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년, 가이우스 모델리우스씨가 세상을 떠났다. 59세로, 당시에는 천수를 누렸다고 간주되었을 것이다.
마르쿠스군-이제는 마르쿠스 모델리우스씨로 부르자-이 결혼하고 2년이 지난,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계절에 가이우스 모델리우스씨는 조용히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유언은 이미 생전에 알려져 있었기에, 새삼스럽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속인으로는 엑삼플리아씨와 마르쿠스씨, 푸블리우스군이 지명되어 각각 재산의 1/6, 1/2, 1/3을 나누어 가지도록 되어 있었다.
모델리우스씨는 사망 직전에 총 17.5유게라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7유게라는 공유지이지만, 앞서의 예와 마찬가지로 이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이를 '과세되는 사유지'로 취급할 것이다. 이 토지는 어떻게 분배될까? 1/2, 1/3, 1/6의 지분은 각각 8.75, 5.83, 2.92유게라에 해당한다. 소농가정의 대단치 않은 농장임에도, 모델리우스씨네 토지는 다소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 이대로라면 상속인 모두가 상당히 흩어진 형태로 토지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엑삼플리아씨 몫의 토지는 차후 누구에게 상속될지를 놓고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엑삼플리아씨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기에 당장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엑삼플리아씨도 세상을 떠날 것이며 푸블리우스군은 전역하여 돌아올 것이다. 우리 모델에서는 그러한 종류의 분쟁을 표면화시키지 않겠지만, 이는 계산의 편의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해, 푸블리우스군이 5년만에 전역하여 돌아왔다. 우선 아버지의 묘소에 다녀온 뒤 푸블리우스군은 마르쿠스씨로부터 그동안 있었던 여러가지 일에 대해 들었다. 마르쿠스씨의 눈에 비친 동생은, 몸 여기 저기에 상처가 있고 말수는 적어졌다.
마침내 푸블리우스군이 집에 돌아와서, 이 가정에는 성인만 4명이 되었다. 마르쿠스씨와 네이보리아양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이쯤에서 돌이켜보면, 0년 시점에서 모델리우스씨네가 이용하던 토지 16.7유게라는 미성년자 2명을 포함한 5명의 가족을 간신히 부양할 수 있는 크기였다. +12년 현재 농장은 17.5유게라이나, 공유지에 대한 네이보리우스씨의 지분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0년의 상태를 복구하지 못했다. 이 가족의 토지가 증가할 가망성은 당분간 없다. 푸블리우스군은 현재 22세로, 아마 앞으로 5년간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부가 지참금으로 가져올 토지가 없다. 그러나 마르쿠스씨와 네이보리아양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늘어나고, 또 성장하면 필요한 열량은 증가한다.
이제 우리는 시험삼아, 다음과 같은 시간표를 설정할 것이다.
+13년 마르쿠스씨에게 딸 1 추가
+16년 마르쿠스씨에게 아들 1 추가
+17년 푸블리우스군, 결혼
+19년 마르쿠스씨에게 아이 1 추가, 푸블리우스군에게 아이 1 추가
+21년 엑삼플리아씨 사망
+22년 푸블리우스씨에게 아이 1 추가
+25년 푸블리우스씨에게 아이 1 추가
+30년 마르쿠스씨의 큰 딸, 결혼
첫째를 딸로 설정한 것은 지참금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이다. 시간표상에서 추가되는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살아남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 외에도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다수 태어날 것이다. 그 소모 열량을 추량하기 위해, 결혼후 2년~17년까지 일당 1,000kcal의 소비를 더할 것이다.
그리고 몇가지 '호의적인' 조건을 붙일 것이다. 푸블리우스군의 가상의 신부는 결혼시 5유게라의 사유지를 지참금으로 가져온다.(즉, 이 토지는 과세되지 않는다) 분가에 따른 부대 비용, 즉 집을 새로 짓는 비용이나, 토지에 구획을 새로 나누어서 발생하는 자투리 등은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 네이보리우스씨는 사위네 식구가 차츰 많아지는 것을 보고, +13년 시점부터 도의상 자신의 지분을 포기한다. 마르쿠스씨의 큰 딸은 지참금으로 단 3유게라의 공유지만 가져간다.
다음은 일반적인 조건이다. 두 가정의 농장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마르쿠스씨는 자신과 엑삼플리아씨의 몫을 합쳐 11.7유게라, 푸블리우스군은 10.8유게라를 가진다. 각 농장은 0년 시점 가이우스 모델리우스씨의 농장 구성과 같은 비율로 구획된다. 즉, 마르쿠스씨의 경우 유게룸 단위로 밀밭 8.3(3.3은 공유지), 포도 0.7, 올리브 0.6, 텃밭 0.7, 목초지 1.4. 푸블리우스군은 밀밭 7.7(1.7은 공유지), 포도 0.6, 올리브 0.6, 텃밭 0.6, 목초지 1.3이다.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이 전체적으로 0.5유게룸 증가했다. 생산물은 재산 분할 당해부터 바로 수확된다고 가정할 것이다.
또한 총 소득과 비교할 대상으로, 최저생활비선을 설정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저생계비란 그정도가 없으면 굶어죽게 된다는 뜻의 맥락에서 쓰인 것이 아니라 대체로 0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생활 수준, 즉 '자기 농장의 생산물로 근근이 먹고 사는'수준을 말한다. 이를 계산하기 위해 우선 가족에게 필요한 열량을 모두 밀이 공급한다고 보고, 그 밀값을 식비로 환산한다. 그리고 밀의 재배를 위해 식비에 1/3의 필수 투여 비용을 더하고, 또 식비의 1/2을 식량외 소비로 할당하며 여기에 세금을 더한다.[cf. Scheidel2009] 그리고, 총소득과 최저생활비의 차를 저축으로 본다.
계산결과는 어떠한가? 위 가정에 기반하여 푸블리우스군이 분가하는 +17년부터, 마르쿠스 모델리우스씨가 48세가 되는 +30년까지 두 가정의 소득과 저축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 계산결과에 의하면, 마르쿠스씨네 집은 분가 이후 계속 적자이며, 푸블리우스군은 +21년까지는 흑자상태에 있지만 다음해에 적자로 돌아선다. 가이우스씨의 대에 흑자를 볼 때 모아놓은 돈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장례식과 결혼식, 과수원을 늘리는 비용 등으로 거의 소모되었을 것 같다. 호의적인 조건들을 붙이지 않았다면 이보다 훨씬 나빠졌을 것이다.
아이들의 소비는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형제의 가정은 어떻게 해야 자체 유지가 가능한가? 비슷한 계산을 해 보면 마르쿠스씨의 경우, 첫째와 둘째 아이만 있어도 여전히 +17~+26년에 걸쳐 적자가 발생한다. 아이가 하나 뿐이어도 초기 적자는 존재하지만, 엑삼플리아씨의 사망 이후 흑자로 반전된다. 푸블리우스군도 마찬가지로, 두 아이만 키워도 적자를 면할 수 없고, 아이가 하나 뿐일때는 비교적 넉넉해진다. 종합적으로 보면 모델리우스 형제 부부가 합쳐서 네 아이를 키우기는 좀 벅차고, 세 아이는 넉넉하게 키울 수 있다. 즉, 형제는 아버지처럼 세 아이를 키운 가장이 될 수 없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형제가 각각 세 아이를 키운다면, 가족의 수는 아버지때에 비해 두배로 늘어나지만 토지는 35%밖에 늘지 않았다. 가이우스 모델리우스씨의 생전에 가족의 일인당 토지 면적은 한번도 2.8유게라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농장에서는 모두가 먹을 충분한 양식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분가 이후 마르쿠스씨네는 많아야 일인당 2유게라를 조금 넘는 토지를 점하게 된다. 푸블리우스군네는 처음에는 넉넉하지만, 아이가 하나씩 태어나면서 일인당 토지 면적이 급격히 줄어든다.
푸블리우스군이 아예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형네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 어떨까? 그래도 본질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경우 아이들이 늘어나는 속도는 줄어들겠지만, 푸블리우스군의 가상의 아내가 가져오는 지참금도 없기 때문이다. 마르쿠스씨네는 세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고, 두 아이는 중간에 다소 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넉넉하게 키울 수 있다. 즉, 푸블리우스군이 결혼하건 결혼하지 않건, 형제는 자기 세대와 같은 수만큼의 2세를 양육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형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생활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예컨대 마르쿠스씨네는 분가 이후 1인당 GDP가 160~185HS선에서 진동한다. 그것은 가이우스씨의 전성기에 비하면 5~60%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좋지않은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곤 한다. 다만 이 경우 가족의 건강이 상당히 염려스럽다. 다음으로, 별로 잘 될 것 같지 않지만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모델에서 가족은 1년에 150일은 쉴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 기간은 날씨가 궂은 날이나 종교적 축제일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그런 것 아랑곳없이 쉬지 않고 부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농촌에 그정도로 부업거리가 존재했을지도 심히 의심스럽다.
더욱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방법은, 경영 방식의 변화이다. 예를 들어, 밀농사를 폐업하고 수익성이 높은 포도 농사로 전업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수 농사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초기 투자 비용이 있다. 콜루멜라는 1유게라의 포도밭을 새로 꾸미는데 무려 2,000HS를 배당했다.[Columella, De re Rustica3.3.8] 이러한 초기 비용은, 돈이 더 벌릴줄 알더라도 소농들이 쉽게 과수원으로 전업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다른 방법은, 적자를 만드는 뿌리 자체의 제거이다. 먼저 그 근인(近因)을 제거하는 방법은 실제 고대의 농가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났을 것 같은, 못할 짓이다. 아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영아 유기, 여아 살해, 자녀 매각 등, 급할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제법 많았다.(*) 다른 하나, 원인(遠因)의 제거는 이렇게까지 비인도적이지는 않지만, 역시 인의로 볼때 대체로 못할 짓이다. 아들 둘 중 하나에게만 재산을 압도적으로 몰아서 상속하고, 나머지 하나는 '형제에게 얹혀 사는 것'까지도 배제시켜, 가전 재산의 대부분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독한 조치 없이, 그냥 살던대로 살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30년 시점에, 마르쿠스 모델리우스씨는 이 시뮬레이션을 시작했을때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48세가 된다. 그러나 희망찼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마르쿠스씨는 해마다 빚이 늘어 이 즈음에는 4,000HS에 달하는 채무에 눌릴 것이다. 이대로라면 자본 잠식 상태는 갈수록 심해져서, 죽기 전에 모든 땅을 채권자에게 빼앗기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동생 푸블리우스씨의 운명도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소농 가정 모델을 통해, 이 가정에 닥칠 수 있는 여러가지 변화와 그 경과를 살펴보았다. 처음에 모델이 충분히 자급자족되는 상태였다고 가정할 때, 이 가정을 진정 위협하는 것은 아들의 군 입대같은 '노동력의 감소'라기보다는 1인당 토지 면적의 급감이다. 분할 상속은 다른 어떤 트리거보다도 이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대단히 높으며, 따라서 주어진 조건 하에서는 이 모델 가정에 가해진 최대의 위협이라고 생각된다.(**) 개별적인 숫자는 가정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개략적인 경향만을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이제 모델리우스 가문의 다음 변화로 넘어가자. 지금까지의 논의는, 이미 언급했다시피 모두 '시험삼아' 해 본 것이다.
파종을 마치고 오랜만에 쉬던 어느날, 푸블리우스군은 사라졌다. 군대에 있을때 알게된 친구와 전역하면 만나기로 했으니, 잠시 다녀오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긴 채로였다. 훌쩍 나갔던 푸블리우스군이 돌아온 것은 다시 포도를 따는 계절이 돌아왔을때 즈음이었다.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로, 눈이 휘둥그레진 가족들 앞에서 푸블리우스군은 자기 몫의 상속분을 포기하고, 보노니아 라틴 식민시에 식민자로 가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했다. 엑삼플리아씨는 아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꾸짖었다. 그러나 차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쩐지 믿고 싶어졌다. 마르쿠스씨는 자기가 동생을 말려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밤중에 조용하게 둘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가 자신의 양심에 바친 최소한의 아첨이었다.
1인당 경지 면적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를 줄일 수 없다면, 토지를 늘려야만 한다. 새로운 경작지를 개간하는 수도 있겠지만, 고대에 매우 빈번하게 시도되던 또 다른 수단이 있다. 바로 정복이다. 남이 살고 있는 땅으로 쳐들어가서, 그곳 주민을 "희소하게 만들고" 땅을 차지하여 잉여 인구를 배출하는 것이다.
갈리아 키살피나는 기원전 2세기 전반에 로마 공화국의 주요 식민 대상중 하나였다. 리비우스의 연대기가 소실된 탓에, 불행히도 우리는 기원전 167년 이후 한동안 새로운 식민시가 건설되었는지, 혹은 기존 식민시를 키우기 위한 추가 식민자가 모집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설령 공식적인 모집이 없었을지라도 이주자는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Brunt] 푸블리우스군이 떠나기로 한 보노니아는 기원전 189년에 건설되었는데, 이곳의 식민자들은 보병 등급이라도 1인당 50유게라에 달하는 큰 토지를 분배받았다. 영세한 농민이나, 이미 망해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사람이나, 혹은 다른 가족들까지 같이 망하지 않도록 떠나주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들에게 갈리아 키살피나는 무척 매력적인 탈출지였을 것이다.
고대 지중해 연안의 폴리스형 도시국가들은, 거칠게 비유하자면 다소간 회사 비슷한 운영 모델을 갖고 있었다. 시민은 회사의 직원이자 주주 같은 존재로, 이들이 제공하는 인력과 자본을 써서 국가는 '사업'을 벌였다. 로마 공화국의 주력 업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전쟁이었다. 전쟁은 향촌에서 사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어린' 성인 남자들을 장기간 농장으로부터 유리시키며, 남은 농민들로 하여금 '줄어든 입'에서 기인하는 풍부한 잉여 생산의 가능성을 누리게 한다. 또한 전쟁이 끝나면 전리품을 배분하여 이익을 나누고, 새로 획득한 땅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인구 증가가 가져올 수 있는 평균 재산의 감소를 막는다.
그러한 수익 구조가 성립하는 한 시민들은 계속 잘 먹고, 잘 살며, 자손도 번창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에 정복할 땅은 무한하지 않으며, 모든 땅이 식민에 적합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어난 공화국의 시민과 '동업자'들은 갈수록 더욱 많은 새로운 토지와 이익을 필요로 하게 된다. 거대해질수록 공화국은 자신의 크기에 질식당한다. 언젠가는 결국 '사업'이 가져다주는 수익은 구성원들의 복지와 자손 번창을 보장할 만큼 충분치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위대한 팽창이던 전쟁은 끔찍한 의무가 되고 만다. 이는 로마 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지닌, 일종의 폰지 사기(Ponzi scheme)적인 측면에 대한 짧은 개관이다.(※)
모델리우스 가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들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은 대사족으로 마무리하는 편이 좋으리라고 생각해 왔다.
엑삼플리아가 세상을 떠났다. 57세였다. 너무 늦게 연락이 갔기 때문에 푸블리우스는 결국 그해에는 집에 오지 못했다. 대신에 이른 봄이 오면 마르쿠스가 가족과 함께 갈리아에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벌써 8살이 된 '작은 마르쿠스'는 왜 그렇게 멀리 있는 '푸블리우스 삼촌' 집에 가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는게 분명했다. 그 대신에 로마에 가서 며칠 구경하다가 오고 싶어했다. 네이보리아는 칭얼대는 아이에게 엄하다 싶을 정도로 따끔하게 야단을 쳤다. 마르쿠스는 자식의 훈육은 아버지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내가 마침 잘해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당분간 16유게라의 농장 단속은 처가에 부탁했다. 모델리아와 퀸투스 소닌라비우스도 함께 움직였다. 퀸투스는 엑삼플리아의 유언에 의해 고인의 몫 가운데 1.5유게라의 땅을 상속받았다. 마르쿠스가 보기에 말년의 어머니는 푸블리우스와 관련된 일이 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퀸투스에게 의지했다. 1.5유게라는 눈이 어두워진 어머니에게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등 요 몇년간 퀸투스가 열심히 '효도'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매부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마르쿠스는 퀸투스가 그정도 땅으로 만족했다는게 의외였다.
특별한 어려움 없이 보노니아에 도착해서 동생의 농장을 찾아갔을때, 족히 50유게라는 되어 보이는 그 넓이를 보고 마르쿠스는 적지 않게 놀랐다. 혼자서는 다 가꿀수가 없어서, 몇명의 갈리아인들이 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는 강하게 얼싸안았다. 그날 밤은 수년간 쌓인 이야기를 다 꺼내기에도 모자랐다.
어머니의 죽음이 가족을 다시 모이게 했다는 것만 빼면, 며칠동안 정말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푸블리우스는 갈리아의 곡물값이 너무 싸서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돈은 안되지만, 먹는것만큼은 원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하지만 마르쿠스가 보기에 동생은 우울하게 집을 떠나던 옛날에 비하면 약간 풍채가 좋아진 정도 뿐으로, 그렇게 많이 먹고 사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집에서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마르쿠스는 생각했다. 동생이 왜 결혼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이내, 농장을 새로 만드느라 바빠서 그랬거니 하고 생각했다.
다음날 형제가 같이 농장을 둘러보고 돌아왔을때, 모델리아와 퀸투스가 한창 나갈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마르쿠스를 보고서 왜 이제오느냐며 재촉을 했다. 작은 마르쿠스는 삼촌의 이름을 부르며 쪼르르 달려왔다. 무시무시한 보이족 전사들이 돈을 받고 시합을 하는데, 얼른 보러 가자고 했다. 푸블리우스는 작은 마르쿠스를 안아들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둘은 무척 친해졌다. 네이보리아는 아이가 푸블리우스에게 매달리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남편이 부르자 얼른 옷깃을 여몄다.
마르쿠스는 언제나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가지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내가 어떤 표정으로 동생과 작은 마르쿠스를 보고 있었는지, 마르쿠스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네이보리아가 어째서 아들을 그렇게 이곳에 데려오고 싶어 했는지도, 그 자신이 혼자 나름대로 생각해서 납득할 수 있으면 그정도로 충분했던 것이다.
W. Scheidel, S. J. Friesen, 「The Size of the Economy and the Distribution of Income in the Roman Empire」(JRS2009)에서는 1인당 최저 생계를 위한 순지출을 밀 335kg에 대응시켰다. 이 가운데 식비가 차지하는 양은 220kg이다. 식비:그외소비가 약 2:1로 나타난다. 그러나 환산값은 본문과 상당히 다름에 유의.
P. A. Brunt, 『Italian Manpower』(1971)
*유기된 영아는 중요한 노예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차영길, 「로마 노예 공급원과 쓰렙토스」(1995). 그런데 당시에 여아 살해가 어느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관련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Scheidel의 발표문 「Greco-Roman sex ratios and femicide in comparative perspective」을 참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구 증가 그 자체를 위협 요인으로 보고, 이 가정의 위기는 1세대의 높은 출산율에서 이미 비롯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은 0~+30년 범위의 바깥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거론되지 않았을 뿐이다.
※폰지 사기의 비유는 N. Rosenstein, 『Rome at War』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갈리아 키살피나의 높은 농업 생산량은 폴리비오스가 『역사』에서, 여관의 하루 숙박료가 반 아스(즉, 0.2HS)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단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Polyb.2.15.
첫댓글 막장 집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엔 "그렇구나. 끄떡 끄떡" 하다가, 맨 마지막 줄을 읽고 "응?"
...어?
이 정도가 막장이라니요...토탈워 분들도 크킹을 해보셔야 합니다 ㅇㅇ
역시 영아 살해 및 유기는 전근대 사회의 만병통치약...; 중국이나 로마나 비슷하군요.
마지막 무서운데...ㅡㅡ;;; 전편에서 말한 엄청난 시련이 이거였군.
........응?
아침드라마 시나리오 였어요?
그런거 치곤 너무 고퀄인데?
!?
...음!?
동생이 순정남이야 ㄷㄷ
웃을만한 내용이 아닌듯... 저도 몇번 읽어보고 그 뉘앙스를 깨달았는데... 영아 유기가 아니라 마르쿠스가 살해될것 같네요. 네이보리아, 푸블리우스, 모델리아, 퀸투스 모두들 공범자임...
이런...
하긴 토지는 한정적인데 인구가 늘어나면 그 적정점에는 최고의 시기라고 할 수가 있지만 토지가 감당을 할 수가 있는 인구가 넘쳐나버리면....... 저런 일이 늘어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