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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상미다라니경(金剛上味陁羅尼經)
원위(元魏) 천축 삼장 불타선다(佛陁扇多) 한역
주호찬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소설산(小雪山)의 왼쪽에 있는 장엄(莊嚴) 마을의 금굴(金窟)에서 대비구(大比丘) 1만 2천 명의 대중과 함께 계셨다.
이 때 바가바께서는 걸식해 온 음식을 드시고 나서 금굴에서 결가부좌를 하시고 일체법현기삼매(一切法現起三昧)에 드셨다.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시니 여러 비구 대중들은 세존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비구들이 서로에게 말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지금 선서(善逝)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그 때 여래께서는 위신력으로 42정거천(淨居天)의 모든 천중(天衆)들로 하여금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오게 하였다. 그 때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삼십삼천(三十三天)과 대범천왕(大梵天王)도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염부제(閻浮提)에서 내려와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왔다.
그 때 정거천의 천중들과 석제환인과 삼십삼천과 대범천왕들은 세존께서 보이지 않자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을 하자 곧바로 세존께서 금굴에서 적멸정(寂滅定)에 계시는 것이 보였다. 정거천의 천중들과 석제환인과 삼십삼천과 대범천왕 등은 여래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신통력을 나투시어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있는 모든 보살과 처음으로 발심한 자와 그 발심에서 물러서지 않는 자와 다음 생에 성불을 수기 받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여래께서 계시는 장엄 마을에 와서 금굴 안에 모이게 하였다. 그들이 여래가 계시는 곳에 모이자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그들을 땅으로부터 다라수(多羅樹)의 높이만큼 떨어진 허공에 머물게 했다.
이 때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가 모든 중생들이 각자 지닌 마음을 알고서 곧 바로 일체 중생들의 모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삼매에 들었다. 문수사리동자가 그 삼매에 들어가자 모든 중생들은 일찍이 느끼지 못하였던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 때 미륵(彌勒)보살이 일체법적멸삼매(一切法寂滅三昧)에 들었다. 삼매에 들어가고 나자 그 모든 대중들의 모든 근(根)이 적정(寂靜)하여졌다.
그 때 보광(賣光)보살이 62억의 보살들에게 둘러싸여서 장엄 마을의 금굴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자 스스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어 허공 가운데에 머물렀다. 이 때 관세자재(觀世自在)보살이 9만 2천의 보살들에게 둘러싸여 장엄 마을의 금굴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 땅에 내려오지 못하고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여러 보살들은 연꽃 가운데에 앉았는데 연꽃에 앉고 나자 모든 번뇌의 장애를 없애고 일체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삼매를 얻어서 곧바로 모든 중생의 탐ㆍ진ㆍ치 등의 번뇌가 소멸되었다.
그 때 보협(寶篋)보살이 대장엄삼매(大莊嚴三昧)에 들었다. 보협보살이 삼매에 들자 허공 가운데에서 곧 우발라화(優鉢羅花)ㆍ발두마화(鉢頭摩花)ㆍ구물두화(拘物頭華)ㆍ분다리화(芬陁利華)로 만든 덮개가 생겨나 저절로 덮으니 해와 달의 빛을 빌리지 않고서도 스스로 광명이 있게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 그보다 위쪽의 허공 가운데에 계시면서 자연스럽게 정념(正念)에 들어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 때 문수사리동자가 허공 가운데에서 옷을 가지런히 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因)과 어떠한 연(緣)으로 지금 세존께서는 허공 가운데에 계시면서 정념에 들어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내가 이 허공계 가운데에서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금강상미다라니(金剛上味陁羅尼)의 법문을 말하고자 한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세존께서는 모든 보살을 위하여 금강상미다라니의 법문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보리(菩提)가 없으며 모든 불법도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정각을 이루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보리라는 것이 없고 보리를 깨달은 자라는 분별도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세간을 두려워하고 열반에 들어가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세간과 열반이라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선법(善法)을 찾아 구하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선(善)이나 불선(不善)이라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피안(彼岸)으로 건너가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차안(此岸)이나 피안이라는 것과 피안에 건너갔다고 하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세계를 청정하게 한다고 하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마군(魔軍)이나 원수를 굴복시키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마군이 없으며 마군이나 원수가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음마(陰魔)ㆍ번뇌마(煩惱魔)ㆍ사마(死魔)를 소멸시키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음계(陰界)의 명칭을 갖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성문이니 연각이니 하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중생이나 중생이라는 분별도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탐ㆍ진ㆍ치 등의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탐ㆍ진ㆍ치 등의 번뇌라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어둠을 없애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명(明)이라거나 무암(無暗)이라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상상지(上上智)를 배우고자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높은 지혜라거나 높지 않은 지혜라는 분별이 없다. 이 모든 보살들이 번뇌를 제거하려고 하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번뇌의 때[垢]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조복(調伏)되었다거나 조복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없으며,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자(慈)도 없고 비(悲)도 없고 희(喜)도 없고 사(捨)도 없으며 , 베푸는 것도 없고 아끼는 것도 없으며, 또한 계율을 지키는 것도 없고 계율을 깨뜨리는 것도 없으며, 참는 것도 없고 성내는 것도 없으며, 정진하는 것도 없고 게을리 하는 것도 없으며, 선정도 없고 어지러운 것도 없으며, 지혜로움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범하는 것도 없고, 범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또한 성문도 없으며, 또한 연각도 없으며, 또한 여래도 없으며, 법도 없고 비법(非法)도 없으며,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하며, 지혜라거나 지혜가 아니라거나 하는 갖가지 차별도 없으며, 내지 또한 지혜를 증득하였다고 하는 차별도 없으며, 또한 세간도 없고, 또한 열반도 없으며, 내지 또한 보리분법(菩提分法)도 없으며, 제근력(諸根力)도 없으며, 4념처(念處)도 없으며, 4정근(正勤)도 없으며 4여의족(如意足)도 없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만약 이 금강상미다라니를 배우려고 한다면 그 보살은 마땅히 범부의 법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증득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일으키지 말며, 닦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며, 즐거움을 구하여 보호해 주는 것이 없는 곳에 머물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범부법에서 염상(染相)을 내지 말 것이며, 시상(施相)을 내지 말 것이며, 부처님의 법을 떠나 다시 모든 범부법을 보고자 하여도 안 된다.
문수사리여, 범부의 법에서는 불법도 있고 불법을 증득함도 있으나 금강상미다라니에는 증득함도 없고 증득하지 못함도 없다. 이 금강상미다라니는 불법 가운데에 있지 않다. 이 금강상미다라니는 범부를 버리지 않으며, 범부법을 보호하지도 않으며, 모든 불세계(佛世界)를 움직이지도 않으며, 모든 원(願)을 일으키지도 아니하고 모든 원을 버리지도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이 금강상미다라니의 법문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순응하며, 모든 여인에게 순응하고 모든 남자에게 순응하며, 모든 천(天)에 순응하고 모든 용(龍)에 순응하고 모든 야차(夜又)와 나찰(羅訓)에 순응하고 모든 건달바(乾闥婆)에 순응하고 모든 아수라(阿修羅)에 순응하고 모든 가루라(伽樓羅)에 순응하고 모든 긴나라(緊那羅)에 순응하고 모든 마후라가(摩睺羅伽)에 순응하며, 모든 부처님께 순응하고 모든 법에 순응하고 모든 승가(憎伽)에 순응하며, 모든 성문과 연각에 순응하며, 모든 지옥과 아귀와 축생에 순응하며, 수(水)에 순응하고 풍(風)에 순응하고 화(火)에 순응하고 지(地)에 순응하며, 안(眼)에 순응하고 이(耳)에 순응하고 비(鼻)에 순응하고 설(舌)에 순응하고 신(身)에 순응하고 의(意)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 금강상미다라니에는 모든 법이 순응한다. 문수사리여, 동방(東方)에 있는 허공계분(虛空界分)과 남방ㆍ서방ㆍ북방과 상하에 있는 허공계분은 그 모든 것이 허공계에 순응하여 들어간다. 문수사리여, 이 금강상미다라니구(金剛上味陁羅尼句)는 모든 법에 순응한다.”
그 때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탐내는 것이 다라니구가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탐욕이라는 것은 그 탐내는 것이 동쪽으로부터 와서 중생을 물들이는 것이 아니며,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이나 위나 아래로부터 와서 중생을 물들이는 것이 아니며, 안으로부터 생겨서 중생을 물들이는 것이 아니며 밖으로부터 와서 중생을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문수사리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모두가 마음 안에서 분별을 하는 까닭에 생겨나서 물듦과 깨끗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에 물듦과 깨끗함을 없애버린다면 법을 증득함도 증득하지 못함도 없게 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마치 법이 생겨나지 않아서 본래부터 안이나 밖에 있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탐욕이 다라니구이다’라 말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성을 내는 것은 마음 안에서 성내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그 성냄은 과거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며 미래도 아닌 것이다. 문수사리여, 만약에 과거의 법으로서 생겨나게 할 수 있다면 다라니구를 깨끗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어리석은 마음도 또한 다라니구가 아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다라니이며 무엇이 다라니구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어리석음은 무명(無明)이니 무명으로부터 모든 법이 생겨났다. 지계(地界)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지계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수계(水界)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화계(火界)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풍계(風界)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공계(空界)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식계(識界)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집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모든 법은 물듦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
문수사리여, 만약 법에 물듦이 있다면 허공도 또한 마땅히 물듦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허공계도 또한 모든 법이 없으나 장애는 만들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른바 무명이 모든 법을 잡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가는 것으로 하여금 그것에게 멸상(滅相)이 없게 하여 공(空)이 장애가 없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색(色)이 아닌 까닭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속박됨도 없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없으며, 물듦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면서 한량없는 모든 신통(神通)을 얻는 까닭에 공에는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모든 물질이 없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세간에 살고 있어야 세간의 모든 번뇌가 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명은 멸하는 것도 없으며 멸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무명이 곧 명(明)인데 부처님과 여래께서 무명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본제(本際) 가운데에는 무명이 없나니 이런 까닭에 무명구(無明句)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중제(中際) 가운데에도 또한 무명은 없으며, 후제(後際) 가운데에도 또한 무명은 없다.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 가운데에 무명이 없다면 어찌하여 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며 또한 잊지 않는다고 말하겠느냐? 그러하니 모든 법에는 깨끗함과 물듦과 그리고 장애의 모습[障相]을 짓는 것이 있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세존이시여, 그 가운데에는 밝음이 없는데 어찌하여 물들게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비유하면 나무를 비벼서 불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부싯돌과 불을 지피는 풀과 사람의 손으로 공력(功力)을 들이는 여러 가지의 연(緣)이 모이는 까닭에 먼저 연기가 피어난 뒤에 불이 생기지만 불은 부싯돌 안에 없으며 비비는 나무 안에 없으며 불을 지피는 풀과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 여러 가지의 연이 화합하여 불을 만드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저 어리석음은 없는 것이나 여러 중생들이 아상(我想)에서 탐ㆍ진ㆍ치의 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탐냄 등의 불길은 또한 안에 없으며 또한 밖에도 없으며 중간에도 없다.
그렇다면 문수사리여, 어리석음이라 말해지는 것은 어떤 뜻이 있어서 그것을 이름하여 어리석음이라는 것이겠느냐? 모든 법을 필경에는 해탈해야하는 것인 까닭에 어리석음이라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일체의 법이 끝내는 해탈하는 것을 이름하여 금강상미다라니구(金剛上味陁羅尼句)라는 것이다.”
그 때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법문을 성취하는 보살로 하여금 일체순향삼매(一切順向三昧)를 얻게 하는 그런 법문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한 법문이 있다. 보살이 그 법문을 성취한다면 모든 일에 통달할 수 있게 된다. 비유하면 한 글자가 백천(百千)의 글자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글자를 다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법문으로 모든 법을 설명한다면 이러이러한 모든 법문이 나타나지만, 이와 같이 한량없는 법문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걸림이 없는 변재(辯才)만이 변재의 다함이 없는 즐거움을 얻게 한다. 이런 까닭에 다함이 없는 변재로써 하나의 법문 문구(文句)에 모든 법문의 문구를 다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모든 법문의 문구를 하나의 법문 문구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무슨 색(色)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천문(天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천문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적멸정(寂滅定)에 머무나니 이것이 보살이 천상(天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용문(龍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용문입니까?”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일자문(一字門)인 까닭이며 글자로부터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무자(無字)도 글자를 말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용상(龍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야차문(夜叉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야차문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야차상(夜叉相)에 들어가 필경에는 생기지 않는 까닭이다. 이것이 보살이 야차상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건달바문(乾闥婆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건달바문입니까?”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모든 산수(算數)를 넘어서는 것이니 무량무변하여 허공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살이 건달바상(乾闥婆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아수라문(阿修羅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아수라문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일체문(一切門)을 순응하여 두루하는 것이니 명(名)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색(色)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聲)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향(香)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미(味)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촉(觸)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법(法)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부처님께서 도달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불법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승가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문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연각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범부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도달할 수 있는 것과 도달할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니 일어나지[起] 않는 까닭이다. 이것이 보살이 아수라상(阿修羅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가루라문(迦樓羅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가루라문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마침내 행하지 않으며 또한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속박됨이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머묾도 없고 감도 없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머물지 않되 허공계의 평등함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가루라상(迦樓羅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긴나라문(緊那羅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긴나라문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짓는 것을 여읜 까닭에 짓는 것이 없고 구하는 것이 없으며 구하여 보는 것도 없다. 이것이 보살이 긴나라상(緊那羅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마후라가문(摩睺羅伽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마후라가문입니까?”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모든 법의 때[垢]를 여의고 영원히 광명을 얻었으니 모든 중생들이 그것을 더럽게 할 수도 없으며 깨끗하게 할 수도 없으니 청정한 다라니문인 까닭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끝내는 적멸(寂減)한 것이라 성품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살이 마후라가상(摩睺羅伽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부녀문(婦女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부녀문입니까?”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다 허망하니 이것이 남문(男門)이며 이것이 여문(女門)이다. 여문을 여읜 까닭에 현상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부녀상(婦女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장부문(丈夫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장부문입니까?”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전제(前際)ㆍ중제(中際)ㆍ후제(後際)에서 장부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삼계를 여의고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니 그곳에는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어서 이름만 가탁하여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거짓 이름과 그 처소는 적정하며 그 설(說)은 물들어 있고 그 색(色)은 사대(四大)에 의지하였으니 사대에 의지하는 까닭에 생멸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은 마침내는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장부상(丈夫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지옥문(地獄門)이니 이것이 다라니구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다라니구가 지옥문입니까?”
“문수사리여, 지옥은 무엇으로써 상(相)에 순응하느냐?”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허공과 같은 상입니다.”
“문수사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그 지옥은 어느 곳으로부터 일어났느냐?”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스스로 생각하여 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스스로 망령된 생각을 하므로 모든 범부들이 스스로 얽매이는 것이며 얽매이는 까닭에 그것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받는 자로 하여금 그 고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지옥에 떨어지고 나면 백천만 가지의 불로 태워지는 것을 보며 자기의 몸이 붙잡혀서 끓는 물에 던져지는 것을 봅니다. 그 사람은 몸이 크게 고통을 받으며 큰 불 속에서 태워지는 것을 보고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입 밖으로 내어 소리를 지릅니다.
‘매우 고통스럽다.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자 그 사람의 여러 친척들이 와서 그에게 ‘당신은 어디가 아픈가?’라 물으면 그 사람은 ‘나는 지옥의 지극히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큰 불이 나를 태우고 내가 끓는 물에 던져지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을 하면서 여러 친척들에게 성을 내어 ‘내가 지옥에서 크나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나에게 무슨 고통이 있는가 물어본단 말인가?’라 말합니다. 여러 친척들이 ‘당신은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잠을 자고 있다. 당신은 지금 실제로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지도 않았고 또한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스스로 생각을 합니다.
‘내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구나. 이것은 허망한 것이며 진실한 것이 아니다. 헛되고 거짓되기가 마치 허깨비와 같구나.’
이와 같이 알아서 깨닫고 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그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데 있는 것이라 말하여 스스로 ‘내가 지옥에 떨어졌다’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모든 범부들은 전도되고 허망한 생각을 내어 실제로는 얽매이지 않았으면서도 여상(女想)을 내고, 여상을 내고 나면 몸이 함께 행하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말을 합니다.
‘나는 사내이고 저 사람은 여자이다. 저 사람은 나의 아내이고 나는 저 사람의 남편이다.’
그 사람은 이것 때문에 탐ㆍ진ㆍ치 등의 여러 번뇌를 일으키므로 스스로 마음에 있는 곳에서 상(想)을 일으키게 되고, 이 인(因) 때문에 싸우고 다투는 등의 여러 법답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와 같이 다투고 싸우는 일이 생기고 나면 크게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전도된 망상 때문에 죽은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서 무량겁 동안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또 마치 저 사람에게 모든 친척들이 와서 ‘너는 잠을 자고 있을 뿐 가지도 않았으며 오지도 않았다’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범부가 또한 이와 같아서 4가지 전도된 망견(妄見)을 두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그 가운데에 남자도 있지 않으며 또한 여자도 있지 않으며 중생도 있지 않고 목숨을 가진 것 등도 없는 것이니 모든 법은 참되지 않으며 허망하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법이 공(空)한 줄을 깨달으면 본성(本性)은 생겨나지도 아니하고 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분별할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물속의 달과 같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법 가운데에는 물들일 만한 것도 없고 더럽힐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다 허망한 것이니 허망하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아(我)와 아소(我所)를 여의었다’고 하신 것이니 일체의 지옥문(地獄門)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동자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일체의 지옥을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네가 보는 바와 같으니 그와 같이 분별하여라.
문수사리여, 만약 이와 같이 본다면 지옥은 없는 것이며 지옥문은 없는 것이니 그 사람은 곧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부처님께서 이 지옥의 법문을 말씀하신 때에 9만 2천의 모든 보살들이 다 무생법인을 얻었다. 그들은 이 깨달음을 얻고 나자 동시에 같은 목소리로 이와 같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로서 모든 무아법(無我法)을 깨달아 일체의 불법을 얻은 것이다.”
그 때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을 설하여 주십시오. 보살들이 불이법문에 들어가게 되면 그로 인하여 모든 법이 둘이 아님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것은 모든 법이 평등하게 법문에 수순(隨順)하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니 보살들이 이 바른 법문에 들어가고 나면 모든 번뇌 가운데에서 모든 불법을 보게 되며 변재를 얻어서 설법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법문은 무엇으로 상(相)을 삼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잘 생각하여라. 내가 너를 위하여 말하겠다. 이 법문을 일체 번뇌를 여읜다고 이름하니, 그러므로 내가 이 다라니문을 설하는 것이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제가 정대(頂戴)하여 받들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무명(無明)이 보리(菩提)이니 이것이 다라니구 법문[陁羅尼句門]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무명이 보리입니까?”
“문수사리여, 무명이 없는 까닭에 무명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무명이 없다면 또한 생(生)이 없을 것이고, 만약 생이 없다면 그것은 물듦이 없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보리는 물듦이 없나니 그 본성이 청정하고 그 본체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나는 이 현상을 보는 까닭에 무명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불이설(不二說)인 연고이다. 문수사리여, 나는 무명을 얻지 못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내가 무명을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무명상(無明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행(行)이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일체의 법은 모든 산수상(算數相)을 여읜 것이며, 무량무변하여 변제를 볼 수 없으며, 착한 것이거나 착하지 않은 것을 따르며,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들어가게 하면서도 이곳으로부터 그곳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그곳으로부터 이곳에 이르는 것이 아니면서도 이곳과 그곳을 낳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일체의 법은 지나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이르는 곳도 없고 도달하는 곳도 없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행상(行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식(識)이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여래가 식을 말하였으나 이것은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만든 것은 허망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일체의 허망한 법 가운데에서 만약 모든 법을 구하여 ‘나는 불법을 증득하여 정각을 이루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나는 세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라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허망한 법 가운데에서 망령되게 보리를 생각하여 잘난 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남을 속인 것이다.
문수사리여, 내가 도량(道場)에 앉아 있을 때라도 증득할 만한 어떤 법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성문법이며 이것이 연각법이며 이것이 범부법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식상(識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명색(名色)이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명색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니 소리로써 말을 하나 말하는 것이 없고 색(色)은 무위(無爲)이기 때문이다. 만약 함이 없다면[無爲]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제도 없는 것이며 중제도 없는 것이며 후제도 없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여래께서는 ‘내가 보리이다’라 말씀하셨으나 그것은 시방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명색상(名色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6입(入)이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이 여러 입(入) 등은 모두가 입상(入相)이며 모두가 공상(空相)이다. 이 적정상(寂靜相)은 모든 중생이 눈[眼]으로 색(色)을 보고 나서 ‘내가 보았다’고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며, 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경우에 있어서는 또한 이와 같다. 따라서 ‘나는 능히 모든 법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안식(眼識)으로 이경계(耳境界)를 아는 것이 아니며, 이식(耳識)으로 안경계(眼境界)를 아는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의(意)가 모든 법의 경계를 아는 것이 아니니, 모든 법은 의경계(意境界)가 아니며 서로가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일체의 법에는 깨달음이 없고 모든 심상(心相)을 여의고 있어서 서로 섞여 있는 까닭에 일체의 법은 공한 것이다. 만약 일체의 법이 마침내 공한 것이라면 이것이 보리상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6입상(入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촉(觸)이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촉이라 말하는 것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상이다. 문수사리여, 만약 법에 촉이 있다면 그것은 연(緣)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만약 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은 연으로 성립된 것이라 이름할 것이니, 만약 연으로써 성립된 것이라면 그것은 허망한 것이다. 만약 허망한 것이라면 그것은 마침내는 없는 것이니, 만약 마침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일체의 법은 생멸상(生滅相)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보리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촉상(觸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수(受)가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수라는 것은 바로 세 가지가 있으니, 고수(苦受)와 낙수(樂受)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수는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문수사리여, 그 수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가운데에 있는 중생들이 괴로움을 받는다는 생각과 즐거움을 받는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의 범부들은 전도되고 얽매여서 참되지 않은 법 가운데에서 즐거움을 받고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허깨비와 같은 것이며, 모든 수(受)의 성품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런 까닭에 나는 수(受)가 보리라 말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수상(受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애(愛)가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문수사리여, 애는 번뇌의 인(因)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실제로는 자식을 낳지 못하였으면서 자식을 낳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그렇다면 그 사람의 자식은 안에서 생긴 것이라 하겠느냐, 밖에서 생긴 것이라 하겠느냐? 그 사람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에게는 본래 자식이 없는데 어떻게 자식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나중에 그 사람이 대장부가 되어서 화합(和合)을 한 까닭에 비로소 자식을 남게 되었다.
문수사리여, 애(愛)는 무엇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냐? 전제ㆍ중제ㆍ후제로부터 생기는 것이냐? 안에서 생기는 것이냐, 밖에서 생기는 것이냐?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냐?”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애(愛)는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내지 여러 방위의 차별도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누가 이 법을 방위에 의해서 깨달아지는 것이라 말하느냐? 문수사리여, 또한 이 애(愛)는 누가 만들고 누가 짓는 것이냐?”
“세존이시여, 애는 짓는 바를 여의는 지라 짓는 자가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범부 중생은 4가지 뒤바뀐 견해와 4가지 번뇌로 인하여 그대로 허망함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법이 있는 것이라면 행위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법이 마침내 없는 것이라면 그 법에 어떻게 물듦이 있으며 깨끗함이 있겠습니까?”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에 방위나 성품이나 모습이 있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안에서 말미암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말미암는 것도 아니며, 더러워지지도 않는 것이고 깨끗해지지도 않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리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애상(愛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취(取)가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항상 ‘모든 법은 얽매임도 없고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남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모든 범부들이 무엇을 취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중생들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등에 얽매여 집착하고 5욕을 취한다. 문수사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색(色)이 능히 성(聲)을 낼 수 있는가?”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법을 주게 하기도 하고 법을 머물게 하기도 하며 장애를 만들기도 하는 어떤 하나의 법이 있을 수 있는가?”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은 마침내는 생겨나지 않으며 장애가 없는 것이다. 그 법은 무엇을 만들지 아니하고 서로가 서로를 낳으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바가 되면서도 업(業)은 없으나 그것이 말하는 것은 있으니 그 모든 법이 필경에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내가 ‘이 취(取)가 보리(菩提)이다’라는 다라니문을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취상(取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유(有)가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본래 모든 유(有)를 소멸시키고자 성문법을 말씀하셨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유법문(有法門)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역사상(力士相)이니, 이런 까닭에 내가 이 유법문을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법이 현상이 아니어서 허공상(虛空相)과 같은 것이라 안다면 다시 일체의 불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런 까닭에 내가 ‘유(有)가 보리이다’라는 다라니구를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유상(有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문수사리여, 생(生)이 보리이니 이것이 다라니문이다.”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본래 덧없이 지나가는 생(生) 때문에 모든 법을 말씀하셨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생(生)이라 말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이 생법(生法)을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 것이니 그것이 낳는 것도 아니고 바뀌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까닭에 내가 ‘생이 보리이다’라는 다라니구를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이 생상(生相)에 들어가는 다라니구 법문이다.
보리를 말한 것은 모든 보살로 하여금 빨리 변재를 얻게 하려는 것이며, 변재에 민첩하게 변재하려는 것이며, 변재에 장애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 때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떠한 경지에 있는 보살을 위하여 이 법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보살이 보리를 구하지 않으며 보리를 기뻐하지 않으며 보리심을 내지 않으며 불법을 증득하지 않으며 불세계(佛世界)를 청정케 하지 않으며, 탐ㆍ진ㆍ치를 일으키지 않으며 마음에 세간을 지나가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군에게 항복하지 않으며 설법을 하려고 하지 아니하여 그 법에서 두 가지 상[二相]을 짓지 않는다면, 문수사리여, 나는 지금 이러한 경지에 머무는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이 법문을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보살이 있어서 이 금강상미다라니법문(金剛上味陁羅尼法門)을 받아 지녀서 읽거나 외우거나 널리 남을 위하여 말해 준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얼마만큼의 복을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 모든 보살이 이 금강상미다라니법문을 받거나 지니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남을 위하여 말해 준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모든 부처님과 같나니,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평등한 마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모든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 등이 언제나 그를 공양할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 금강상미다라니법문은 한량없는 공덕을 원만구족(圖滿具足)하게 성취한다. 문수사리여, 이 금강상미다라니법문은 다함이 없다.”
부처님께서 이 법문을 설하실 때에 1만의 보살들이 이 금강상미다라니법문을 얻었으며, 3만 2천의 초발심 보살들이 무생법인을 얻었다.
문수사리동자와 그 보살들과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인비인 등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예배를 드리고서 물러났다.
『금강상미다라니경』 1권(ABC, K0336 v12, p.18a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