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일이 있은 지 3일이 지났다.
그 동안 제로스는 리나의 저택을 방문하지 않았다.
가우리는 제로스가 몸이 안 좋아서 집 밖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화가 많이 났을거야. 그에게 그런 이야길 하지 말았어야 했어........’
아멜리아는 제로스가 몸이 안 좋은 것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멜리아는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피리아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친애하는 피리아 언니에게
피리아 언니. 휴가는 잘 보내고 계시나요?
언니가 있는 라플라스라는 곳은 일년 내내 하늘에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드넓은 대양에서 바다 내음을 실은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면서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여기 제피리아는 며칠간 우중충한 날씨에요.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맑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요. 날씨 탓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우울해질 때가 있어요.
언니가 라플라스에서 유쾌하게 지내고 계시길 바라야 하건만 전 정말 이기적인가 봐요.
피리아 언니. 전 솔직히 언니가 하루빨리 이곳 제피리아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리나 언니가 절 동생처럼 어여삐 여겨 주시지만 그래도 모든 마음을 털어놓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여긴 제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줄만한 친구가 없어요. 너무 외로워서 빨리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가고 싶을 정도에요.
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지면 역시 그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어요.
제로스......그는 이제 더 이상 저를 찾아오지 않아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거에요.
전 언니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어 기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는 정말 제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종종 후회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언니는 현명하시니까요. 언니가 무엇보다도 절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언니가 제게 진심으로 대해 준만큼 전 지금까지 언니의 기대에 부응해왔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노력할거에요.
언니에게 편지를 쓰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저의 우울한 편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언니를 하루빨리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행복하길 빌어요.
언니를 좋아하는 아멜리아가‘
------------------------------------------------------------------------------
“누군가가 그 병아리에게 나를 험담하는 편지를 썼어요.”
제로스는 방 주위를 왔다갔다 거리며 가우리에게 말했다.
“그걸 누가 썼는데? 짐작이 가는 사람이라도 있어?”
가우리가 책상에 앉아 제로스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그걸 알았다면 그 녀석은 벌써 죽었을 거에요...... 아멜리아는 어때요?”
제로스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거 같았어. 네가 몸이 아프다고 하니까 많이 아프냐고 걱정하면서 물어보더라고. 꼭 그렇게 까지 해야겠어?”
제로스는 아멜리아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자신을 보냈으니 당연히 마음이 편치 않겠지.
“내가 아멜리아를 다시 만난다면 그건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결국엔 인정하는 게 된다구요.”
그 이유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상대방에게 너무 자주 얼굴을 내밀다 보면 상대방은 자신을 너무나도 편하게 대할 우려가 있었다.
심할 경우 상대방은 그 사람이 더 이상 남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게 되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을 도로 회복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제로스는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은 서로 떨어져 지낼 필요가 있었다. 그 사이에 제로스는 누가 자신에게 그런 편지를 보냈는지 알아볼 작정이었다.
제로스는 아멜리아가 자신으로 인해 애타하는 것을 그대로 두기로 결심했다. 자신에게 냉담하게 대한 벌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멜리아에게 제가 요즘 잘 먹지도 못한다고 전해주세요.”
“너네들...... 정말 복잡하다.”
가우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제로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멜리아가 어디 출신이라고 했지?”
“세일룬........혹시 세일룬 출신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나?”
“알프레도.”
“알프레도요? 하지만 그는 지금쯤 집에 가 있을 텐데요.”
가우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금 여기에 와있어.”
가우리의 말에 제로스는 손바탁을 탁 쳤다.
“알프레도라면 그럴 만도 하겠군요. 작년에 내가 알프레도의 여자 친구를 건드렸거든요.”
“내가 보기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네? 그건 무슨 소리죠?”
가우리는 약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제로스에게 얘기를 꺼냈다.
“너. 미완 알지? 내 옆방에 있는 녀석 말이야.”
“아......그 여장을 즐겨 한다는 사람 말인가요. 방학동안 기숙사에 있나 보죠?”
“그 녀석 방에 알프레도가 자주 놀러오거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지난번엔 눈으로 직접 보기까지 했다니까.”
가우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로스는 터쳐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미완씨야 성정체성을 의심할 만한 행동을 자주 보이기는 했지만 알프레도는 좀 의외네요. 항상 자신이 남자답다는 걸 보여주며 으스대는 사람인데 역시 사람 속은 모르는 거군요.”
제로스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가우리에게 말했다.
“가우리씨. 저에게 미완의 방 열쇠를 구해다 주세요.”
“방 열쇠를 갑자기 왜? 그걸 어디다 쓰려고?”
가우리의 말에 제로스는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한밤중의 습격이라고나 할까요.”
“이봐. 걔네들까지 끌어들이는 건 좀 심하잖아. 더구나 그런 걸로.... 게다가 나까지 불똥이 튀면 어쩌려고 그래?”
가우리의 말에 제로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우리씨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일은 없을 거에요. 알프레도와 미완에게도요. 전 그 사실을 좀 이용하려는 것뿐이에요. 가우리씨는 여기 기숙사 관리인이니까 열쇠를 빼돌리는 건 쉬운 일이잖아요.”
제로스는 주머니에서 티켓 한 장을 꺼내 가우리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거 돈으로도 구하기 어렵다는 음식 박람회 입장권이에요. 이 입장권을 가진 사람만이 각 지역의 다양한 요리를 공짜로 시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구요. 게다가 올해엔 그 유명한 드래곤 요리가 나온다고 했어요.”
가우리는 제로스의 말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제로스의 손에 들려있는 티켓을 빼앗으려 했다.
제로스는 가우리의 손을 잽싸게 피하며 말했다.
“가우리씨는 그냥 옆방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알프레도가 오면 제게 연락을 해주면 된다구요. 어때요? 내 제안을 받아들일건가요?”
가우리의 눈동자는 이미 살랑거리는 티켓을 줄곧 따라다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초인적인 힘으로 그 유혹을 누르고 대답했다.
“그래도 어째 좀 꺼림칙한걸.....”
제로스는 실실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티켓을 한 장 더 꺼냈다.
“여기 한 장 더....”
“오케이!!!!!!!!!”
가우리는 날랜 몸동작으로 제로스의 손에 들려있던 티켓을 낚아채었다.
이로써 두 사람의 거래는 성립되었다.
--------------------------------------------------------------------
아....6장이 끝났네요.
원래 더 이어 쓰려고 했지만 길이가 길어져서요..^-^
참고로 제가 패러디한 영화의 원재는 'Cruel Intentions' 즉 잔혹한 의도랍니다.
이 제목이 사실 더 깔끔하기도 하고 어딘가 음모의 냄새가 좀 풍기기도 하고 그래서 좋긴 한데
초점을 두 사람과의 관계에다 더 맞추려고 하다보니 이 제목으로는 좀 안되겠다 싶어서 우리나라에서의 제목을 썼어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영화도 여러번 보고 원작 소설인 위험한 관계 까지 읽어 보았는데...
사실 소설에서의 제로스보다는 영화에서의 세바스찬이 더 악한 인물이고
세바스찬보다는 원작 소설에서의 발몽이 더 나쁜 놈이었습니다.;;-_-;;
아무튼...;; 제 소설을 꾸준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회수가 원래 높은 두 분 소설 사이에 끼어서 5회분 조회수가 좀 암울 하기는 하지만...;;;-ㅂ-
저의 소설을 읽어 주신 분들 감사해요~^-^
첫댓글 티켓 나도 가지고 싶어라~! 흠.......
음식 박람회 입장권...^^; 제로스가 무슨 일을 꾸미려고 그러는지 궁금하네요... 7편도 기대할게요.
오늘 발견하고 읽었답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
열심히 쓸게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