자의 미행은 벌써 10분 넘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서자 김 씨는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김 씨는 급기야 뒤를 흘낏흘낏 돌아보며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김 연구관의 사건파일 중 ‘노상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으로 분류돼 있는 사건으로 ‘거리의 살인마’에 관한 얘기다.
김 씨가 달리자 남자도 김 씨를 따라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는 김 씨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낚아챈 후 김 씨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남자는 흉기로 김 씨를 위협한 뒤 성폭행을 시도했다. 김 씨는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몇 시간 후 김 씨는 어두운 골목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된다. 예리한 흉기에 찔린 처참한 모습이었다.
달콤한 신혼의 꿈에 젖어있던 젊은 여성의 죽음은 가족들은 물론 수사팀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줬다. 수사팀은 김 씨가 차고 있던 시계와 육아일기, 면도기 등이 사라진 것을 근거로 전형적인 강도살인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목격자도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 수사는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그런데 김 씨가 살해된 지 열흘 후 이 지역에서 또 한 건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0월 9일 오후 5시경. 30대 중반의 한 사내가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찾듯 지나가는 여성들을 훑어보고 있는 이 남자는 바로 열흘 전 김 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달아난 범인이었다.
남자는 벌써 수 시간째 공원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됐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공원 근처에 있는 한 대학교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얼마 후 남자는 대학교 정문을 나오는 한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친구들과 웃으며 나오는 대학 3년생 최민정 양(가명·20)이었다. 남자는 최 양에게 몹쓸 마음을 먹게 된다. 하지만 아직 날이 밝은 데다가 최 양은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남자는 그때부터 최 양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최 양은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친구들과 회식을 하기 위해 인근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남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최 양 일행을 뒤따랐다. 남자는 최 양 일행이 학교 앞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을 지켜봤다. 하지만 최 양은 물론 그 누구도 자신들을 미행하면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최 양 일행은 인근 호프집으로 향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최 양 일행이 술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술집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시켜 먹으면서 최 양이 나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렸다. 최 양 일행이 술자리를 마치고 호프집을 나온 시각은 밤 9시 20분경. 최 양 일행을 발견한 남자는 서둘러 포장마차를 나서 일행을 다시 뒤좇았다. 그리고 잠시 후 최 양이 친구들과 헤어져서 버스를 타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재빨리 그녀가 탄 버스에 올라탔다.”
약 20분 후 남자는 광장동의 한 정류장에 내리는 최 양을 따라 내렸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으슥한 골목길에 들어서는 최 양의 뒤를 조심스레 밟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자신의 뒤를 따르는 발자국 소리에 최 양은 불안해졌다. 아까부터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뒤를 돌아봤을 때 최 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음흉한 낯선 사내의 눈빛이었다. 소름이 끼친 최 양이 도망가려는 순간 이미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이 목에 겨눠졌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흉기로 최 양을 제압한 남자는 천호대로 변 언덕으로 최 양을 끌고 간 뒤 성폭행을 하려했다. 하지만 최 양이 큰 소리로 울면서 반항하자 당황한 남자는 들고 있던 흉기로 최 양을 마구 찌른 뒤 달아났다. 가슴 등을 찔린 최 양은 쓰러졌고 이날 밤 11시경 산책을 나온 주민에 의해 발견돼 급히 인근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워낙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약 한 시간 후 사망하고 말았다. 최 양은 치료 중 가까스로 “범인은 한 명인데 처음 보는 30대 남자”라는 말을 남겼다.
경찰 조사결과 범인은 최 양을 흉기로 찌른 뒤 금목걸이와 반지, 손목시계 등 15만 원 상당의 금품과 최 양이 들고 있던 테니스 라켓과 책가방까지 몽땅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착실하게 학교 생활을 해왔던 최 양은 이날 오후 7시 20분경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좀 늦을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는데 최 양이 발견된 곳은 집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0m가량 떨어진 곳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런데 최 양이 살해된 지 약 3시간 후인 새벽 2시 20분경. 강동구 암사동의 한 골목길에 바로 그 남자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성폭행할 대상을 찾아 동네 주택가를 돌아다니던 남자는 인근 마트에 갔다가 귀가 중이던 여중생 박은경 양(가명·13)을 발견했다. 그러나 박 양은 눈치가 빨랐다. 박 양은 금방 수상한 기운을 느끼고 황급히 집 쪽으로 도망을 쳤다. 그런데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박 양을 끝까지 따라와서 들고 있던 흉기로 박 양의 목 부위를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 양은 새벽 2시 55분경 집에서 불과 20m 떨어진 골목길에서 피투성이인 채로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발견됐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다.
하룻밤에 두 명을 살해한 ‘미치광이’의 범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약 한 시간 후인 새벽 3시 40분경 남자는 강동구 천호동의 한 노상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성폭행할 상대를 찾아 헤매던 남자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김명자 씨(가명·여·30)을 발견했다. 남자는 홀로 노상을 걸어가는 김 씨를 뒤따라가기 시작했고 수상한 남자의 미행을 눈치 챈 김 씨는 두려움을 느끼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무려 100여m를 뛰어 남의 집 대문 옆에 숨었다.
하지만 남자의 추격은 끈질겼다. 가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남자가 김 씨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 씨는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를 안심시키려는 듯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 여자를 아느냐” “광장동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느냐”는 등 태연히 말을 걸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사진은 바로 앞서 살해당한 여대생 최 양의 것이었다.
하지만 야심한 새벽에 도망치는 자신을 끝까지 쫓아와서 길을 묻는 것은 분명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김 씨는 생각했다. 어떤 무서운 목적이 따로 있음이 틀림없었다. 빨리 남자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김 씨는 길을 알려주는 척하면서 도망갈 기회를 노렸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이내 돌변, 김 씨의 목에 칼을 겨누며 달려들었고 김 씨는 남자가 휘두르는 흉기에 중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하루 만에 세 건의 강력사건을 연달아 접수한 동부경찰서는 초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건은 금방 해결됐다. 문제의 남자는 이날 저녁 7시 30분경 강동구 암사동의 한 술집에서 체포됐다. 범인의 이름은 전필수(가명·35). 성폭력 등 여러 차례의 전과가 있었던 그는 출소한 지 불과 한 달 남짓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목격자 하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수사팀이 하루 만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전필수는 10월 9일 여대생 최 양을 살해한 직후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한 술집에 가서 태연히 술을 마셨다. 살인을 한 직후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수사팀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전필수의 대담한 행동이었다. 술값은 3만 8000원이 나왔는데 전 씨는 술집 주인에게 “내일 술값을 갖다 주겠다”고 하면서 최 양으로부터 갈취한 가방 등을 맡기고 다음날 새벽 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전필수를 검거하는 데는 술집 주인의 눈썰미와 직감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술집 주인이 보기엔 전 씨의 행동이 뭔가 이상했다. 그때 마침 뉴스에서 최 양 살해사건이 보도됐다. 사건 발생 지역이 같은 강동구인 데다가 범인의 인상착의 등이 유사하다고 생각한 술집 주인은 혹시나하는 생각에 전필수가 맡기고 간 가방을 뒤져봤다. 가방 속엔 책 외엔 온통 여학생 물품뿐이었다. 특히 영어사전 뒤에 쓰인 ‘최민정’을 본 주인은 피살된 여대생일지도 모른다고 판단, 경찰에 신고했다.
곧바로 형사들이 현장에 출동했고 전 씨가 맡기고 간 가방이 살해된 최 양의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수사팀은 손님으로 꾸며 술집 안팎에서 잠복했고 다음날 저녁 태평스럽게 가방을 찾으러 온 전 씨를 격투 끝에 검거했다.
수사팀은 전 씨의 주거지 베란다에 있는 헌 장롱 속에서 숨겨둔 흉기와 범행 당시 입었던 옷가지 등을 찾아내 범행증거물로 압수했다. 조사결과 전 씨는 범행 후 자신의 집에서 피묻은 곳을 직접 세탁한 뒤 다른 동네에 살고있는 동생 집에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전 씨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강원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전필수는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렵게 생활했다. 특정한 직업이 없었던 그는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해왔는데 79년경 춘천의 한 유원지에서 유람선을 타다가 유람선이 충돌하는 바람에 머리를 다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후 경미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 전필수는 병원치료 대신 기도원에 들어가 몇 년간 생활했다. 그러나 기도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기도원에서 나오게 된 전필수는 그후 수개월 동안 설악산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은둔생활을 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특히 범행 당시는 전필수가 사기혐의로 복역하다가 벌금을 내고 석방된 지 불과 한 달 남짓된 시점이었다.”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 씨는 사형을 선고받고 92년 겨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