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대하여 [이성미]
네가 올 때마다 육각형 눈이 와. 나는 여름 들판에
서 너를 기다려. 하얀 별들이 밤하늘을 뒤덮고, 나의
심장에도 차가운 눈이 내려.
너는 새벽에서 이곳으로 와. 빈방에서 여름으로
와. 그럴 때 너는 너보다 커 보이거나 작아 보여. 그
림자놀이처럼.
침엽수에게 어떤 모양의 잎을 달고 싶으냐고 물으
면 흰 왕관처럼 얹힌 눈이 녹아버릴까.
북쪽 여왕의 반대말은 북쪽 왕인가 남쪽 여왕인가
남쪽 허름한 소녀인가 소년인가. 이런 걸 궁금해하면
네가 화를 낼까.
담요를 드릴까요. 물어보면 네가 조금씩 녹을까.
녹으면서 허둥댈까.
너는 하얀 자동차를 타고 한 방향으로 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나라로. 눈보라가 치고 침엽수가 자라
는 빈방 속의 빈방으로.
나는 옆구리나 심장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 너의 안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
고 뜨거움이 모자랄 때마다 나는, 발바닥인 것 같아.
- 칠 일이 지나고 오늘, 문학과지성사, 2013
* 심장은 계속 쿵쾅거리며 일을 하니 따뜻하지만 심장에서 먼 발은
오다가 차가워져 온기의 기별이 없다.
그럼에도 추위를 아는 건 등어리일까.
이불 밖에 있는 발은 추위를 덜 느껴도 등어리가 밖으로 나오면 직방이다.
중학생일 때 방과 후에 신문을 돌렸다.
첫 월급이 천사백원이었는데 삼개월 모으면 학비를 낼 수 있었다.
겨울에는 운동화가 눈에 젖어 발이 참 시려웠는데 결국 동상이 걸렸다.
아버지가 마늘대를 얻어와 푹 삶은 물에 언 발을 담궜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전혀 의학적이지 않은 민간요법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멀쩡하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라서 겨울을 지내는 것도 다행이긴 한데
가끔은 남쪽나라가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삼한사온이 가고 십삼한십사온이 되어버린 요즘 날씨에는
십사온,도 감사한 일이다.
북쪽 여왕의 반대말은 남쪽 왕이라고 하면 오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