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지망월(見指忘月)과 우이독경(牛耳讀經) ◑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자성어중에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말이 있어요
이는"가르키는 달은 보지 않고 저마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본다."라는 의미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눈이 쏠려
정녕 보아야 할 달(月-본질)은 못 본다는 뜻이지요
이는 핵심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본다는 뜻으로
작은 이익 때문에 큰 이익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의 태도를 말하기도 하지요
이 말은 불교의 선종에서 유래되었는데
선종에서는 손가락을 본질로 향하는 매개체의 의미로 사용하였지요
구지(俱胝)는 손가락 하나로 남은 선사이지요
구지선사는 원래 마조(馬祖) 문하의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의 법과 항주(杭州)에 있던
천룡(天龍)선사의 법을 전수하였어요
그리고 이 두 선사 밑에서 그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익혔고 이후부터 법을 물어온 사람을 향해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것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지요
특히 선가에서는 손가락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여기서 손가락 자체는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가리키는 매개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지요
대표적 예를 든다면 견지망월(見指忘月)이지요
즉,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달이란 자성(自性)을 뜻하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자성을 깨우쳐 개오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려 하지 않고
말만 따라다니다가 자기불(自己佛)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의미 이지요
구지선사가 손가락을 세워보인 것도 깨침을 간접적으로 열어보이는 제스처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손가락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깨침이란 남이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경북 김천에는 직지사라는 절이 있어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지었다는 전설(傳說)이 있으며
또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가락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지요
옛날 어느 불자가 고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어요
고승은 스스로 글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지요
실망하는 불자에게 고승은 진리와 문자는 무관하다고 말하였지요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우리의 손가락과 같다"
달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것은 손가락이지만 그것을 통해야 달을 볼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오매불망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반문했어요
불경만 읽고 외우느라 부처님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질타한 것이지요
본질은 사라지고 주변적 모습에만 매달리는 세상에 대한 교훈이랄수 있어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1900년대 초 터키의 한 천문학자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소행성을 발견했어요
국제천문학회에서 B-612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그는 터키 고유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요
학회에서는 소행성 발견보다 그의 옷차림에 관심이 쏠렸고 소행성 발견은 유야무야 됐어요
몇 년 뒤 그는 다시 학회에서 소행성의 존재를 입증하는 내용을 추가하여 발표했지요
터키 국내법의 개정으로 이번엔 서구식 양복을 입을수 있었어요
세계의 석학들은 비로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요
B-612 소행성은 우주탐사의 중요한 디딤돌 가운데 하나가 되어 지금도 여전히 태양주위를 돌고 있어요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우화 어린 왕자에서
기성세대(어른들)의 ‘見옷차림 忘행성’ 모습을 꼬집는 대목으로 소개되어 있지요
한번은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시장하셔서 열매라도 몇 개 따먹을까 하고
무화과나무를 찾아갔더니 열매(핵심가치)는 하나도 없고
잎(외형적 허세)만 무성했다.(마 21:18-19, 막 11:12-14)
그래서 그 나무는 저주를 받아 고사되고 말았지요
내용이 없는 형식은 무익한 것이지요
아기는 잃어버리고 포대기만 붙들고 다니는 경우와 같기 때문이지요
중세시대 어느 산속에 기도원이 있었어요
그 기도원은 지은 지 오래되어 곳곳에 쥐가 너무 많아 예배를 드릴때마다
쥐가 뛰어다녀 예배에 집중할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시장에 나가 고양이를 한 마리 사 왔는데 그 후로는 쥐가 없어졌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예배 때마다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며 시선을 흩어놓아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 후로 예배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막내 수도사가 고양이를 줄에 묶어놓은 후에야
예배가 시작되는 일들이 반복되었어요
그리고 그 일은 반복을 넘어 이제는 예배의 정식 순서가 되어 버렸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고양이는 늙어 죽게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요
고양이를 줄에 묶어놓아야 예배가 시작되는데
이제는 고양이가 없으니 예배를 시작할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 수도사는 다시 시장에 가서 새로 고양이를 사 왔고 그 후에야 다시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되었어요
쥐를 잡기위한 원래의 목적은 망각 훼손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반드시 고양이가 있어야 되는 형식으로 변질된 것이지요
국가나 사회, 직장이나 가정에서 본말(本末)이 전도되거나
핵심가치와 지엽적 가치들이 뒤바뀌는 경우를 왕왕 볼수 있어요
이를 가리켜 ‘달 보라고 손가락질했더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 하지요
요즘 한일관계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대저 국가라는 공동체는 국민들이 잘 살수 있는 미래비젼이 있어야 하지요
과거에 얽메이면 미래가 없다 했지요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보면
삼국시대를 넘어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침략과 원한 관계는 끝이 없으며
특히 삼전도의 치욕은 잊어서는 안될 사건 이었지요
일본과도 끝없는 침탈과 강제점령은 잊을수 없는 굴욕이었지요
또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눈 북한 괴뢰 정권과도 사무친 원한은 끝이 없어요
그러나 이런 역사속에 파묻혀 와신상담만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21세기 현재는 세계가 지구촌이며 치열한 외교전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되었지요
어제의 적이 동맹이 되고 동맹이었던 나라가 적이 되는 냉엄한 현실이지요
국제외교는 신뢰를 쌓아야 하지요
신뢰를 쌓지 않으면 어느 나라도 믿지를 않아요
허울뿐인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제협약을 깨버리면
그 나라는 국제적 미아(패싱)가 될수 밖에 없어요
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듯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
손가락 끝만 보고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견지망월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
소 귀에 경 읽기 라고 하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있어요
아무리 가르치고 독려를 해도 안 되는 사람을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 하지요
또 불가에서 전해오는 말로는 인지망월(認指忘月) 득어집전(得魚執筌)이란 말도 있어요
인지망월(認指忘月)은 달을 잊어버리고 손가락만 생각한다는 뜻이고
득어집전(得魚執筌)은 고기를 잡고 나서 통발에만 집착한다는 뜻이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일송처사 *-
첫댓글 일송 처사남,
다시한번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글 감사 합니다
배우고 갑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나라를 경영함에는 크게 보고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