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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六. 눈물이 마르지 않아.
매일밤 친구들과의 음주 생활이 계속 되었다.
몸이 말을 안 들어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고 할 때까지 나는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왜 하필 그런 사람을 만나야만 했는지 계속해서 내게 물었지만
그것은 답이 없는, 공허한 질문일 뿐이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걱정하는 엄마가 내 눈에 들어왔을 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유학원에서 상담을 기다리는 중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상담을 받는 사람이 제법 많다.
일본으로의 유학을 진지하게 계획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유학 간 친구들의 이야기와 인터넷을 통해 몇 군데의 유학원을 정해놓고 상담을 신청하였다.
앞 사람이 나오고 나는 상담실로 들어갔다.
엄마같이 푸근한 인상의 여직원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나이 들어 유학 결심하기 힘든데 대단하다며 나의 용기를 칭찬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의 나이로 인해 입학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며 같이 걱정해주었다.
상담을 받고 나니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유학의 밑그림이 확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직원이 챙겨주었던 자료를 챙겨 들고 나는 상담실을 나섰다.
상담실 문을 닫고 돌아서는 순간 나는 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녀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워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나를 못 보았기를 바라면서…
“경주 언니, 잠깐만 기다려요.”
이런 젠장! 나는 몸을 돌려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와 민지는 유학원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은 몇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음료수만 들이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민지였다.
“언니… 저 미국으로 유학 가요. 3월에…”
“정말? 일본 아니고?”
“네. 일본으로 발령받아서 가려고 했지만… 그냥 회사 관두고 미국으로 가요.”
“너같이 이쁜 애가 공부까지 많이 하면 나 같은 애는 어떻게 살라고?”
“흠… 언니 나 공부하러 가는 거 아니에요. 한국에 있거나 일본에 가거나… 그렇게 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도망가는 거에요.”
“도망? 니가 왜?”
“사실 나… 언니가 너무 미워요.”
엥? 뭔 이야기야? 니가 날 왜 미워해? 미워할 사람 주변에 되게 없는 모양이네.
“전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싶은 거 못 가진 적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물론 지금도 잘… 받아들일 수가 없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료를 내 애인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한 남자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내게 전혀 관심이 없더라구요.
하지만 가능할꺼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내 남자가 될 수 있을꺼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어요.
나는 조바심이 났어요.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내게로 향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가 아르바이트를 구한단 이야기를 했을 때
잘 알지도 못하는 선배까지 동원해서 모델 일을 구해줬어요.
그와 만날 구실이 필요했으니까요.
그가 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물론… 물론 마음은 너무나 아팠죠.
하지만… 나와 자주 만나다 보면 마음이 바뀔 수 있을 꺼라고…
그럴꺼라고 저 자신에게 수백 번, 수천 번을 되뇌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취해서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달려갔어요…
엉망으로 취한 그가 내게 물어봤어요.
자기를 좋아하냐고… 자신도 자기의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자기가… 자기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냐고…
처음엔 나를 힘들게 만들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가 내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래, 내게 진짜 기회가 온거다.
그가 나를 사랑하겠끔 만들어줄 테다.
하지만… 하지만요… 언니… 그건 정말 제 착각이었어요. 그 사람은요…
그 사람은 언니를 너무 사… 사랑해서… 몸은 나와 같이 있지만
마음은 항상… 항상 다른 곳에 있었어요.
나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는 내가 아닌…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이 있다는 생각이…
이건 정말 자존심 상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가끔 내게 경주라고… 경주라고 불렀어요.”
그녀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냅킨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눈물을 닦더니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들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저요… 저 독해서 잘 안 우는데… 요즘 정말 자주 우는 거 같아요.
음… 그래도 언니 앞에서 이렇게 울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하네.
언니… 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그에게 헤어지자고… 제가 먼저 말했어요.
저한테도 불가능한 일이 있더라구요.
그는… 그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료가… 료가 언니를 정말 좋아해요.
도망치듯 온 한국이 정말 싫었는데 언니 때문에 좋아졌대요.
매일 일본인 친구들이랑 허무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언니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대요.
다시는 사진이나 촬영 같은 거… 그런 거 안 한다고 다짐했는데 언니 때문에 해야만 한대요.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언니와 있으면 행복하대요.
다른 남자한테 절대 주고 싶지 않은데 언니가 좋아하니까 그냥 보내줘야만 했대요.”
그녀는 또 잠시 말을 멈추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내가 아니면 민지를 누가 이해할까?
만약 재민씨를 놓지 않고 잡았다면 언젠가 내가 선민에게 할 말들이 아니었던가?
료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내가, 아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민지에게, 료에게 나는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너무나 그들이 안쓰러워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울고 싶은 사람은 난데 언니가 왜 울어요?”
“아니, 난…”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언니한테 이런 이야기 할 자격은 아니지만…
아니다. 자격 된다. 언니 때문에 상처받았으니까.
이팀장님 이야기 들었어요. 소문은 금세 퍼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언니한테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언니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료예요.
료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물론 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료에게 갈만큼 그렇게 뻔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에게 언니가 필요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런 대답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녀도 다시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스타벅스에서 1시간 가까이를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민지는 내게 료와 다시 만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힘들다는 이유로 그에게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내 사랑이 더 중요하여 그의 마음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었다.
내겐 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고민하지 말자! 고민할 일이 아니지…
그때,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효은의 문자였다.
사진 촬영 차 강원도에 왔는데 눈이 너무 예쁘게 내렸다고.
그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낸다고 했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화질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한 그 곳의 모습은 너무나 좋았다.
나는 당장 짐을 싸서 그 곳으로 가고 싶단 충동이 일었다.
이럴 때 차가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 동영상이 끝났다.
다시 보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잘못 눌러 보통 때의 액정 화면이 나왔다.
나는 동영상을 찾으려고 사진 버튼을 눌렀다.
저장된 동영상이 2개라는 표시가 떴다.
이상하다? 이거 밖에 없을 텐데…
뭐가 찍혔는지 궁금해진 나는 다른 동영상을 플레이 시켰다.
그러자, 료의 얼굴이 나왔다. 헉!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 속의 그는 이리저리 핸드폰을 돌려가며 자신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아네고, 나 료! 어… 이런 거 너무 어색하고 처음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뭐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 경주가 좋아.
아… 사랑… 사랑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음… 만나면 행복하고 자꾸 웃음이 나.
내가 자꾸만… 시비를 거는 건 경주가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거나…
그렇다고 생각이 들면 화가 난다고나 할까?
아네고가 아니, 경주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야!”
동영상은 ‘야!’라는 내 목소리가 들리더니 끝나버렸다.
몸 속에서 힘이 쑥하고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운과 함께 내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멈추고 싶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울고 또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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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고 화이팅을 외쳐주시며 제 미천한 글을 기다려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과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마지막 한 편이 남았네요! 마지막 편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와~ 기다렸어요^^ㅋ 료랑 잘 되는거지요?^^*ㅋㅋ
글쎄요~ 하하하! 기다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려요! 2006년 마무리 잘하세요!
캭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그나저나 한편?한편?????????벌써??????ㅠ_ㅠ 흑 슬프내요 ㅠ
그러니까요... 벌써 한 편만 남았네요! 마지막까지 힘내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료료료료! 료랑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료료료료! ㅋㅋ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마지막까지 힘내겠습니다.
정말 잘봤어요~우연히 들어온 싸이트였는데 제목이 맘에들어서 보게됐거든요 첨부터 계속 쭉~읽게 되더라구요 23편까지 보구 너무 궁금해서 많이 기다렸는데 ~~가슴이찡해오네요 해피앤드면 좋겠구요~ㅋ 마지막 한편만 남았다니 많이 아쉬운데요~~~^^
엽기타이거님 정말 감사합니다. 참 이상하네요! 이런 글로 하나로 인해서 모르던 사람과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누군가가 제게 힘내라고 이야기해주고... 참 감사하고 좋다라는 기분이 듭니다.
경주가 료랑 잘 되길 바래요^^
넌내게그리움님 그동안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마지막 한 편 남았지만 그것도 꼭 읽어주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