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손 원
모든 거래에는 영수증이 따른다. 마트에서 음료수 한 병을 사도 영수증을 준다. 일종의 증표다. 영수증은 거래의 증표가 되어 혹시 일어 날 수도 있는 분쟁을 대비하는 소중한 수단이기도하다. 이렇게 중요한 영수증이지만 마트에서 받은 영수증은 출입문을 나서기도 전에 버리기 일쑤다. 때로는 무심코 호주머니에 집어넣기도 한다. 호주머니에 든 종이 조각을 꺼내보니 마트영수증이다. 유심히 살펴보니 완벽하게 작성 된 영수증이다. 삼만원의 금액에 대한 거래내역이 있고 거래시간이 분초까지 나와 있다. 일정한 서식과 항목이 기계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거래와 동시에 순식간에 작성된 완벽한 영수증이지만 마트영수증을 받아 보관하는 이는 거의없다. 발행, 확인, 폐기까지 몇 분만에 끝나 버린다. 비교적 소액이기에 확인 후 그자리서 폐기해 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현장 거래일 경우 영수증의 효용성은 덜 할 수도 있다. 물건을 수취하고 바로 돈을 지불하기에 별도로 영수증을 건낼 필요성이 적다. 금전 거래일 경우, 영수증을 주고 받는 것은 필수적이다. 돈을 빌려주면 반드시 차용증을 챙긴다. 차용증은 부모형제간이라도 주고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돈을 빌려주고 상환문제가 발생했을 시 차용증이나 영수증이 없다면 난감해 질 것이다. 분쟁시에 자신의 입장을 증명할 무엇이 없다면 당할 수 밖에 없다. 영수증이 있다면 분쟁의 여지가 없고 불필요한 논쟁도 줄어든다.
아파트 청약을 하고 2년에 걸쳐 대금을 분납했던적이 있다. 계약서대로 약속된 기일안에 대금을 납부해야 하기에 대금을 마련하여 시행사 사무실을 찾아 대금을 주고 영수증을 챙겼다. 영수증을 받는 순간 대금마련에 따른 부담이 가시고 내 집이 완성되어 간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렇게 모은 영수증이 10회 쯤되니 내집으로 등기가 되었다. 내가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모아 둔 영수증이다. 부동산 거래 시 매수자는 대금을 완납하면 거래증서를 받아 자신의 소유로 등기를 한다. 이처럼 영수증 주고받기는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일상의 과제다.
아내와 같이 장보러 가끔간다. 마트 여러곳을 들릴때도 있다. 한 곳에서 식용유를 사고, 다른 곳에서 과일을 사기도 한다. 아내는 마트를 나올 때 받은 영수증을 바로 폐기 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고 상품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다른 마트를 전전히기도 했다. 물론 다른 마트에서는 전용 바구니에 담아 계산을 하기에 섞기거나 오해 받을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장보면서 받은 영수증 모두를 집으로 가져와서 버리는 것이 옳다고 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영수증 챙기기를 소홀히 했던 아내가 요즘은 영수증을 잘 챙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나 유료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영수증을 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주는 경우도 있다. 요금 정산 문제로 시비가 붙는 경우가 거의 없고 영수증을 받은 고객의 폐기 부담을 줄여주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또 그 영수증이 차창 밖으로 버려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기에 영수증 교부를 안 해 주는 것 같다. 요즘은 차량통행시 차량에 기기를 장착하면 요금이 자동으로 정산되기에 무척 편리하다.
엊그제 뉴스에 의하면 70년 전에 현금보관증을 받고 은행에 맡긴 돈에 대한 분쟁이 보도되었다. 70대 노인이 100억원 가치로 추정되는 부친의 현금보관증을 들고 수십년 간 은행 문턱을 넘나들고 있으나 돈을 찾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은행측에서 영수증의 진위를 확인하고도 은행에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며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맡긴 이는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들, 손자로 이어져 맡긴 돈을 찾으려고 동분서주 하고 있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은행에서 발행한 증서가 맞다면 인정하고 맡긴 돈을 돌려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에 맡긴 돈을 정당한 권리자가 증표를 들이되도 내몰라라 하는 것은 금융인의 자세가 아닌 것 같다. 작은 이익을 고집하다보면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70년 전에 맡긴 돈을 한 은행원의 노력으로 돌려 줬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은행과 고객과의 약속이고 은행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영수증이 필수적이 것 같다. 더구나 세상이 존재하는 한 모든 것에 증표 내지 영수증이 있다. 태어나면 주민등록증, 학교를 졸업하면 졸업장, 결혼하면 혼인신고, 사망하면 사망신고를 하게 되며 모두가 증표로 남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인간관계는 증표에서 시작하여 증표로 끝난다. 영수증은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한 증표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흔적도 증표의 역할을 다한다. 유물, 유적을 통하여도 과거의 많은 것들을 조명해 낸다. 한 장의 종이기록도 중요하지만 모든 흔적도 증표가 될 수 있고, 영수증이 될 수도 있다. 증표와 영수증은 사실을 입증한다. 거짓없는 참된 세상에도 영수증은 있을까? 오랜 세월과 복잡한 생활은 영수증을 양산하게 된다. 영수증은 인간생활을 참되게하고 진실을 오랜기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으로 영원히 존재하리라 믿는다. (2022.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