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살펴볼 대상은, 기원전 2세기 전기-대략 BC170년 전후를 배경으로 디자인된 한 로마인 소농 가정 모델이다. 이 모델을 통해 다양한 변화에 당시의 소농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 볼 것이다. N.Rosenstein은 『Rome at War』(2004)에서, 전반적으로 "상황이 상당히 나쁜" 모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여러가지 흥미로운 국면들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이와는 달리, "평범했으리라고 생각되는" 가정을 모델로 설정할 것이다. Rosenstein이 제시한 많은 논점들이 비슷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또 몇가지 추가적인 계산도 시도해 볼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모델 가정을 소개할 차례다.시뮬레이션이 시작되는 해에, 이 가정의 아버지인 가이우스 모델리우스(Caius Modelius)씨는 48세이며 어머니인 엑삼플리아(Examplia)씨는 36세이다. 두 사람은 19년 전에 결혼해서, 라티움의 한 소도시 경계 안에 있는 모델리우스씨의 가족 농장에서 살고 있다. 자녀는 많이 태어났지만, 여러 명이 유년기에 죽었고 건강하게 큰 아이는 세명이다. 큰 아들 마르쿠스 모델리우스군은 18세로, 올해 군대에 간다. 딸 모델리아는 13세이다. 둘째 아들 푸블리우스 모델리우스는 10세로, 아직 어리다.
아마 이런 가정은 당시에 그리 대단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로마 남자들은 대개 20대 후반, 30대 초에 이르러서야 결혼했으며, 신부와는 10살 가량 나이 차이가 났다.[Saller] 또한 높은 유아 사망률로 인해, 태어난 아이의 절반 가량은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남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농민 가정인 모델리우스씨네는 구체적으로 어떤 땅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
모델리우스씨네는 농장에서 밀과 포도, 올리브를 키우고, 집 주변의 텃밭에서 계절 야채를 키운다. 모델리우스씨와 엑삼플리아씨가 각자 상속받고, 또 이따금 구입하기도 한 것을 합쳐서 만든 사유지는 10유게라(약 2.5헥타르~7600평)이다. 여기에 더하여 공유지 7유게라를 점유하여 추가로 밀농사를 짓고, 또 이웃 몇 집과 공동으로 쓰는 황소 두마리를 먹이고 있다.
10유게라의 사유지는 아마 당시의 소농으로서는 평범한 범위 안에 있는 크기였을 것이다.[차전환] 그러나 이제 계산을 통해 보여지겠지만, 여간 비옥한 토지가 아닌 한 이 정도의 크기로는 5인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다. 따라서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한 평범한 소농들은 사유지 외에 추가로 공유지 용익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농산물을 얻었다고 생각된다. 모델리우스씨네는 또 역축을 쓰고 있지만, 완전히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아마 이웃한 몇몇 가구가 공동으로 쟁기를 끌 황소 두 마리를 보유했고, 사료를 분담했을 것이다. 이 모델에서 모델리우스씨네는 1/4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다.
모델리우스씨네의 총 17유게라의 농지는 어떻게 분할되는가? 각 인물의 나이를 감안할 때, 이 집 가족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일일 칼로리를 필요로 했다고 볼 수 있다.
가이우스 모델리우스씨(48) 3,000kcal
엑삼플리아씨(36) 2,200kcal
마르쿠스 모델리우스군(18) 3,000kcal
모델리아(13) 2,200kcal
푸블리우스 모델리우스(10) 2,200kcal
총합 일일 12,600kcal>1년 필요 칼로리 4,599,000kcal.
평범한 소비량을 써서 이를 위해 필요한 면적을 계산해 보자.[평균치는 Rosenstein2008에서] 당시 로마인들은 연평균 100L의 포도주와 20L의 올리브유를 소비했다. 가족 사이에서는 필요 칼로리에 비례하여 분배된다고 가정한다. 평범한 생산량을 가정했을때, 500L의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1유게룸의 포도밭이, 100L의 올리브유를 위해서는 0.9유게룸의 올리브 과수원이 있어야 한다. 황소 두마리를 부양하는데는 1~2헥타르 가량이 필요했을 것이므로[Rosenstein2004] 여럿이 돌려쓰는 소이기에 많이 먹여야 한다고 보고 높은 쪽을 잡았을때 그 1/4지분은 2유게라가 된다. 집과 텃밭, 창고를 위해 역시 1유게룸을 할당한다.
올리브유 가운데 절반은 섭취한다고 보면, 이제 500L의 포도주와 50L의 올리브유는 칼로리로 환산하여 각각 475,000kcal와 390,000kcal가 된다. 이를 제외하면, 밀을 통해 얻어야 하는 칼로리는 3,734,000kcal이다. 밀 1kg은 3,340kcal를 내므로 이는 약 1,120kg에 해당한다. 1유게룸의 토지에서 종곡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밀은 100kg이라고 볼 때(이는 파종대 소출이 약 1:4인 경우에 해당한다. 역시 평범한 소출이었을 것이다.) 1,120kg의 밀은 11.2유게라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델리우스씨네 사유지에서 밀농사에 쓸 수 있는 면적은 집, 창고, 텃밭, 포도밭, 올리브 과수원을 제외한 7.1유게라 뿐으로, 여기서는 710kg이 나온다. 나머지는 공유지에서 해결해야 하므로, 나라에 수확량의 10%의 벡티갈세를 납부했을 것이다.(*)[Appian.BC.1.7] 따라서 실제 추가로 필요한 농지는 4.1유게라가 아니라 4.7유게라로 본다.
이제 토지의 총합은 16.7유게라이다.(밀밭 11.8유게라, 포도밭 1유게룸, 올리브 과수원 0.9유게룸, 집과 텃밭 1유게룸, 역축용 목초지 2유게라) 원래 가정한 면적에서 0.3유게라가 남지만, 이정도는 밭 가운데 낸 길이나 자투리로 없어지게 될 것이다. 즉, 시작 상태에서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은 아주 근근이 먹고 살고 있다. 가끔 풍년이 드는 해도 있겠지만, 낭비는 할 수 없다.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해서 저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은 어느 정도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일을 하는가? 성인 남자인 모델리우스씨와 마르쿠스군의 노동력을 1이라고 둘 때, 아마 엑삼플리나씨는 0.7, 모델리아는 0.5, 푸블리우스군은 기껏해야 0.3정도의 기여를 할 것이다.(*미성년자의 노동력은 Rosenstein의 추산 비율보다 조금 낮게 잡음) 콜루멜라에 따르면 1유게룸의 토지에서 밀농사를 짓는데는 한 사람이(응당, 성인 남자 기준일 것이다) 1년에 10.5일 일해야 한다.[Columella, De Re Rustica 2.12] 소수점 아래를 반올림하여 11일로 보기로 한다. 또한 야채, 포도, 올리브는 유게룸당 50일 가량이 필요하고, 목초지에서 소를 돌보는데 유게룸당 또 10일이 필요하다고 가정할 것이다.[Rosenstein2004]
즉,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은,
밀밭 11.8유게라>130일
포도밭 1유게룸>50일
올리브 과수원 0.9유게룸>45일
텃밭~1유게룸>50일
목초지 2유게라>20일
한 사람만 일한다고 했을 때 총 295일의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가족은 성인남자 1명의 노동력 단위 1에 대해 3.5배분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실제로는 85일, 즉 약 두달하고도 3주 가량의 노동이면 충분하다. 아마 농번기는 6월부터 11월 사이의 5~6개월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6월, 혹은 7월에는 밀을 수확하고, 8월에는 포도를 수확하고, 9월에는 밭을 갈고, 10월에는 파종을 한다. 그런데 위 계산을 보면,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은 심지어 농번기에도 제법 시간이 남는 셈이다. 축제일이나 날씨가 궂은 날 등이 1년에 100일이라고 가정하고(**), 또 50일 정도는 마을의 공동 행사에 참여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150일을 제외해도,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에서는 1년에 130일, 연일수로는 455일분의 잉여 노동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불완전 고용상태'는 고대 지중해 농업 사회에서는 하나의 일반적인 특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차전환] 그 이유는 부족한 농업 기술과, 또 부족한 경지 면적 때문이다. 기술이 부족하기에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지를 연달아 활용할 수가 없고, 한 가정이 접근할 수 있는 경작지가 부족하기에 남는 시간동안에 다른 농작물을 키울 땅을 확보하기 어렵다.
불완전 고용상태와, 처음에 본 것 같은 남자들의 늦은 결혼 연령은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살펴보자. 큰 아들, 마르쿠스 모델리우스군은 이 해에 군대에 갔다. 이는 가족 노동력에서 1명분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일수 295일에 대해 남은 4명이 제공하는 2.5배분의 노동력은, 필요한 작업을 118일만에 완수할 수 있다. 장정 한 명이 군대에 갔는데도 이 가족이 생산하는 농산물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여전히 연일수 242일분의 노동이 잉여된다. 수확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동시에, 장남이 집에서 소비하던 266kg의 밀, 114L의 포도주, 24L의 올리브유가 이제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중대한 시사점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장남이 군대에 가 버리면 모델리우스씨네 가족은 더 잘 먹고 살 수 있다.
로마 농촌 가정에서 아들의 입대는, 의외로 가계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델리우스씨: "이제 우리 맏이 군대 가는구나~! 당분간은 잘 먹겠구나!"
엑삼플리아씨: "무기사고, 갑옷사고, 남는 봉급은 집에 부쳐라, 알았지?"
모델리아양: "오빠가 군대 오래 갔으면 좋겠다. 한 10년?"
푸블리우스군:"형 군대에서 맛있는 짬빵 많이 먹어! 난 맛없는 포카키우스(※)먹을게!"
마르쿠스군:"........."(이딴걸 가족이라고.....)
(※)focacius. 피자 비슷한 빵. 포카치아.
차전환, 「로마 공화정 후기 이탈리아의 농업 경영에 관한 연구」1992
R. P. Saller, 「Men's Age at Marriage and Its Consequences in the Roman Family」, CP1987
N. Rosenstein, 『Rome at War』,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 2004
N. Rosenstein, 「Aristocrats and Agriculture in the Middle and Late Republic」, JRS2008
*로마 시민은 직접세를 납부하지 않았으나, 공유지 같은 국유 재산을 용익할 때에 사용료를 납부했는데 이는 간접세의 역할을 했다. 농지에 대한 벡티갈세는 유게룸당 1아스(1/10데나리우스)에 불과한, 매우 소량의 인식세일 따름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이는 Liv.31.13을 근거로 한다) 아피아노스는 곡식 수확량의 10%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세금으로서는 후자가 더욱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10%의 세율은, 벡티갈세에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권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일종의 관용적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단, 여기서는 일단 가정의 추가 지출이라는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한 당위성은 없음에도 후자를 따랐다.
**콜루멜라는 비오는 날과 휴일의 합이 45일이라고 했다.(2.12) 그러나 이는 노예의 경우이므로, 로마인 가정에서는 그보다 2배 가량 더 쉴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하였다.
첫댓글 생각 외로 잉여 산출할 건덕지가 착실히 나오는군요..;
그렇습니다. 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제가 로마사에 대해서는 일천합니다만...일반적인 농가의 농민이라면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그동안 부업을 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시대 농부들이 겨울에 새끼를 꽜던 것 처럼) 일이 없는 날에는 도시로 들어가 날품팔이라도 할 수 있었을거구요. 일이 없는 날 놀기만 했을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부업에 관해서는 다음편에 잠시 나오고, 다다음편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됩니다. 여기서는 일단 농산물까지만.
집에서 노느니 군대나 가라! 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나네
가서 죽지만 않으면 로마는 군생활 할만 하지 않나요? 군인 복지도 상큼한 수준으로 알고 있음요.
월급이 적어서요.
전리품을 챙기면 꽤 벌긴 버는데 그렇지 않으면 월급이 적은 편 입니다. 거기다가 필룸이나 다트, 단검 같은 소모품은 자비로 구매해야하구요. 갑옷, 칼, 방패 수리비에 술 먹고 치는 깽판에 드는 벌금, 창녀를 사는 비용, 짬밥 말고 PX(정확히 말하면 군종 상인들?) 이용할때 쓸 용돈 같은 거 생각하면 꽤 적습니다. 물론 계급에 따라서 전투후에 포상금 같은게 있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