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남의집 풀숲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늙은 호박이 부러워
봄에 맷돌호박 다섯 포기를 사다 돌담 옆에 심어 한 포기가 죽고
네 포기가 살았는데 심어놓고 될 대로 돼라 내버려 두었는데
여름에야 풀숲 호박섶에 가려 한 댓 개 보이나 싶더니
잎이 죽고 풀이 시드니
여기저기 누런 호박이 엄청 많이 보이는 거예요.
난 심어만 놨지 돌담 둑 아래에서
저 호박을 한 개도 들어 올릴 수가 없어 남편보고 좀 따오라 했더니
외발 리어카로 서너번 실어다 패대기를 치면서
"18노메 호박은 뭐 하러 심어서 ~힘들어 죽겠네~~"
툴툴거리나
내가 심었으니 찍소리도 못하고
패대기친 호박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저걸 어째야 하나...
이웃여자가 와 보고 중탕 내려 먹으라 하나
내가 앨 낳았나 중탕은 뭐하러~
날은 추워진다고 하고
그래도 농사라고 이름 붙여 얻은 호박인데
버릴 수는 없고
한통씩도 버거운걸 억지로 들어다 겉을 깨끗하게 씻어놓고
남편을 구슬렸지요.
"여보~내년엔 절대로 안 심을 테니 저걸 잘라만 줘요 내가 어떻게든 까볼 테니
까서 말려서 뭘 해 먹어도 해 먹어야지 어떻게요."
웬일로 군말 없이 하나를 잘라 보더니
"생각보다 잘 잘라지네~?"
해서 이렇게 잘라는 놨는데
우습게 생각하고 칼을 들고 달려들어보니
이게 아닌 겁니다.
도저히 깔 수가 없어요.
오래전 조선호박 꽤 많이 땄을때
어머님이 다 까서 저렇게 켜 널으셨었는데
진작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모셔올 수도 없는 일이고
두어 개 까다가 안 되겠어서
"여보 잘라준 건 미안하지만
도저히 못 까겠으니 길자네 소나 가져다 먹이라 해요
조선호박보다 껍질이 열 배는 단단해요."
말해놓고 생각하니 또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엊그제도 콩 한 말을 오리걸음으로 다 주워 모으고
젊어 한때 고추 3천 주를 가으내 혼자 다 따고
남들은 둘이 담아도 하루종일 걸린다는 호박을
한나절만에 혼자 다 담아내던 사람이
아무리 늙었기로 방 안에 앉아 이걸 못 까겠나
한 번에 꼭 엄지손톱만큼씩 떨어지는 호박 껍질을
칼로 저며서 저만큼 까면서
저위에 남편이 호박 패대기치면서 했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열 번도 더 했을 거예요.
암튼 오기로 양쪽 엄지손가락을 다 베어가면서 삼분의 일 깠으니
나머지도 죽으나 사나 다 까서 말려 놓으면 뭘 해 먹어도 해 먹게 되겠지요.
떡을 해 먹든 빵을 쪄 먹든~
"내가 다시 맷돌호박을 심으면 또 성을 간다~"
(또 가 붙은 이유는 다시 하면 성을 간다고 하고 늘 또 같은 일을 반복 하곤 했으니까)
첫댓글 18노메 호박 ㅋㅋㅋ
딱봐도 껍질이 딱딱할꺼 같어.
여물대로 여물었으니...
손가락이 많이 아프겠다..
적당히 하고 남주등가 하지..
오랫만에 글이 올라와 방가운 맘으로 보고 간다..
난 맷돌호박 껍질이 그렇게 딱딱한줄 몰랐어
그래서 어제 카페 글보고 호박 원하는 사람 있기에
둬 사람 택배로 보내주고
남은건 오늘 마저 까던지 버리던지 하려고
호박 사진보니
어릴적 호박 푸레기 써주면 맛있게 먹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가을 농사 끝나고 호박고지 시루떡도 맛나게 먹었는데..
요즘은 구경하기도 어려운것 같으네요.
엊그제 두통 주길래 같고왔는데
호박 죽이나 끓여 먹어야 하는데..
언제 해줄려는지 모르지만..
호박죽을 쒀 먹어도 되는데
남편은 죽을 안 먹으니
혼자 먹자고 쑤기도 그렇고
떡도 누가 그렇게 많이 먹겠다고 하기도 그렇구요.
괜히 심어서 골칫거리만 됐네요.
ㅎㅎ 어지간 하네요 ㅎㅎ 냐년에는 안심고 뿌리세요. ㅎ
뿌려도 나와서 달리기는 마찬가지겠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