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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7회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주영빈
낡은 무허가 집을 전전하면서도 행복했던 가족 이제 그들의 집이 사라진다 철거를 앞둔 재개발 지역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이십대 초반 결혼한 해경 씨(44), 하지만 그녀의 전 남편은 폭력을 일삼았다. 계속된 폭력에 다리까지 절단해야했던 해경 씨의 결혼 생활은 아픔과 상처로 끝났다. 그런 해경 씨의 상처를 보듬어 준 사람이 바로 노총각 인석 씨(47). 하지만 그의 가족은 해경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수 없었던 인석 씨는 해경 씨를 선택했다. 가족의 반대를 뒤로하고 부부는 성남에 보금자리를 잡았고, 사랑스런 딸 시연(12)이와 소연(10)이를 얻었다. 하지만 노점장사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시작한 중국집은 문을 닫게 되었고, 네 식구는 무허가 낡은 집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래도 가족은 함께여서 행복했다. 그러던 지난 2006년 인석 씨네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이 되었다. 이웃들마저 대부분 떠난 빈 마을, 철거가 임박해오고 인석 씨와 해경 씨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
# 아픔을 보듬던 연민이 사랑으로
서울의 동네를 돌며 채소를 팔던 노총각 인석 씨는 17년 전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해경 씨를 만났다. 힘겨운 노점 생활을 하던 인석 씨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앞에 두고 혼자인 해경 씨에게서 아픔을 보았다. 어릴 때부터 간질을 앓던 해경 씨는 폭력을 일삼던 전남편과 이혼한 후였다. 계속되던 폭력에 다리까지 절단해야 했던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세상이 무서운 여자와 일상이 팍팍하기만 했던 노총각의 만남은 연민에서 사랑이 되었다. 하지만 7남매 중의 장남 인석 씨, 부모님의 반대는 거셌다. 그러나 해경 씨에게 또다시 아픔을 줄 수 없었던 인석 씨는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결국 반대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식도 올리지 못한 채 둘의 결혼 생활은 시작됐고 시연(12)이와 소연(10)이 두 딸을 얻었다.
# 우리 집은 성남동 재개발 지구
채소 장사로 번 돈으로 인석 씨는 동생과 함께 성남에 작은 중국집을 열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 1년 만에 중국집도 문을 닫게 됐고, 형편은 어려워졌다. 결국 성남에서도 무허가 집들이 있는 지금의 동네로 들어와 보증금 200에 월 20만원을 내며 살았다. 생계를 위해 인석 씨는 일용직을 하고, 불편함 몸으로도 해경 씨는 노점 장사를 했다. 일정하지 않은 일용직과 쫓겨 다니기 일쑤인 노점, 가족의 생활은 늘 빠듯했다. 하지만 부부에게는 허름해도 돌아갈 집과 고된 하루를 웃게 만들어 주는 딸들이 있었다. 그러던 2006년 성남동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확정이 되었고, 올봄부터 이웃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인석 씨 집에도 5월 31일까지 집을 비우라는 마지막 계고장이 날아왔다.
# 엄마, 우리는 언제 이사 가?
사람들이 떠난 재개발 지역, 어울려 놀던 동네 친구들도 떠나고 집집이 녹슨 자물쇠가 있는 동네, 수시로 집을 비우라고 찾아오는 아저씨들... 시연이에게는 몰래 집까지 쫓아온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오늘도 시연이는 엄마를 붙잡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 조른다. 하지만 시연이도 엄마도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 평안했던 집에 찾아든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을 뿐이다. 지난해 집주인은 이사를 가며 보증금 200만 원에서 두 달치 월세를 제하고 160만 원을 돌려줬다. 하지만 겨우내 일이 없었던 인석 씨, 노점 장사로는 생활비조차 버거웠고 결국 이사비용도 마련하지 못한 채 이제 수중에 남은 돈은 겨우 50여 만 원 뿐이다.
# 우리 집을 찾아서...
하루빨리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 해경 씨는 아파서 잠시 쉬었던 노점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인석 씨는 새벽마다 과일 수레를 내주고 일을 나간다. 하지만 일거리는 없고 마음 놓고 장사할 처지도 못 되는 부부. 이사갈 집을 찾아보지만 재개발로 집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주변 집세도 많이 오른 상황, 부부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용직 일을 나간 인석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공사가 시작되려 한다는 것! 하루하루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고, 해경 씨는 그동안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결국 쓰러지고 만다. 인석 씨는 그동안 발길을 끊었던 서울 친가로 향하는데... 낡고 허름했지만 따뜻했던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가족, 과연 그들의 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