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의 육체노동자에게는 토요일이어도 평온한 휴일은 아니다. 다만 녹진한 몸을 녹이는 달콤한 휴식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가 젊지 않기 때문이리라. 젊은 날의 책상머리에 앉아 끝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던 시절엔 마냥 앉은뱅이 책상이 무거우면 짐짓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에서 아둔한 머리를 몇시간이고 잡담으로 허송세월을 날렸다. 창작을 가장한 끝없는 난삽한 토론으로 동전을 수없이 투하하고 달콤 쌉싸름한 싸구려 다방커피를 마시며 그려지지 않는 그림을 한탄했다. 출퇴근의 자유로움은 퇴근시간을 한없는 수렁으로 끌어 들이고 언제나 늦은 귀가는 새벽의 알싸한 밤 공기를 벗삼아 마지막 신도림역 88번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얼치기 작가의 시간개념없는 짐짝같은 세월이었다.
한편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숱한 밤을 유령처럼 떠돌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던 그 젊음의 열정은 이제 없다. 밤을 새워도 다시 솟아나는 새순처럼 돋아나던 우후죽순은 세월의 흐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체력의 고갈은 버팀의 인내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베갯잇에 스르륵 무너지는 저질체력은 세월의 훈장이다.
하,까마득한 세월의 저편에 스러져간 젊음은 이제 없다. 반백을 한참 넘긴 검은 머리와 흰 머리의 조화로움을 간직한 인체는 더 이상 젊음을 용인하지 않는다. 어렵게 찾은 문학의 본질, 나이 마흔 여덟에 김훈의 소설을 읽고 다시금 마음을 다 잡으며 들어온 방송대의 문학의 길은 술에 절어 본분을 망각한지 오래다. 풀리지 않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향해 연금술사의 길을 같이 걸어 보지만 요원하다. 작가와의 동행은 나를 한껏 부풀려 놓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는 공허하다.
다시 시작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한 詩作은 공허한 메아리 되어 허공을 떠돌며 저승사자의 배고픔에 악귀되어 주린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나를 바라본다. 삶은 계란인데 늘 익지 않은 계란은 설사를 동반한다. 마음이 공허 한 날, 차라리 홀로 여행을 떠남도 좋으련만 본시 용기라곤 물 담을 종지 보시기도 없는 지라 늘 마음만 서성인다.
용기내어 문학기행을 따라한다. 서정성 짙은 황순원의 소나기는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서 배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간직 했을법한 소년시절의 그 알싸한 추억, 그날의 영상이 4d로 상영이 되고 머리에 떨어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휘잉 바람이 창문 넘어로 지나갔다. 국민학교 5학년 교실에 겅충 큰 다리를 낑가 넣고 모양만 흉내낸 책걸상엔 생명이 없다. 인공적인 조미료만 잔뜩 처 발라버린 그곳엔 자본주의 냄새만 가득하다. 짝꿍의 넘어오는 팔을 허용하지 못하고 못으로 움푹 패이게 줄 그어놓은 자욱은 없다. 흉내는 감동이 없다. 더 넓은 대지엔 낭만이 죽고 추억이 죽고 오로지 관광객을 끌여 들이기 위한 위선이 난무한다.
부럽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이 커다란 대지를 허용한 그들에게 보내는 관용이다. 단지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몇줄의 글에 유치하는 그들의 유치찬란함에 박수를 보낸다. 완연한 봄이기를 거부하는 속살을 얼어붙게하는 차가운 바람이 두터운 옷을 버리고 나선 나의 얄팍함을 탓하게 할 뿐 다른 뜻은 없다. 217억원을 투자한 양평군의 군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긴 화천군도 살아있는 이외수에게 엄청난 공간을 부여 하였으니, 이외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시인은 직업이 아니지만 ,먹고사는 것은 다 직업이다. 다만 상위 1%에게 통용되지만,,,,
지자체는 상위작가에게도 통용된다. 비근한 예로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현실화 시키는 작업이 그것이다. 장흥군에 홍길동, 백령도에 심청이, 심지어는 내 고향에도 우륵을 유치한다고 사단법인까지 생겼다. 고령군하고 싸운다고 홍대교수까지 영입한 상태다.
역사의 지명까지 포장을 하고,,,,
두물머리에 서서 강을 바라본다. 낙엽 진 나무는 쓸쓸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철사줄 처럼 가느린 몸매가 아름답다. 구멍난 나무에 시멘트로 공구리 쳐서 허약한 몸매를 보충한다. 파란 나룻배가 온 몸을 묶인 채 오도가도 못한체 바람에 나부낀다. 핸드폰에 부착된 카메라 기능은 현대인의 축복이다. 누르면 누르는대로 그대로 각인 시켜주니 문명은 분명 축복이다.
회장은 술을 좋아해야한다, 술 못먹는 회장은 겨우 막걸리 3병, 소주2병도 많다한다. 이번 회장은 통이 크다. 막걸리 한박스. 소주 한박스. 쳐다만 보아도 마음이 부럽다. 식당에서 먹는 밥은 모두가 행복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봄을 먹고 ,배를 먹으니 이 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 가마솥에 눌은 누룽지까지 비우니 ,아휘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는 옛 노인의 해송자 심어놓고 서로의 관을 내가 먼저, 니가 먼저하는 풍류가 떠 오른다.
다산 선생의 생가에 내려 막걸리를 한병 따로 챙긴다. 강진 유배18년 동안, 숱한 저서를 남기며 ,한국의 저술의 살아있는 면목을 다시금 새긴다. 與猶堂에 들러 구비된 색연필로 벅벅 문질러 탁본을 뜬다.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 하듯 경계하라. 밖을 나오니 유배를 마치고 다시금18년 동안 후학을 가르치던 그의 말년의 생가가 나를 반긴다.
다산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태어나셨는데, 나는 그로부터 200년후인 1962년 음력 6월11일에 태어났다. 음, 5일 먼저 내가 태어 났구만, 히히, 이덕무는 나랑 같은 6월11일이다. 강호동이도 나랑 같은 6월11일생이다.
계단을 오르니 , 임금이나 터 잡을 곳에 그의 유언에 집 뒷동산에 장사를 지내 묘를 잡으니 반풍수인 내가 봐도 명당이다. 가지고 간 막걸리를 상석에 올리고 생애 처음으로 절을 올렸다. 두번 절하고 막걸리를 무덤에 뿌렸다. 문득 장풍이 불더니 영롱한 기운이 묘지를 휘 가르더니 그기운이 나를 덮쳤다. 아찔한 현기증, 내 기운을 후학에게 주노니 부디 집필에 힘써서 그 덩치를 살리시어 불세출의 명작을 남기시게, 아 ,나는 그의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이후 못다한 글을 나로 하여금 쓰시게 하셨다. 경이로운지고, 필력을 받은 나는 그저 감격에 겨워 휘적휘적 떨리는 다리를 겨우 고정시키고 ,두물머리가 합쳐 지는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 다산에게 인정받은 몸이야. 어쩌라고, 건드리지마, 앙돼요.
첫댓글 오랫만에 쓰셨네요~~ㅋ
젋지 않은 혈기는 때로는 휴식을 요구합니다. 덕분에 겸손을 배웁니다.
@호동 오랫만에 글을 올려서 단지 반가움에 인사를 했는데, 인사댓글도 수정했습니다.
그리고,다행입니다~~ 겸손을 배웠습니까~ ! 호동님께 저도 뭔가??를 배우고 싶습니다~~
앞으로 호동님께 좋은 모습을 배우고 싶은 한사람입니다~^^
기분좋은 하루 됩시다~~♬♬♬
글이 길어 속독을 했습니다.울 누나 하나(66세)가 거기나와 글만 썼다하면
무조건 일등이지요. ㅎㅎ 시,소설,시나리오 할 것 없이.. ㅎㅎ
(예, 비씨카드배 1회.2회,각 부분 다 일이삼등 ㅎㅎ 그것도 형제간들 이름으로..)
솔직히 죽고못사는 내 여인도 거기에 둘 있었고.. ㅎㅎ
말이 많아 글도 깁니다. 고질병입니다.
귀양과귀향.
좋았것소^^*
다산의 18년에 비하면 , 짧은 귀양, 조용히 사는것이 무병장수의 지름길입니다. ㅋㅋ
다산의 기를받아 멋찐 지필하시와요~~~술김에 헛생각 헛것이 보인것은 아닐테고...
조상의 얼을 받들어... 충성~!!
피리핀에서 잘 지내삼, 꽃샘추위가 몸을 어지럽게 합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추위 걱정없어 좋겠습니다.ㅋ
전 의미없이 2주전 다녀 왔습니다
다시한번 유래를 배워갑니다
철사줄 같은 앙상한 나무가지를 다시금 보니 참 좋습니다.
난독이라 두번 읽었더니 좋습니다..ㅎ
두번 읽게해서 송구합니다.
가본 곳이지만~ 나자신 이런마음이 들엇는지 궁금해~
신사님의 포즈에선 낭만이 보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바람이 불더이다. 그 바람은 이내 노래가 되어 바람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필력이 수려하십니다 ^^
제가 붓글씨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은 엉망입니다.
따라 가고 싶어도 잘 안됩니다...
제가 오히려 거사님 뒤를 졸졸 따라 다닙니다. 글 머찐 글에 탄복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