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반속의 다짐
酌酒與君君自寬(작주여군군자관),
그대에게 술 따르니 그대 마음 푸시게.
人情飜覆似波瀾(인정번복사파란).
사람 마음은 파도처럼 쉼 없이 뒤바뀐다네.
白首相知猶按劍(백수상지유안검),
백발 되도록 사귀었대도 칼을 빼들 수 있고,
朱門先達笑彈冠(주문선달소탄관),
출세한 선배가 갓 벼슬길에 나선 후배를 비웃기도 하지.
草色全經細雨濕(초색전경세우습),
초록 풀은 가랑비 덕분에 촉촉해지지만,
花枝欲動春風寒(화지욕동춘풍한).
꽃가지는 움트려는 순간 찬 봄바람에 시달리기도 한다네.
世事浮雲何足問(세사부운하족문),
세상사 뜬구름 같거늘 무얼 더 따지겠는가.
不如高臥且加餐(불여고와차가찬).
느긋하게 지내며 몸 보양하는 게 차라리 낫지.
―‘배적에게 술을 권하며(작주여배적·酌酒與裴迪)’ 왕유(王維·701∼761)
* 酌酒(작주) : 술을 따름
* 與君(여군) : 그대에게 줌
* 自寬(자관) : 스스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짐
* 飜覆(번복) : 뒤집힘, 빈부귀천에 따라서 인정이 뒤바뀜
* 朱門(주문) : 붉은 칠을 한 문.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의 집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
* 白首相知(백수상지) : 백발이 되도록 오랜 사귄 벗
* 按劍(안검) : 손에 칼을 댐
* 朱門先達(주문선달) : 부귀를 누리며 앞서 출세한 선비
* 彈冠(탄관) : 관의 먼지를 턴다는 뜻으로, 관리가 될 준비를 하는 일. - 한(漢)의 왕길(王吉, 자字 자양子陽)과 공우(貢禹)는 친한 벗인데, 당시 사람들이 ‘王陽在位 貢公彈冠’이라 했음.
* 草(초) : 노인의 비유
* 花(화) : 훌륭한 인물의 비유
* 浮雲(부운) : 뜬구름을 가리키는 말로 세상일이 그처럼 허무하다는 뜻임. 직유법
* 加餐(가찬) :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취하는 것
관료 세계의 부조리와 염량세태의 매정함을 토로하며 후배에게 건네는 처세의 조언.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세태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담았다. 술잔을 받는 배적(裵迪)은 시인보다 열네댓 살 어렸지만 둘은 친구처럼 지냈고, 특히 왕유가 만년에 장안과 별장을 오가며 벼슬과 전원생활을 겸하고 있을 때 둘 사이가 각별했다고 한다. 그런 터에 시인이 이런 푸념을 주저리주저리 되뇌다니 좀 새삼스럽긴 하다. 어쩌면 선배로서 노파심이거나 스스로에게 탈속(脫俗)의 의지를 재삼 각인시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뜬구름 같은 세상사’이니 이것저것 따지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느긋하게 지내자’는 권유, 혼탁한 인정세태로부터 영혼의 품위를 지켜내자는 이 반속(反俗)의 다짐을 친구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시에서 초록 풀과 꽃가지의 예로써 부당한 인간관계를 빗댄 발상이 흥미롭다. 별것 아닌 풀은 가랑비의 세례를 오롯이 받아 무성하게 자라는 데 비해 한창 물오른 꽃가지는 움트려는 결정적 순간 찬 바람의 방해에 부딪힌다. 얼토당토않은 비호로 벼락출세하는 소인배가 있는가 하면 시샘과 중상모략으로 소외되는 인재도 있다는 비유다.
✵ 왕유(王維: 699∼759) : 중국 당 나라 중기 시인. 서가(書家). 화가(畵家). 오언시(五言詩)에 능하며 진(晉)의 '도잠(陶潛)', 송(宋)의 '사영운(謝靈運)'의 계통을 따라 정밀하고 담박(淡泊)한 자연을 즐겨 읊었다. 그의 시문을 모은 <왕우승집(王右丞集)> 28권이 있다.
✵ 배적(裵迪: 716∼?) : 성당(盛唐) 때 시인. 이 시는 그가 진사시에 떨어졌을 때 위로하며 지은 시 젊은 시절에는 왕유, 최흥종(崔興宗)과 친해 같이 종남산(終南山)을 거닐면서 서로 화창(和唱)했다. 왕유와 각각 5언절구(五言絶句) 20수를 지었는데, 망천의 여러 경치를 노래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1월 19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