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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奮不顧身(분불고신)
[字解] 奮: 떨칠 분. 不: 아닐 불. 顧: 돌아볼 고. 身: 몸 신)
[意義]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함을 뜻하는 말이다.
[出典]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보임소경서>를 읽으면 사마천이 보이고, 사마천을 알면 《사기》가 보인다. 사마천은 역사서의 완성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고뇌에 찬 심정을 <보임소경서>라는 편지글에서 술회하였다. <보임소경서>는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비통함과 치욕, 그리고 역사서의 완성이라는 의무(義務)를 짊어진 한 천재(天才)의 집념이 뛰어난 문채로 묘사된 명문장(名文章)으로 알려져 있다.
<보임소경서>는 사마천이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답장으로 보낸 개인적인 편지이다. 사마천은 출옥 후 중서령(中書令)에 임명되었다. 겉으로 보면 궁중의 중요한 직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개 환관(宦官)의 신분으로서 내정(內廷)에서 시중을 들었으므로, 일반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 기간에 임안은 자신의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는 편지를 사마천에게 보냈다. 임안은 사마천이 중서령이라는 관직을 이용하여 자신이 선처되도록 힘 써줄 것을 부탁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과거 자신이 당했던 비통한 교훈과 어두운 현실에 대한 심각한 인식 때문에, 임안의 부탁처럼 행하기가 어려워서 내내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이 일단 처형되고 나면 영원히 답장할 기회를 잃고, 이것이 또 다른 평생의 한(恨)으로 남게 될까 걱정하여, 인정상 이 답장을 썼던 것이다.
* 임안(任安): 자는 소경(少卿). 형양(滎陽) 사람으로 청년시절 매우 가난하였으나, 후에 대장군 위청(衛靑)의 시종(侍從)이 되어다가 그의 추천으로 낭중(郎中)이 되었다. 그후 관직은 익주자사(益州刺使)에 이르렀다. 기원전 91년, 여태자(戾太子)의 반란, 즉 무고(巫蠱)의 난이 발생하였다. 당시 임안은 경성(京城) 금위군(禁衛軍)의 북군(北軍)을 관리하는 군관으로 있었는데, 그는 여태자의 출동 명령을 받고도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북군의 한 말단 관리의 모함으로 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처형될 상황이 되었다. 임안은 처형되기 전에 사마천에게 구원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사마천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답장마저도 제때에 하지 못하였다. 그해 겨울, 임안은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에 처해지고 말았다.
[解義] 이 성어는 사마천 이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자신이 변호했던 장군 이릉 (李陵)의 인품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 저와 이릉은 같은 시중이었으나 평소 서로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자기의 길을 걸어 일찍이 함께 술을 마시며 은근한 기쁨을 나눠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릉은 사람됨을 보건데 비범한 선비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사람과 사귐에 신의가 있고, 재물에 임해서 청렴하며, 주고받는 데는 의롭고, 분별함에 겸양이 있고, 아랫사람에게 공손했습니다. 항상 분발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의 위급함에 목숨을 버릴 것을 생각하였으니, 그것은 평소에 쌓은 바였습니다[常思奮不顧身,以徇國家之急,其素所蓄積也]. 저는 국사의 위풍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原文] ..... 夫僕與李陵,俱居門下,素非能相善也. 趣舍異路,未嘗銜盃酒,接慇懃之餘懽. 然僕觀其爲人,自守奇士,事親孝,與士信,臨財廉,取與義,分別有讓,恭儉下人. 常思奮不顧身,以徇國家之急,其素所蓄積也. 僕以爲有國士之風.
[English] -So brave as to care not one's body.[분불고신(奮不顧身)] -Neck or nothing. [필사(必死)적으로] -At all hazards.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 hazard: 위험, 모험 -To take one's life in one's hands(어리석게도 위험한 짓을 하다, 모험하다) -To move heaven and earth. [백방으로 노력(努力)하다] -To go all lengths. (무슨 짓이든지 하다)
출처:풀어쓴 중국고전.http://blog.naver.com/hjh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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