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중이란 누구인가? 절이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개인의 욕구를 이겨내고 가르침을 찾고자 하는 것이 중이며 절은 바로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장소이다.그럼 그러한 절에서 눈치를 봐야 하고 오해를 쌓으며 결국에는 균열이 생겨버린단 것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참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렵고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절이 있어서 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이 있기에 절이 있는 것이 있고 그 중이 있기 위해서는 본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본질을 어떻게든 지켜나가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 언제 태풍이 들이닥칠지 모르고 언제 지진이 날지 모르며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본질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그 절에 흉한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을 잃지 않는다면 그 불씨는 어떤 식으로든 남는 법이다. 물론 말이야 뭘 못하겠는가, 이렇게 말한 나도 내 자신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믿고자 하는 것을 툭하면 잊어버리고 넘어지고 방황하기 일쑤인데 하지만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이 절을 떠나간단 것은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보통 누군가가 떠나갈 때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변질자로 취급한다. 원래부터 자신들과 뭐가 달랐고 그의 사상은 어떠한 문제 있었으며 그는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떠나간 것이니 우리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는 거라며 모든 것을 떠나간 사람 탓하며 자신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자신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가 변질자일 수도 있고 그들 말대로 그는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혼자만의 길을 걷기 때문에 그들과 뜻을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과연 당신들이 있고자 한 곳은 그런 곳이냐고 뭐 이렇게 말한 나도 절이 싫어 떠난 중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중을 떠나보낸 절이나 절을 떠난 중이나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기는 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만약 중에게 이곳에는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고치지 않고 떠나간다면 절은 앞으로도 그 문제를 고스란히 가지고 갈 것이다. 물론 운이 좋으면 스스로 바꾸고 고칠 수도 있다.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떠나간 중을 변질자로 보고 그가 거론했던 것은 쓸데없거나 생각할 필요 없는 헛소리로 취급해댈 것이니깐 문제를 알고 있는 중이 떠나고서는 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고 그 문제를 겪어야 하는 자들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나는 그곳을 떠났으니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속이 편할 것 같은가 아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누가 뭐래도 자신은 그 문제를 포기한 것이고 자신은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절에 패배한 것이다 자신이 패했단 패배감 자신이 포기했단 좌절감은 결코 당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절을 떠날 때는 많은 생각과 각오가 필요하다.
첫댓글 그 안에서 나를 옭아맸던 동아줄은
나 스스로가 동아줄 이었다.
밖으로 나와야만 동아줄에 묶인
동료들도 풀어줄수 있고
나 자신도 더 이상 동아줄이
아닐수 있다.
패배감 이라는 울타리는
망상의 산물일뿐 존재하지
않는것을 존재 한다고 믿는
허상 일뿐.
취중실언 이었어요.
ㅋㅋ
왜케 어려워요?
절은 다리가 없고 문이있어 열고닫는 것이고
중은 다리가있으니 이동가능한
것이죠...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내얘기는 아닌것 같고...나무관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