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본다
앨범을 열어 페이지를 넘겼다. 흑백으로 된 사진들을 지나, 구린 곰팡이 냄새가 나는 노이즈 가득한 컬러 사진들을 들여다 본다. 누군가와 흡사한 얼굴 두개가 서로를 마주 본 체 어쩌면 나에게는 어색한 미소로 교감하고 있다. 낯익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그 두 얼굴이 페이지를 지나며 점점 내가 아는 그들로, 지금 당장 눈을 들면 맞이 할 수 있는 그들로 바뀌어 간다. 그러다 덜컥. 초면의 괴물이 나온다. 살색 덩어리가 두여 개로 뭉쳐져 윗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불쾌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 조금 벌린 입에는 괴상한 분홍색 혓바닥을 말아 올린 체 침을 여기까지 뛰기고 있는 듯하다. ‘넌 누구냐.’ 2008-1-11 그 글자가, 그 옆에 써져 있는 소름 돋는 이름 석자가 살색 덩어리를 나로 만들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촉감, 익숙한 몸의 간지러움과 익숙한 풍경.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왜 인지 이질감이 들지 않는 저 침대 위 가볍게 몸을 눕혀 두운 이질적인 나. 이 한 폭의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이형은 ‘나라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딴 황당한 감정은 평생을 지켜보며 경험했기에 별다른 감상을 주지 못하였다. 애매하게, 그러면서도 확실히 혐오스럽게 간지러운, 그 역겨운 얼굴 속 이물질을 향한 간지러움처럼. 참을 수 없는 괴상망측한 나라는 것이 그럼 그렇다. 나라는 이물은, 당연히, 완벽한 이 익숙함들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항상 도태되어 낙오 되어 있는 인생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의 완벽한 호흡을, 오로지 나만의 기이한 태생과 발걸음을 감상한다. 그러다 보면 되려 나를 빼돌리고 지들끼리 완벽한, 모든 것들이 이상해 보일 따름이다. ‘이 세상은 이상하다.’ 이런 정신나간 이기적이고, 고지식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완벽한 것들에 대한 자격지심은 잘난 인간들이 아닌 그저 안전하게 놓인 직사각형, 푹신한 침대를 향한 것이다. 그것과 나는 물과 기름처럼, 그런 관계처럼 상충되어 서로를 부정하고 있다. 아무리 외적인 것이 이상하다 주장해 보아도, 사실 괴이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초대 받지 않는 손님이다. 따뜻함과 차가움, 그 어느 곳에도 거하지 못한 체. 그저 서로 순환하는 물줄기, 그것들이 쏟아지듯 모이는 웅덩이에 둥둥 떠다니며 무력감과 이상함을 느낄 뿐인 기름에 불과한 나인 것이다. 나만 어울리지 못한다. 반듯한 침대, 그 위에 자연스레 덮여진 이불, 빵빵하게 부풀려진 베개. 너무 당연하게 차곡차곡 쌓인 물체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물에 나라는 기름을 투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그 죄책감과 나와 침대가 맞닿을 때에 느껴지는 괴상함이 이상야릇한 만족을 불러 일으킨다. 확정적이라 생각 되는 존재를 이런 불확실한 비존재가 비틀기에 느껴지는 그 만족감. 그 배덕감이 나를 긍정한다. ‘그래, 세상이 이상한 거야.’ 불확실한 나라는 비존재를 버러지, 낙오자, 존재와 진실에 대해 결여 되어 있으며 거짓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하리 만치 발달 되어 있는 실패와 거짓의 전문가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자기보호와 자기위로에 찌들어 있는 낭패인은 되려 불확실하고, 결여로 가득 찬 자신을 영원토록 긍정해 세상의 평가자, 인식자로 만든다.
나를 구성함에 있어 결여되어 있는 것을. 그리하여 곧 나를 불확실한 비존재로 만드는 것을. 난 그것을 나의 구멍이라 셈 쳤어야 했다. 그것이 진실이니까. 아, 턱살이 주름 잡힌 놈의 당황한 기색이, 그 역겨운 땀샘으로 봇물 떠지듯 나오는 액체로 여실이 들어난다. 자신의 추함이 들어날까, 온 천하에 선포될까 두려워 벌벌 떠는 겁쟁이의 심정이 저 맑고도 혐오스러운 안광에 보인다. 그 구멍은 되려 개인의 망상으로 채워진다, 지성의 인지, 개인의 인지라는 좋은 가면을 든 체.
자신의 불확실함과 세상의 확실성의 괴리를 여실히 들어낸 체.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철저한 절망과 자책 뿐이었어야 만한다. 그 괴리를 만약 나의 인식(망상)의 문제라고 본다면, 나는 도망자가 되고 그대로 결론의 길에서 그저 공상의 찌꺼기의 똥통으로 달려가게 된다. ‘오, 나는 불확실하지 않아, 세상과 나의 괴리는 나의 부족함이 아니야, 되려 세상이 부족한거야! 세상이 이상한거야! 분명히 그런 거야. 그러니 나는 진실된 나를 찾아야 해. 지금은 부족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진실을 찾아야 해.’ 이런 공상의 찌꺼기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 흥미는 인간의 차원에서 자기 변호에 유리한 생각이라는 점에서 나오는 것이지, 범우주적 차원에서 흥미롭고 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건 그저 도망자의 망상일 뿐이다.
거울을 들여 보다, 깜짝 놀란 것이다. 저 강아지는 멍청하게도 거울에 비친 것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 체 짖어대고 있다. 그 미련을 알지도 못한 체 일생일대의 적을 앞에 두고 목을 긁어 댄다. 불쌍하게도 허상과 다투고 있다.
나는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 비친 것은 구멍 뚫린 살색 덩어리였다. 코 위로 하여 귀에 걸린 이상한 물체가 불쌍해 보였다. 기름통에 빠진 물방울 같았다. 그만 놓아 주었다. 저것은 너무나 반듯하다. 거울에 비친 구멍은 분명 이질적이었다. 방금 놓아 주운 것보다는 훨씬. 다만 불쌍하지는 않았다. 혐오스럽고, 역겨우며, 그 냄새가 지독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기피하고 싶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 끝없이 어둠속에 떨어지는 구멍에 개처럼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렇게 속으로 외치었다. 저 혐오가, 저 역겨움이, 저 냄새가 내 것이 아니기를. 세상의 것이기를. 그저 나를 제외한 어떤 것의 것이기를. 나 자신이 용맹하게 거짓과 진실, 그 숭고한 것에 대하여 겨루고 있기를.
그럼에도 부조리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다. 혹은 몰상식이다. 언젠가, 한 번 보고 말, 심지어 기억조차 하지 못할 한 간호인의 손에 들려 인생의 첫번째 때를 맞이하며 어떠한 인식도, 의지도 없이 이름과 유전자라는 영원한 도장이 찍혀 나오는 이 긴 여정에 시작지점부터 잘못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이기적 혹은 몰상식이다. 그 부조리한 시작지점부터 난 구멍이 뚫려 있다. 바다에 홀로 떨어진 기름방울. 평생을 유영을 하다, 아니 이런 거창한 표현보다는 그저 휩쓸리며 집어 삼켜질 뻔하다가, 한 순간 먹혀지는 평생. 이것에 부조리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역시나 이기적 혹은 몰상식이다.
나라는 단백질 덩어리는 왜 살색인가. 내지는 노란색인가. 어느 지점에서 나에게 자유가 쥐어졌는가. 역겨운, 불확신한 구멍을 메우는 부분에 한해서? 망상밖에는 할 일이 없던가. 이런 상황자체가 부조리라는 생각은 떨쳐 낼 수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친다. 더러운 이물질이 올라온 얼굴을 씻어내고 요상한 눈동자를 바라본다. 하루아침에 까칠 해진 턱을 다듬고, 마른 언덕 봉우리처럼 뜬금없이 튀어나온 광대 위 솟아난 두 가닥의 나무를 벌목한다. 떡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탈모에 대하여 귀여운 고민을 하고서는 곧 바로 끔찍한 변을 본다. 이 토 나오는 하루의 시작에, 앞으로 평생 동안 시달릴 노이로제에 나의 선택과 의지는 어디에 자리를 텄는가? 그저 전부 내가 한 일이라고 인식하면 그만일까. 난 그런 인식 따위 하지 못하겠는데. 내가 했다는 인식, 태어났을 때부터 세상에 의해 정해졌다는 인식. 그 인식을 할 수 있음에 나의 자리는 어디 있는가? 조종석인가? 닭장인가?
더 이상 나는 공상의 똥통에 빠지는 길로 달려가지 않는다. 구멍을 망상으로 메우지 않는다. 나는 거울 앞에 서 두가지 이유로 소리친다.
어째서 구멍이 존재하는지. 이런 불확실한, 아니 애초에 텅 비어 있는 것. 이 구멍을 가진 나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관련되어 인과를 따져 묻거나, 융합을 하거나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요인이 왜 나에게만 주어졌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 삶에 대한 처음부터 끝까지의 부조리에 대하여.
이 부조리함에 있어서 분명 나는 거울 속 나를 마주한 체 소리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