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의 녹(祿)을 먹는 고위 인사들을 예금이 많은 순으로 줄을 세워 본다면?' '그들은 어느 회사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까?' '부동산이 많은 10명은?'
며칠 전 국회의원, 판검사,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5004명의 고위 공직자 재산이 공개됐지만 여전히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순 없었다. 1993년 이후 22년째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인데도 여전히 아날로그 식으로 자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벽돌 두께의 책자 여러 권에 재산 내역을 인쇄해 준 데다 같은 내용을 담은 '전자 관보(官報)'는 PDF 파일 형식이라서 다양한 방식의 계산과 순위 정렬을 클릭 몇 번으로 할 수 있는 엑셀 등 계산 프로그램으로 바꿀 수 없었다.
올해는 좀 다를 줄 알았다. 안전행정부가 박근혜 대통령까지 참석한 자리에서 "'정부 3.0' 시대가 시작됐다"고 야심 차게 선언한 게 작년 6월이고, 그 이후 처음 맞는 '고위 공직자 재산 종합 공개'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방향 행정(1.0)'이나 정부와 국민의 '양방향 소통(2.0)' 시대를 뛰어넘는 개념의 '정부 3.0'은 국가가 보유한 방대한 정보 데이터를 국민과 공유해서 새로운 일자리와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기상청이나 공군 등이 수집한 날씨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민간에 공개하면 창의적 인재들이 이를 토대로 온갖 형태의 생활 날씨 서비스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 3.0' 시대에 공직자 재산 공개를 예전 방식 그대로 한다는 건 모순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담당 공무원들에게 "PDF 파일이 아닌 엑셀 파일로 자료를 달라"고 하면 "그렇게 정리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이미 엑셀 파일 방식으로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을 것이란 정황은 많다. 정부가 재산 공개 때 내놓는 보도 자료를 보면 공직자들 재산 평균과 재산 총액 상위 10명 명단, 재산 증가자 수, 감소자 수 등이 적혀 있다. 재산 10억원 이상은 몇 명, 20억원 이상은 몇 명 식으로 액수별 분포 현황도 표로 내놓는다. 엑셀 같은 계산 프로그램에 원자료를 입력해놓고 있지 않으면 정리해 내기 어려운 분석이다. 만약 이를 공무원이 수작업으로 했다면 엄청난 행정력 낭비다. 그런데도 엑셀형 원자료는 주지 않고 정부가 분석한 몇몇 결과만 보도 자료에 싣는 것은 국민과 언론에 "추가적인 분석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과 같다.
데이터베이스화한 고위 공무원 재산 자료를 내놓을 때 국민의 공직자 감시는 더 효율적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공직자들이 재산을 어떤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석해서 재테크나 사업 방향 설정에 활용하는 창의적인 국민도 나올 수 있다. '정부 3.0'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고위 공무원 재산 공개'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